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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전성기는 지나도 인생만큼 무르익은 무대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5 2024 09:16 AM
지난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6)의 리사이틀과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59) 주연의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 무대가 있었다. 오는 20일에는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80)의 리사이틀이 열린다. 수십 년간 자신의 분야를 대표해온 현역 연주자들이다.
음악가는 영감의 한계를 마주할 때 두려움이 크겠지만, 몸이 영감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할 때 또 다른 좌절을 느낄 것이다. 그들의 ‘전성기’는 무대에 선 현재의 자신을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삶의 에너지가 달라진 후에도 무대에 서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경화&임동혁 듀오 리사이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1960년대 정경화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동양인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모든 한계를 뚫어 버릴 만큼 강렬했다. 수십 년간 활동을 이어가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재활과 치료를 거듭하던 그는 10년 이상 공개 연주를 하지 않았다. 연주자 인생이 마무리된 듯 보였으나 2016년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연주 투어로 다른 시대를 시작했다.
지난 6일 정경화는 브람스, 프랑크 소나타를 연주했다. 칼과 창처럼 날카롭고 서늘한 젊은 시절 정경화의 에너지를 그리워하는 관객도 있었겠지만 풍파를 견딘 거장의 시간 속에는 사람의 깊은 곳을 움직이는 다른 힘이 있었다. 그는 앙코르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했다. 많은 것을 함축한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보였다.
지난 5일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로 무대에 선 게오르기우는 또 다른 여운을 남겼다.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함께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사랑의 묘약’ 등을 노래하며 1990년대를 풍미한 게오르기우는 최고의 프리마 돈나였다. 게오르기우의 이전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토스카'에서 테너 김재형과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가 열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소리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진 모습이 역력했다. 오히려 테너 김재형과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게오르기우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 음정은 불안했지만 호흡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으며 음악적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갔다. 고음을 잘 내도 흐름이 깨지면 음악은 밋밋해질 수밖에 없는데, 새삼 그의 연륜이 무엇인지 보게 됐다.
올해 80세가 된 피아니스트 피레스는 20일 장기인 쇼팽과 모차르트를 연주한다. 그는 2년 전 첫 내한 리사이틀에서도 많은 이가 손꼽는 인상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슈베르트 소나타 21번 D.960 2악장에서 피레스는 악보를 잊은 듯 잠시 멈칫하더니 몇 마디 전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소나타 21번은 작곡가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쓴 최고의 걸작이다. 파격이라고 할 만큼 조성 변화도 많다. 2악장에서는 인생의 아픔을 경험한 누군가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맑게 갠 하늘을 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드는 장면이 그려진다. 평생 담백하고 순수한 삶을 살아온 피레스가 음정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짚어 간 그날의 연주는 슈베르트의 성정과 가장 닮은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다.
때로는 음악에서 작곡가가 아닌 연주자의 인생을 보게 된다. 완벽한 음정과 탄탄한 테크닉도 좋지만 음악가가 살아온 인생이 작곡가의 음악에 투영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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