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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국민의 승리'인가 (상)
김성우 전 서울 한국일보 주필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Jun 27 2024 03:30 PM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
국난이다. 나라가 요동친다. 나라가 기울고 있다.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정치판이 난장판이다. 포연 없는 전쟁터다. 온 나라가 독기의 독가스로 가득 차 있다.
하늘에는 핵미사일이 으르렁거린다.
야당은 브레이크도 없이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며 돌진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은 덩달아 신이 났고 일부 국민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고 일부 국민은 태평이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전 국민이 번쩍 정신 차려 대한민국을 구출해야 한다. 실기는 망국이다.
1 누가 국민인가
4•10 총선 결과 승자인 야당은 “국민의 승리”라 했고 패자인 여당은 “국민은 항상 옳다”고 했다. 그것이 과연 국민의 승리였고 과연 국민은 항상 옳은가.
진정 국민의 개가요 국민이 지당하다면 국민은 지금 그 성취에 도취하고 있을 때인가.
승자도 패자도 국민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을 보고 국민은 기고만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쭐할 것 없다. 승자도 패자도 국민에게 아첨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거인이다.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국민은 성역이다. 누가 감히 탓하겠는가.
지금 야당은 온갖 폭거를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
제멋대로 하면서 민의라니, 이들에게는 당수 개인의 사심이 민의요 자기 당의 당심이 민의다. “국민이 승리자”라는 말은 자기 반대자는 국민이 아니요 자기 당 지지자 외는 국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 놓고 야당은 국민을 섬기는 척하면서 그 책임은 모조리 국민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지난 총선의 결과는 국민을 꼭 3등분했다. 정당 지지도가 여당파 3분의 1, 야당파 3분의 1, 기권파 3분의 1이다. 야당은 이 3분의 1의 지지를 가지고 “국민의 승리”라고 허풍을 친다. 그 3분의1인들 마음대로 폭주하라고 투표지에 사인한 적이 없다. 게다가 국민의 3분의 2는 지지하지도 않았다. 들리는 국민의 소리는 힘세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국민의 소리는 더 힘세다. 본래 정부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국민을 끌어당겨 국민은 가랑이가 찢어진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말끝마다 “국민을 위해서”요 “국민이 원한다면”이요 “민심 따라”다. “국민”은 무소불통이다. 궁지에 몰리면 “국민”을 불러댄다. “국민”만 앞세우면 다 비껴 준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당명마다 “국민” 아니면 “민주”를 내걸고 국민을 호객한다.
너도 나도 국민을 외쳐대어 “국민”이란 말은 디 꾸겨진 넝마가 되어 버렸다. 이 거룩한 낱말에 아무 신선미도 없고 아무 감동도 없고 아무 경의도 없다.
선거가 끝나면 휴지통에 들어가 버리는 한 조각 투표지의 대명사일 뿐이다. 선거 바람만 지나가고 나면 국민은 바람 없는 날의 깃발이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책임 질 일이 있으면 국민을 끌어대어 국민에게 다 덮어씌운다.
지금 야당은 그 극치다.
국민은 정부나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오용되고 악용되고 남용되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이름을 도둑맞아서는 안 된다.
국민이 바짝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아첨배들에게 속고 배반당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국민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각자 스스로가 국민이라는 자각의 옷깃을 경건히 여미지 않으면 안 된다.
2. 국민은 무책임하다
책임 없는 권리는 없다. 국민이 주권자라면 그 권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국민은 책임을 져 본 적이 없다.
국민이 선거를 잘못해 대통령을 잘못 뽑았으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뽑힌 사람이 책임 질 일이 아니라 뽑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전혀 자책감이 없다. 잘못 뽑힌 대통령만 사표를 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잘못 뽑은 국민도 사표를 내야 한다.
국민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국민은 무책임하므로 투표도 무책임하게 한다.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 억울할 것 없다. 무책임하게 투표를 하니 그런 책임을 덮어쓰는 것이다.
총선거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불통이 여당의 패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바로 그 고집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던 국민은 그 고집 하나를 믿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고집이 잘못이라면 그를 잘못 뽑은 국민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고집불통이라고 매도만 한다.
국민들은 선거 때면 대개 말초적인 감정이 앞서서 이성을 잃기 쉽다.
나라의 명운보다는 우선 가려운 데나 긁어 시원한 재미로 표를 찍는다.
어디다 무슨 표를 던져도 국민이 이겼다고 하고 옳았다고 하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골대도 보지 않고 기분대로 표를 던진다.
국민들이 너무 정신 없이, 조심 없이, 의식 없이 투표를 하고 있다. 정부의 지지여부나 정당의 선택이나 후보자의 선호는 당연히 국민의 자유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 개인의 악취미나 무분별이 다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투표장에서의 유권자는 공인이다. 국민들은 무슨 짓을 해도 나라의 주인이 되는 줄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얼마만큼 나라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투표장에 가는지 출구 조사를 해 보고 싶다.
지난 총선을 두고 여당 측에서는 야당의 정권 심판에 맞서 이·조 심판을 앞세운 것이 또 하나의 패인이라고 자책한다. 아니다.
그 미지근한 심판이 패인이 아니라 오히려 더 철저히 심판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온갖 죄의 혐의를 누더기처럼 더덕더덕 걸친 야당 당수, 한둘도 아닌 여러 측근이 주줄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묵언의 증언을 했는데도 자기를 구속하려는 검찰을 성토해서 선거에서 대승을 한 야당 당수. 대학의 법학 교수이면서 불법으로 대학의 학사를 어지럽혀 놓고
법무부장관까지 되고도 법을 조소하다가 유죄 판결을 받고도 국민 뒤에 숨어 일약 제3당을 탄생시킨 신당 당수.
이런 사람들과 그 정당에 설사 만난 듯 쏟아진 표가 정상인가. 양식의 토사곽란이다.
정의감의 곤두박질이요 법정신의 물구나무서기다. 선거는 희롱당하고 민주주의는 창피하다.
게다가 야당 당수의 경우,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도 자기는 개인의 보신과 영달을 위해 주위의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선거 과정에서 당내 독재를 감행하고, 거대 야당을 만들어 주었더니 여당이 반대하는 법만 골라 통과시키는
폭주 입법의 의회 독재는 독재 아닌가. 몸에 젖은 그 독재성이 어느 자리에 갖다 놓은들 멀리 가겠는가.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시 거대 야당의 당수로 만들어 주는 국민은 독재주의자가 아닌가.
신당 당수의 경우, 죄는 같은 죄라도 범인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죄질이 달라진다. 대학 입학 서류 위조 같은 것은 대학 교수가, 더구나 둘 다 대학 교수인 부부가 저지를 수 있는 죄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부끄러움이나 반성은커녕
독기 어린 주먹을 불끈 쥐고 검찰에 대한 복수심으로 검찰 타도를 부르짖는 것만으로 당당히 신당 당수가 되었으니, 도둑이 달아나면서 좇아오는 경찰을 향해 “도둑이야” 하고 소리치는데 강도 바라바의 석방을 외치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게 한 유다인 군중들처럼 많은 국민들이 아우성으로 감싸서 개선장군이 된 것이다.
그 국민들은 이들을 의인처럼 대접하고 있다. 술 취한 것 같은 다수 국민의 의식이 면허 정지 수준이다.
이들 뿐인가. 선거에서 감옥에 가야할 사람들을 주줄이 국회로 피난시켜 국회는 범법자들의 소굴이 되어간다. 국민이 사면권자인가. 선거가 면죄부인가. 이것은 국민의 도덕불감증이 아니라 부도덕공감증이다.
정의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아예 불의에 가담한 것이다.
새 장관이 임명되면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도덕성부터 샅샅이 검증해 걸핏하면 낙방시키는 것이 국회의원이다.
그 국회의원을 뽑자면 국민들은 당연히 후보자의 도덕성부터 철저히 검증했어야 한다.
저마다 “법과 원칙이 성공하는 나라”를 외치면서 이렇게 무법자들과 반칙자들이 대승하고 대성하는 나라의 국민이 바로 국민 여러분이다.
한 국가는 그 국민에 상응하는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국민의 수준이 곧 정부의 수준이요 정치의 수준이다.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을 한탄한 지 오래지만 국민들이 그런 무분별한 투표를 하는 한 정치는 그런 뻔뻔한 수준을 절대로 넘지 못한다.
지금의 이 난국은 분별 잃은 표들의 작란(作亂)이다. 표가 무분별하니 그 표를 모운 야당은 마음 놓고 무분별한 짓을 예사로 한다.
책임 질 줄 모르는 국민이 책임을 져야 할 때다. 국민이 빌미를 제공한 것이니 국민이 수습해야 한다. (계속)
김성우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1957년 졸업. 한국일보 고문, 주필, 편집국장, 駐佛특파원 등 역임.
저서: '수평선 너머에서', '인생을 묻는다', '명문장의 조건', '돌아가는 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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