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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경의 그날
김외숙의 문학카페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Jul 02 2024 12:05 PM
사노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어떤 일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없던 일이듯 잊을 수 있다면 좋을 일의 기억은 때로 너무 집요하고 짓궂다. 지난 오월 중순부터 한 달간 서울엘 다녀왔다.
서울에 간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내 아이 아버지의 산소를 개장하는 일이었다. 산소 개장은 서른다섯 해 전, 서른여덟 나이에 눈을 감은 아이 아버지의 묘를 새롭게 가족묘로 바꾸는 일로, 크다면 아주 큰 행사였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장례문화로 쓸 땅이 점점 좁아지자, 정부가 국토를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개장의 방법을 제시했고, 이미 영혼은 하늘에 간 지 오래지만 육신이 남긴 것은 그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어서 그 큰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고 사람의 법에 따라 현 실정에 맞게 죽은 자를 다시 모셔야 한다는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알게 되었는데, 이 일로 묻어두고 싶었던 내 기억과 마주해야 했다.
지난 5월 말의 그날, 나와 가족이 산소에 당도했을 때는 인부들이 이미 일을 다 마치고 우리가 고인에 대한 예만 드리도록 했는데, 인부가 하라는 대로 기도의 예를 하려던 내 눈에 안경이 들어왔다. 관에서 나왔을 안경은 콧잔등에서 부러져 두 쪽이 되어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러진 안경.... 그 안경이 내 기억 저편에 묻힌 다른 일화 하나를 다시 눈앞에다 끌어다 놓았다.
아침마다 나는 그의 안경을 닦았다. 하루 일을 잘하려면 먼저 눈이 밝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정성 들여 닦은 안경을 그날 아침엔 무슨 연유로 방바닥에다 놓고는 일어서 뒷걸음질하다가 나도 모르게 밟아버렸다.
안경은, 콧잔등에서 두 동강이 났다. 출근해야 하는 남편의 안경을 밟아 두 동강 내어버렸으니, 그도 나도 할 말을 잊은 채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처참하게 부러진 안경 한번 쳐다보기를 되풀이하면서 내가 나의 조심성 없음을 탓하고 또 탓하고 있던 동안, 어디서 찾았던지 그가 대학 때 썼다던, 도수도 맞지 않던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 당신이 나 대신 출근할 뻔했다!’라고.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입관식 날, 장례식장 측에서 관 속에 넣어드릴 것 있으면 갖고 오라고 했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입관식 도중에 가져오려는데 시누가 작게 소리쳤다, ‘언니, 성경은 안 돼요!’ 하고. 지금은 교회에 다니는 시누가 그때는 불교 신자였었다. 내가 가져가 넣은 것은 성경이 아니라, 조심성 없던 내 발에 두 동강이 난 그 안경 이후에 새로 산, 그가 눈 감기 전까지 쓴, 안경이었다.
서른다섯 해란 오랜 세월에 삭 아서 콧잔등에서 동강이 난 채로 내 눈앞에 나타난 바로, 그 안경이었다. 모두, 너무 아픈 기억이어서 피하고 싶던 일이었다. 그러나 짓궂고 집요한 기억은 서른다섯 해 만에 빛을 본 그 안경으로 내 조심성 없었던 그 아침의 해프닝까지 생생하게 그리게 했다.
‘외숙아!’ 그 안경을 쓴 그가 서른다섯 해 만에 내 앞에 있었다면, 그렇게 내 이름만 불렀으리라.
주름 자글자글한 잿빛 머리의 나와, 내 기억 속의 젊었던 그.
나는, 서른다섯 해 만의 해후에 목이 메었을 것이다.
그날은, 천국에서 왔을 그와, 북미대륙을 가로지르고 태평양을 건너간 나의, 상상의 만남의 날이었다.
김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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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