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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김훈 | 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4 2024 11:11 AM
금요일에 동네 열린 화실에 가면 그레그 차이코프스키를 본다. 몬트리올 태생 회계사로 은퇴한 내 또래다. 어제는 신나는 소식이 있다며 노벨 문학상 이야기를 꺼내니, 금새 축하한다면서 "채식 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 등 두 권을 읽었다고 한다. 나는 80년대 이곳 길거리에서 현대 포니를 볼 때 기분이라 말하니, 그게 누가 만들었고 어느 나라 차냐고 묻는다.
헤밍웨이, 토니 모리슨, 가와바다 야스나리, 가브리엘 마르케즈, 가쯔오 이쉬구로, 펄벅, 카뮤.. 이들의 공통점은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들의 공통점은 노벨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비로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이들을 읽음으로써 비로서 나의 독서도 세계수준으로 격상되는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는 것이다. 격상이라는 느낌은 그렇지 못함을 오히려 나타내주었다.
그리하여 앨리스 먼로가 2013년 노벨상을 받았 때는 독특한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이웃의 아줌마가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는 그녀의 단편소설들을 읽으며 20여년을 지내 온 터가 아니랴! 그녀의 수상은 나의 그리고 캐나다인들의 문학생활이 인정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변방의 작은 나라의 문학이 인정 받고 덩달아 나의 그것도 괜찮다 인증을 받은 셈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그 흔한 현대가 코리아 자동차라는 것을 모르는 "무지"를 생각하며 놀라기도 했으나 그가 한강의 작품을 읽었다는 것은 기쁨이었다.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의 의미는 첫째, 위에 열거한 몇분의 작품과는 달리, 내가 읽어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이 수상한 것이다. 앨리스 먼로의 수상 때와 다르지 않은 기분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의미는 그녀의 작품을 나는 "원어"로 읽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고작" 번역본을 읽은 것이다. 한강의 수상은 작품들의 문제성 뿐 아니라, 한국어로의 문학의 수상이다. "원어" "원서" "원판" 에 대한 오래된 경외심에서 벗어난 것 같다.
나의 취미로서의 소설 읽기, 특히 내 뼈에 사무쳐 있는 한국어로써의 문학 생활이 고스란이 인정 받는 기분이다. 캐나다 한 유대인 차이코프스키도 한강의 소설을 읽었다. 이제 나의 소설 읽기도 캐나다 수준은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고스란이 인정 받는 기분이다" 한 것은 앞으로 한국인 수상자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 있다.
소설은 철저한 허구이고, 허구는 철저한 주관이다; 그리고 철저한 주관은 철저히 일반적이다. 한강 속의 논리로 그녀가 창조한 허구 속에서만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허구는 촉매와 같아서 본래의 허구적 구성을 전달하곤 사라진다. 포니의 국적엔 무지하던 차이코프스키에게 한강의 허구의 촉매 - 역사적 배경은 사라질 것이다.
김훈/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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