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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비추는, 삶이란 이름의 햇살
영화 ‘퍼펙트 데이즈’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16 2024 12:06 PM
화장실 청소부의 소소한 나날 반복 속 변주로 일상 다채로워 야쿠쇼 고지 칸 배우상 수상작
중년 남자 히라야마(야쿠쇼 고지)는 일본 도쿄에 산다. 시내 공공화장실을 담당하고 있는 청소부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분무기로 화분들에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 후 출근하며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신다. 작은 트럭을 타고 이동하며 카세트테이프로 옛 노래들을 듣는다. 점심은 매일 샌드위치다.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햇빛이 어린 나뭇가지와 잎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다. 퇴근 후에는 어느 상가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귀가 후에는 소설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히라야마의 얼굴로 떨어지는 햇빛은 어제, 아니 1초 전의 그 빛이 아니다. 특색 없는 듯한 우리의 하루하루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티캐스트 제공
히라야마의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다. 단조롭지만 지루해 보이진 않는다.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깃들어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사건 사고가 끼어든다. 젊은 동료 청소부가 갑자기 일을 그만둬 히라야마는 추가 근무를 해야 한다. 화장실을 매개로 알 수 없는 누군가와 쪽지로 게임을 하기도 한다. 가출한 조카가 찾아와 히라야마의 일상을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삶의 무게 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도, 명예욕도 없다. 식물을 키우고 소설을 읽으며 사진을 찍고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전통적 기승전결 화법을 따르지 않는다. 124분 동안 히라야마의 같은 듯 다른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 속에서도 작은 차이들이 있다. 바람에 출렁이는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산란하는 햇빛이 매일 매시간 다르듯이. 어느 날 히라야마는 늘 찾는 공원에서 노인이 기괴한 춤을 주는 모습을 본다. 젊은 동료 때문에 카세트테이프를 고가로 사고파는 전문점을 알게 되고 의도치 않게 소동극을 치르기도 한다. 히라야마와 하루를 함께하는음악이 다르기도 하다.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Perfect Day)’와 밴 모리슨의 ‘브라운 아이드 걸(Brown Eyed Girl)’, 애니멀스의 ‘더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The House of the Rising Sun)’,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 등이 스크린에 더해진다.
관객은 히라야마의 소박한 일상을 보며 위로를 얻고 작은 희망을 품게 될 듯하다. 우리 모두 제법 큰 꿈을 품고 살아가는 듯해도 하루하루의 안녕에 감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태양을 보며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응축한다.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이 담긴 그의 표정은 종국에 행복으로 귀결된다. 스크린에 흐르는 노래 ‘필링 굿’의 가사는 이렇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새벽, 내게는 새로운 인생(It’s a New Day, It’s a New Dawn, It’s a New Life for Me)’.
‘파리, 텍사스’(1984)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 등을 연출한 독일 명장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구의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시부야구는 17개 공공화장실의 리노베이션을 안도 다다오와 반 시게루, 마크 뉴슨 등 유명 건축가 16명에게 맡겼고, 벤더스 감독에게는 이에 대한 단편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벤더스 감독이 화장실이 등장하는 극영화 연출을 역제안하면서 ‘퍼펙트 데이즈’가 나오게 됐다. 시나리오 작업은 3주, 촬영은 17일이 각각 걸렸다. 야쿠쇼 고지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남자배우상을 안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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