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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 원전 수출 때마다 美 업체가 발목
“태생적 한계 탓” 지적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1 2024 10:23 AM
정부 “설비 공급 협력 여지” 美 웨스팅하우스, 또 지재권 주장 바라카 수출 원전 독자 개량 불구 美 원전 기술을 기준으로 삼아 현재는 국산화, 美 설비 필요없어 “지재권 두고 美 법원서 소송 중 협력하면 불리해질 위험도 있어 이번엔 반복 막을 체계 구축해야”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면 결국 ‘미국 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걸까. 정부가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에 반발하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지재권) 갈등을 풀기 위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협상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 15년 전 바라카 원전 수출 과정과 현재 상황이 상당히 비슷하기도 하지만 한국 원전의 태생적 한계로 수출 수익의 일부를 미국 업체에 내어주는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덕근(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월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15년 전에도 ‘몽니’ 부린 웨스팅하우스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답변에 따르면, 산업부는 체코 원전 최종 계약을 앞두고 “UAE 바라카 사례와 같이 설비 공급 등에서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 대상은 웨스팅하우스다. 실제 2009년 바라카 원전을 수주할 때 한국은 웨스팅하우스에 비용을 주고 원전 설비 일부를 공급받았다.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최종 단계에서 웨스팅하우스 등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혔다. 막판에 밀려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 원전이 지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문제 제기했다. 바라카에 수출할 원전이 웨스팅하우스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이유였다. 나아가 ‘미국 원전 기술’이 쓰였기 때문에 미국의 수출 통제를 받아야 하고 그 통제를 통과하기 위한 절차(수출 신고)는 웨스팅하우스가 밟아야 하는데 이를 도와줄 수 없다고 버텼다.
UAE 바라카 원전 전경. 한국전력 제공
정부와 한전은 웨스팅하우스를 ‘기술 제공자’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웨스팅하우스가 버틸 경우 수주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당시 국내 기술력이 다소 모자란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전은 함께 컨소시엄을 꾸린 두산중공업과 ‘주기기 공급 계약’을 맺고, 두산중공업은 웨스팅하우스와 주기기 건설 과정에 필요한 일부 품목(원자로 계측 및 제어시스템, 냉각시스템 등)을 공급받았다. 웨스팅하우스는 두산중공업과 계약을 맺은 뒤 미국에서 수출 신고를 진행했고 바라카 원전 수주 수익 중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웨스팅하우스가 설비 공급 명목으로 가져간 돈은 약 2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는 총 186억 달러 규모였다.
체코 원전 수주도 ‘바라카 닮은 꼴’
그래픽=박구원 기자
정부가 15년 전 바라카 원전 수주 과정을 검토하는 건, 이번 체코 원전 수출 협상 과정에서 매우 유사한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①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수주에 뛰어들었지만 초기 단계에서 탈락했고 ②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이 프랑스전력공사(EDF)를 이기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됐고 ③웨스팅하우스가 바라카 원전 수주 때와 마찬가지로 ‘지재권 침해’를 이유로 미국 당국에 수출 신고를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수출 구조 또한 비슷하다. 체코 원전 컨소시엄은 한수원이 구성했고 컨소시엄에는 두산중공업의 후신인 두산에너빌리티가 들어와 있다. 아직 주기기 공급 계약을 진행하기 전이지만 한수원은 본계약이 성사되면 두산에너빌리티와 주기기 공급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높다. 즉 바라카 때처럼 한수원이 주기기 공급 계약은 두산네어빌리티와 맺은 뒤 두산에너빌리티가 웨스팅하우스와 일부 설비 공급 계약을 맺어 달래볼 여지가 있는 환경인 셈이다.
한국 원전 ‘태생적 한계’ 드러나
다만 15년 전과의 차이라면 이제는 국내 기술력이 성장해 웨스팅하우스 설비를 쓸 필요가 없어져 울며 겨자 먹기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원전 업계에서는 한국 원전의 태생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바라카에 수출했던 APR1400과 체코에 수출한 APR1000 모두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했지만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원전업체 ABB-CE를 인수하면서 가져온 ‘System80’을 기준으로 만든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태생의 한계가 수출 때마다 발목을 잡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정부에서 통상 및 협상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정부와 한수원도 곤혹스럽긴 할 것”이라며 “체코 정부가 웨스팅하우스의 문제 제기에 ‘문제없다’고 하지만 결국 최종 단계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고 현재 지재권을 두고 미국 법원에서도 다투는 중인데 웨스팅하우스와 협력하면 소송에서 다소 불리해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결국 정부가 바라카 원전 수주 과정을 검토한다는 건 체코 원전 본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번 협상 과정에서 다른 국가에 수출할 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국과의 수출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무·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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