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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고(小考)

궁핍한 시대에 한줄기 빛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5 2024 02:19 PM

사고(思考)의 문예부흥 기대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를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한강 시 ‘몇 개의 이야기 6’)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깊이있게 읽어본 적이 없다.

2016년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영국의 맨부커 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을 때 다소 특이한 작가이름에 호기심이 있었고,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만 파악했을 뿐 별도로 책을 구입해 읽을 생각은 안했다.

그러던 중 엊그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문학의 변방지대로 소외돼온 한국어 문학이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타다니…  

 

화면 캡처 2024-10-15 143903.jpg

한강 작가와 제주 4.3 학살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서울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보문고

 

 

나는 전문적인 문학인도, 평론가도 아니기에 작가와 작품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이다. 다만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또 한때 문학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사람으로서 느낀 소회는 한마디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띵하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분명한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들이다.

그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바로 ‘그날 그 사건’에 대해 쓴 책이다. 또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주제를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담담히 표현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한국에서는 5.18과 4.3의 역사적 재조명 논란이 다시 사회 이슈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5.18에 대해서, 4.3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솔직히 자신에게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 나라의 경쟁력에 대한 물음이고 미래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식들을 꼭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데리고 간다고 한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여과없이 이야기한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잊혀져가는, 아니 왜곡돼가는 역사적 사실을 시적인 유려한 필치로 독자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의 공로가 지대한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이 한강 작가의 소설에 폭발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책을 안읽는 시대에 이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한강 작가의 무한한 힘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열풍이 반갑기도 하지만 반짝 관심이 아닐까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한국인들은 유난히도 세계적이고 유명한 상에 관심이 많은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이번 상도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바로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24년도 안돼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그 한 예다. 평소의 관심이 필요한데, 라는 씁쓸한 마음이 교차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 소외당해온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이 다시 빛을 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인문학의 토대가 되살아나 한국이 문예부흥기를 맞길 바래본다.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라 하지만 AI 로봇에게 노벨문학상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어 작품이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된 데는 번역의 힘도 컸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듯, 외국인에게는 아직도 낯선 이방언어인 한국어를 세계에 알린 것은 무엇보다 충실한 번역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시적인 문체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단어 하나의 선택에도 수많은 고민을 담은 번역가들의 숨은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무난한 성격'(<채식주의자> 초반)이란 문장을 번역할 땐, 문장에 숨겨진 남편의 경멸감을 절묘하게 살려내고, 소주나 김치처럼 한국의 문화가 담긴 단어들은 과감하게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은 데보라 스미스 번역가는 ‘절묘한 개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6년 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4.3, 5.18, 같은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해외독자들이 작가의 글에 담긴 보편적 정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번역의 힘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이어주는 다리, 번역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외에 번역 출간된 한국 문학작품은 40개 언어권, 2500여 종.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번역의 역할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가지 우려감도 없지 않다. 당분간은 한국민들 모두가 박수치고 기뻐하겠지만, 아마도 머지않아 ‘딴지’를 거는 세력들이 나타날 것이다. 어떤 작가는 “한국은 김대중도, 한강도 품을만한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곧 알게 된다. 여기저기 SNS가 불꽃 튈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에선 또 패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문학은 문학이다. 문학은 문학대로 두고, 너흰 정치로만 싸워주기 바란다.”

 

필자.jpg

이용우(언론인·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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