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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다모클레스의 칼이 되었을까"
소설가 김외숙씨가 바라본 먼로와 그의 딸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ul 19 2024 02:41 PM
캐나다의 노벨상 작가 앨리스 먼로(1931∼2024)의 딸이 계부로부터 성학대(9일자 3면)를 당했다고 주장한 기사를 접한 나이아가라의 한인작가 김외숙씨가 본보에 보내온 글을 소개합니다.
노벨상 작가 앨리스 먼로. CP통신
최근에,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캐나다의 노벨 수상 작가 엘리스 먼로의 딸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어떤 처신을 폭로한 기사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던 딸이 아홉살 때 어머니의 집 방문 중, 의붓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에 반응한 어머니에 대한 폭로였다. 남편이 딸에게 몹쓸 짓을 가했음에도 ‘그를 너무 사랑해 떠날 수 없었다’라고 한 어머니를 더 이상 침묵으로 덮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엘리스 먼로. 한 인간으로, 작가로, 그 이름을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문학상의 최고봉인 노벨상의 영광을 머리에 쓴 작가로서의 엘리스 먼로의 명성이나 그의 문학세계, 문학적 업적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영광의 관을 쓴 그를 부러워하고 있었을 때, 어머니의 그 명성 때문에 침묵한 채, 말할 수 없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스 먼로의 혈육이었다. 결코 없던 일이듯이 할 수 없던 그 일을 덮고자 한, 그 유명한 어머니의 이기주의를 알게 된 딸은, 그래서 치 떨리는 혈육의 정과 배반의 고통 사이에서 모진 세월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 어머니 또한 딸과 남편, 그리고 자신의 명성 사이에서 갈등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나 누릴 수 없던 그 정점의 명성에 남편이 한 짓은 자칫 피할 수 없는 다모클레스의 칼이 될 수 있음도 감지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나갈 수 없던 그 순간에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생각했다. 너무나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무 일 없듯 딸만 침묵하면, 칼 같은 것은 피하고, 없던 일이듯 여전히 남편과 평화롭게 명성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죽지 못해 사는 딸이 그 명성의 어머니 때문에 침묵한 이유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오래 참은 딸은 무슨 연유로 그 어머니의 명성 위에 떨어진 칼날을 자처했을까. 어머니도 어머니의 남자도 이미 고인이 된 이 시점에. 아마도, 그 경황에도 사랑을 앞세우던 어머니에게서 본 이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처받은 딸은 안중에도 없던, 자신의 안위와 영광과 사랑만을 내세운 그 어머니. 피어보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되었을 딸과 만신창이로 만든 남자 사이에서 그 남자를 택한 어머니, 그 이기심에 딸이 절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터뜨린 딸의 소리는 공명을 일으켜 같은 상처로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세상의 다른 딸들에게, 여전히 침묵으로 방관할 다른 엄마들에게, 여전히 죄의식 없이 폭행을 저지를 다른 남자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그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또 저지르려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어머니의 치부를 터뜨려 울리는 경종이요 또한 용기기 될 것이다.
최고봉에서 발가벗겨져 바닥에 내팽개쳐질 줄 번연히 알면서도 어머니와 자신을 드러낸 것은 진실, 곧 이 일은 누구에게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임을 알리려는 지난한 몸짓일 것이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이기적인 어머니의 방관, 눈 감기 전에 그분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딸의 그 깊은 상처를, 한을 쓰다듬었어야 했다. 유명한 작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요, 엄마이므로.
자식, 그 누가 어머니 머리 위에 떨어진 칼이 되고 싶겠는가?
다모클레스의 칼(편집자 주): 기원전 4세기 초 시칠리아 시라쿠스의 왕 디오니시우스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를 연회에 초대해 왕좌에 앉힌 뒤 머리 위에 말총에 매달린 칼을 걸어놓았다는 고사에서 기원. ‘다모클레스의 칼’은 현재의 권력과 영광에만 취하게 된다면 반드시 화가 미치게 된다는 관용구로 사용.
김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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