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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리는 길이 곧 런웨이
선수는 올림픽을 입는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14 2024 12:03 PM
성평등 올림픽, 경기장 안팎 패션도 성평등 성별 구분 없는 단복과 자원봉사자 의상 '여성성 전형' 벗어난 김예지에 세계인 열광 전직 선수들, '성평등' 강조한 패션쇼 열어
2024 하계 올림픽이 한창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비치발리볼, 바이시클모토크로스(BMX) 레이싱, 육상 등 다양한 종목의 전직 올림픽 여자 선수 24명이 경기장이 아닌 패션쇼 현장에 모였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전문 모델이 아닌 여성 스포츠 선수들로만 무대를 채운 패션쇼가 열렸다.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4회 연속 메달리스트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을 지낸 앤절라 루지에로가 만든 의류 브랜드 포더워크(4TheWalk)가 주최한 행사다. 남녀 출전 선수 성비 균형을 맞춘 첫 ‘성평등 올림픽’인 파리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1900년 파리 올림픽 당시 전체 선수 중 2%에 불과했던 여성 선수 비율은 이번 올림픽에선 50%까지 늘었다. 캣워크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슬로건. 무대 위를 누빈 선수들이 입은 의상엔 ‘성평등 파리(Parity Paris)’ ‘롤 모델(Role Model)’ ‘나는(I Am)’ 등 여성의 선택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올림픽은 거대한 패션쇼에 비유된다. 젊은 선수들이 첨단 유행을 선보이고, 중계방송을 통해 각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은 단복과 유니폼이 전 세계에 소개돼 세계 패션 흐름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최근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로 스포츠와 패션의 유대 관계가 더 긴밀해졌다.
미국 전 수영 국가대표 미시 프랭클린 존슨(왼쪽)과 잉글랜드의 전 축구 국가대표 에니올라 알루코가 지난달 28일 열린 브랜드 포더워크의 양성평등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걷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브랜드 포더워크 패션쇼에서 카타르 전 수영 국가대표 나다 와파 아르카지가 '성평등 파리'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여성미에서 ‘암살자룩’으로… 올림픽 패션의 진화
성평등을 앞세운 이번 파리 올림픽의 패션 키워드는 낡은 성별 구분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는 ‘젠더리스(Genderless)’다. 젠더리스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각축이 벌어진 각국 단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남색 재킷과 청바지, 스트라이프 셔츠를 매치한 미국의 랄프로렌 단복, 재킷과 바지 차림의 한국 무신사 단복 등 많은 국가가 남성 옷과 여성 옷을 나누지 않은 단복을 선보였다. 재킷과 치마로 구성된 여성 선수 단복을 공개한 중국은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패션 브랜드 루이뷔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LVMH 그룹이 디자인한 자원봉사자 의상도 성별 구분 없는 폴로셔츠와 몸의 곡선을 드러내지 않는 통 넓은 바지로 구성돼 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공기권총 10m 여자 결선에 앞서 주어진 5분 연습에서 김예지가 과녁을 조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서 스타일 아이콘으로 주목받은 인물은 한국 사격 선수 김예지다. 김예지가 지난 5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사격 월드컵 25m 권총 경기 출전했을 때의 모습은 ‘암살자룩’이라는 별칭과 함께 화제가 됐다. 전 세계 팬들은 강요된 여성미를 걷어낸 채 검은색 바람막이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검은색 모자를 뒤로 돌려 쓴 그의 패션에 열광했다. 직전 2020 일본 도쿄 올림픽 때 도색 잡지 플레이보이 모델 제의를 받은 독일 육상의 알리사 슈미트 등이 화제의 중심이었던 것과는 대조적. 대학생 김성현(23)씨는 “김예지의 올블랙 패션이 멋있기도 하고 사격은 기본적으로 유니폼이 편해 보여 더 멋스럽다”며 “올림픽을 보면서 비치발리볼이나 테니스 종목에서 여자 선수들이 꽉 끼는 작은 옷이나 치마를 입는 게 이해가 안 돼 즐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파리 라데팡스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수영 자유형 100m 시상식에서 시상 자원봉사자들이 메달을 들고 서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SNS로 언급해 화제가 된 김예지의 지난 5월 아제르바이잔 바쿠 사격 월드컵 출전 모습. X 캡처
2일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1,600m 계주에서 독일 알리사 슈미트가 트랙 위를 달리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일부 종목 유니폼의 여성 차별은 여전
“여자 기계체조 선수들은 왜 레오타드만 입고 경기하나요? 거치적거리는 부분이 없어 편해서라는데 그럼 남자 선수들도 레오타드가 편할 거 아닙니까. 남자 선수들은 레오타드 위에 헐렁한 반바지를 추가로 걸치더군요.”(아이디 ㅇ*)
5일 프랑스 파리 베르시 아레나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기계체조 종목에 출전한 미국의 시몬 바일스(왼쪽)와 중국의 쑤웨이더. 여자 기계체조 선수는 레오타드를 입은 반면 남자 선수는 긴바지를 덧입었다. 파리=AP 연합뉴스
최근 한 국내 포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일부 종목은 성차별적 운동복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6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여자 선수들의 경기복에 기능 이외의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올림픽 종목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대표적 종목이 기계체조, 육상, 비치발리볼 등이다. 2020 도쿄올림픽 때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성차별 복장에 항의하며 발목까지 감싸는 유니타드를 입고 출전했지만, 올해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의 노출이 화제가 되는 퇴행이 반복됐다.
여성 선수를 향한 외모 지적도 여전하다. 미국 기계체조 간판 시몬 바일스는 헤어스타일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온라인 댓글이 이어지자 “머리 이야기하러 오지 말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국내에서도 ‘양궁 3관왕’ 임시현에게 턱에 생긴 활 자국을 없애는 시술을 할 의사가 있는지 물은 SBS 취재진이 뭇매를 맞기도 했다.
여자 체조의 살아 있는 전설 미국의 시몬 바일스가 1일 프랑스 파리 베르시 경기장에서 열린 기계체조 여자 개인종합 결승에 출전해 마루 경기를 펼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여성 패션 해방의 시발점은 스포츠
포더워크의 패션쇼는 성평등 파리 올림픽을 축하하는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 행사였다. 모델로 나선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곧 메시지였다. 카타르의 나다 와파 아르카지는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에 카타르 최초 여성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임신 6개월인 전 뉴질랜드 BMX레이싱 국가대표 사라 워커도 런웨이에 섰다. 워커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어떤 외모로도 올림픽 선수가 될 수 있고 패션쇼에도 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티셔츠에 새긴 슬로건은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의 더 많은 성장을 약속하는 구호였던 셈. 선수들이 입은 옷에 적힌 슬로건 중엔 ‘미래를 위해 하는 것(Doing It For The Future)’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파리에서 열린 포더워크의 양성평등 패션쇼. 파리=AP 연합뉴스
스포츠는 패션계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며 변화의 흐름을 이끌어 왔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유행한 여성용 르댕고트(Redingote), 즉 라이딩 코트는 승마복에서 유래했다. 힙합 스트리트 패션은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올림픽에서 참가 선수 비율로 따진 성평등 못지않게 패션의 성평등이 중요한 이유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는 “수영복과 여성용 자전거 바지 블루머의 등장 등 뚜렷한 성별 복식의 경계를 깨기 시작한 시발점이 된 게 스포츠”라며 “스포츠의 활동적인 면이 캐주얼 클래식의 새로운 감성을 만드는 등 스포츠는 패션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포더워크의 양성평등 패션쇼에서 뉴질랜드 BMX 전 국가대표 사라 워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서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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