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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겨울 여행의 애상(哀傷) (2)
박면순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Mar 28 2024 11:04 AM
캐리비언은 약 30개의 작은 나라들이 700개가 넘는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가 백만 명 이상인 국가는 여섯 나라에 불과하며(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쿠바, 푸에르토리코(미국령), 트리나드토바고), 십만 명 이하인 나라도 열다섯 개나 된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이 해역 북단의 작은 섬인 과나하니(바하마의 와틀링 섬)에 상륙한 것을 말하는 것인데, 당시 콜럼버스에 배를 대준 스페인이 400여 년 동안 이 해역을 장악하고 있다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 대패하면서 물러났다. 이후 미국이 지정학적인 면에서 실효(實效) 지배하고 있고, 특히 미국의 물류는 관광업이 주 산업인 이 지역의 생명줄 역할을 한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도 몇 개의 작은 섬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17세기 중반에 출몰한 ‘캐리비언 해적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그들의 소굴을 점유해 버린 것이다. 해적들보다 더 못된 땅 도적질을 한 것이다.
이러한 신천지 개척의 역사와 투쟁이 이 지역을 독창적인 문화를 가진 아주 매력 있는 관광지로 남겨놓았고, 숨 멎을 듯한 아름다운 풍경과 ‘Blue Economy’로 일컫는 수산, 해양 자원의 무한한 가용능력은 이곳의 성장 잠재력을 말해준다. 하지만 아직은 지역 전체의 평균 PPP가 7,000불 정도로 낮고, 휴양 천국이지만 리조트 구역을 벗어나면 시민들의 삶은 형편없다.
조세회피처로 악용하는 서양 부자들의 거품을 걷어내고, 가장 잘 사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25,000불을 제외하면 역내 평균 소득은 절반도 안 된다. 쿠바는 평균 월급이 46달러에 불과하다.
언스플래쉬
COVID19 팬데믹은 이들 나라에 특히나 무서운 재앙이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에 국경 봉쇄는 곧 죽음을 의미했지만, 이 시기를 절치부심으로 견뎌낸 나라가 있는가 하면 아이티처럼 파국으로 간 나라도 있다.
가장 모범 사례인 도미니카 공화국은 2020년에 실질성장률이 -6.7%로 곤두박질쳤다가 2021년에는 12.3% 반등하였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으로 팬데믹 중에도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
엔데믹 이후에는 다른 국가들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데, 캐리비언 유일의 공산국가인 쿠바만은 예외이다.
쿠바는 캐리비언에서 가장 큰 땅과 인구를 가지고 있고, 19세기 초만 해도 이 해역에서 제일 잘 살던 나라였다. 신세기 개척의 선봉인 스페인이 자긍심으로 만든 시가지와 건축물, 아직도 굴러다니는 당시의 앤틱 카들이 박제처럼 남아있는 모습과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전설, 그들의 이상향으로 빚어진 사회주의 국가 도시의 모습을 큰 앵글로 같이 볼 수 있는, 여행객에게 아주 독특한 경험을 주는 나라였다.
작은 앵글로는 쿠바를 가장 사랑했던 헤밍웨이와 ‘노인과 바다’의 자취를 찾아보고, 미국의 오랜 경제봉쇄에 미니멀 라이프로 적응하며 유유자적하는 쿠바인들을 도처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쿠바는 국가별 행복지수(HPI)에서 항상 세 손가락 내에 드는 나라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빈곤과 탄압을 견디지 못한 탈출이 열풍을 이루고, 대규모 시위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되어 있다.
2022년 한 해에만 전체 인구의 3%에 해당하는 313,400명이 미국으로 탈출했고 멕시코 국경에는 수천 명이 수시로 진을 치고 있는데, 이는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심각해져 간다. 2021년에는 미국 입국자가 39,000명에 불과했다. 이는 통제된 국가들의 피할 수 없는 종착점이 될 것인데, 바로 정보의 세계화이다.
쿠바 정부는 버티고 버티다가 2018년 말부터 모바일 폰에만 인터넷 접속을 허용했고 2019년 7월에는 개인 WiFi를 사용하도록 추가로 허용하였는데, 이것이 쿠바인들이 광범위한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게 되면서 세상의 물정을 알게 된 것이다.
아주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구상의 낙원을 자부해 온 ‘쿠바 정신’은 젊은 세대부터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고, 더는 행복한 나라의 시민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행복지수를 산출할 수 없는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부유함이 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빈곤을 앞에 두면 배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 죄가 느껴진다.
푼타카나에서의 배부름이 이번처럼 죄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다.
이 글을 일부러 음식에 집중하여 구구하게 써 내려간 것도 사실은 이런 죄스러움에 대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양심의 고백도 다가갈 수 없는 모순된 정치 체제가 빚어낸 빈곤 앞에서는 그들 종속된 자들에 대한 연민이나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불가해함 이외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기본 조건에 대한 회의와 삶의 고단함조차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억제된 자들의 선택은 Salsa 음악을 즐기고 Rumba 춤을 추며, 모히토(mojito) 한 잔을 즐기는 것으로 ‘행복해 보인다!’ 하고 치부하면 그만일까? 불가해함 중에는 인터넷에 수없이 도배되는 쿠바를 ‘다녀온 자들’의 밀담(蜜談, sweet story)도 있다.
과거의 사실에 이끌리어 미리 학습된 낭만을 가지고 찾아간 사람들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을 접하면서 실망감을 제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쿠바인들의 입버릇인 ‘This is Cuba!’를 마치 마법의 주문인양 읊어 대는 것은 스스로에 주는 위로가 아닐까? 불가피한 너그러움을 마치 쿠바 기행의 트렌드인 양 서사화하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길래 이리 욕될까?
‘골목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찌그러진 냄비를 쳐서 펴고, 멀리서 남편에게 고함을 질러대는 여인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오는 것을 들으며, 아바나는 그렇게 리듬을 잃지 않는 도시였고, 쿠바는 음악이 멈추지 않는 나라였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마릴린 알바레즈라는 사람이 이들 너그러운 사람(?)들을 조목조목 반박하여 인터넷에 올렸다.
‘무료 의료서비스? 나는 약, 수술용 장갑, 바늘 및 봉합사를 정기적으로 가족들에게 보냅니다. 당 간부들과 관광객들이 갈 수 있는 병원들이 있는데, 그 병원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일반 쿠바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치과에 가는 경우에도 의사를 위한 장갑을 가지고 진료 예약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료를 볼 수 없습니다.
병원에 들어가려면 침대용 리넨과 비누, 항균제 등 가장 기본적인 물건을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과일? 어디에든 무엇이든 심을 수 있고, 누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랄 수 있는 비옥한 나라에는 과일이 없습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음식은 무료가 아니며, 쿠바 사람들이 쇼핑하는 시장에는 대부분 음식이 없기 때문에 구할 수 있을 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다음번에 쿠바에 가면 실제 쿠바인의 삶을 살아보고서, 마음에 그리 와닿는지를 확인해 보세요! (2022년 3월 25일)’
여행을 다녀온 후 가벼운 글 한 편을 쓰려고 하였는데, 쿠바에서 온 전화 한 통 때문에 딱딱한 논문(?)이 되어버린 올해의 겨울 여행은,
배부른 것이 잠시나마 추악하게 느껴졌던,
마음 한쪽이 절벽처럼 무너진 내린,
행복한 순간을 추억하는 것도 죄스러운,
애상(哀傷)의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2024. 2. 29)
박면순 | 노스욕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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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