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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마다 담긴 진정성, 生의 한 장을 채우다
1030세대 ‘청춘 찬가’...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29 2024 10:39 AM
5년 전 곡이 주간 톱7 ‘역주행’ 고3·대학생·취준생·신혼부부 등 인생 국면마다 위로해주는 가사 졸업식·결혼식 단골 축하곡으로 외계어 남발 아이돌 노래에 피로 “현실의 우리에게 와닿는 가사”
지난 8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전. 경기장에 입장하던 박태준(20) 선수의 한쪽 귀엔 흰색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가 듣던 노래는 밴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박태준은 올림픽 남자 58㎏급에서 한국 태권도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경기 직전 듣던 노래 제목처럼 태권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쓴 것이다.
박태준 선수가 7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마음만 사로잡은 게 아니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요즘 새삼 인기다. 멜론, 스포티파이 등 9개 음원 플랫폼의 곡 사용량을 집계하는 써클차트 최신 주간 인기곡(스트리밍·4~10일 기준) 7위에 올랐다. 2019년 7월 이 노래가 발표된 후 최고 순위다. 5년이나 된 이 노래는 K팝 아이돌그룹들의 최신 댄스곡들을 줄줄이 제치고 차트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이변의 징조는 2년여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2022년 10월 병역을 이행하던 멤버 도운과 영케이, 원필이 군복을 입고 공연한 KBS2 ‘불후의 명곡’ 영상이 입소문을 타면서 순위가 조금씩 올랐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곡 발표 1, 2주 안에 빨리빨리 이뤄지는 K팝 소비 흐름을 고려하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의 2년에 걸친 장기 차트 역주행은 흔치 않은 사례”라고 분석했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인기곡 차트에 꾸준히 머무르는 건 10~30대에서 이 노래가 ‘청춘 찬가’로 통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는 희망찬 가사에 청량한 밴드 연주가 더해져 청춘의 반짝이는 순간을 음악으로 돋을새김해서다. 고3제자를 둔 교사들에게 ‘한 페이지가 될수 있게’는 ‘수능 응원 18번 곡’이다. “입시 스트레스로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던 고3 때 학교 축제에서 좋아했던 선생님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불러 주셨다. ‘솔직히 나보다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란 가사를 보고 힘을 얻은 뒤 내 ‘인생 18번곡’이 됐다”(김성현·22)는 게 요즘 대학생들이 들려준 추억. 취업 준비생들은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라는 가사에서 위로”(강진주·24)받고, “‘지금이 오기까지 마냥 순탄하진 않았지’란 노랫말이 여태 내가 한 고생을 다 알고 다독여주는 것 같아서”(이서현·23) 이 곡을 챙겨 듣는다.
K팝 주요 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밴드인 데이식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튜브엔 젊은 부부들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결혼식 행진곡으로 쓴 뒤 함께 식장을 걸어 나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줄줄이 올라 있다. 결혼식 사회 전문 진행자인 명희준씨는 “역경을 딛고 함께 해보자는 메시지가 담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와 ‘끝없는 가능성 중에 날 골라줘서 고마워’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데이식스의 ‘웰컴 투 더 쇼’가 요즘 20대와 30대 신혼부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결혼식 행진곡”이라고 말했다.
뜻을 알 수 없는 외계어와 감탄사를남발하고 육중한 전자 음악, 즉 ‘쇠맛’ 으로 범벅이 된 K팝 댄스 아이돌그룹 노래들에 대한 피로가 쌓인 터에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의 인기는 이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쇠맛’ 대신 밴드 특유의 자연스럽고 시원시원한 음악이 쉬 질리지 않고”(채성아·22), “가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가 현실을 살고있는 우리에게 크게 와닿으면서도 ‘떼창’ 하기 좋은 여름 축제곡 같아서”(신예린·22)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게 데이식스 팬들의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아이를 둔 학부모 김모씨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반 친구들이 선생님께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자꾸 틀어달라고 해서 우리 아이도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밴드의 성장사는 팬들과의 유대감을 높였다. 데이식스는 2015년 데뷔 당시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연습생 시절부터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냈던 멤버 성진이 춤을 못추자 3년 동안 그를 지켜본 JYP가 전략을 수정해 원필과 영케이, 도운을 모아밴드로 꾸렸다. JYP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악기 연주를 연습했다. 노래를 부르며 악기 연주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때론 합주실 불도 껐다. 어두운 방에서 붓글씨를 연습한 조선시대 한석봉이 따로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데뷔해 공연 중심으로 활동하던 데이식스가 뒤늦게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과정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오랜 무명 기간을 거친 멤버들의 성장사가 그들이 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의 진정성을 더하면서 파급력이 커진 것”이라고 봤다.
양승준 기자·서진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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