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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이유
김외숙의 문학카페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01 2024 02:43 PM
최근에 우리나라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상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한 번쯤 지나가는 말로라도 들어봤음 직한 노벨상이란 이름, 그중에서도 한 사람의 정신적 작업의 산물인 소설로,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둔 즈음이면 늘 시인 한 분과 소설가 몇 분이 매스컴의 관심을 받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하다던 분이 불미스러운 일로 관심에서 멀어진 이때, 정말로 그 엄청난 상을 받을 거란 예상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으므로, 서울에 사는 한 친구가 ‘한강 작가, 노벨상 받는대. 어떻게 생각해?’ 하며 내게 알려 왔을 때, 나의 첫 반응은 ‘한강 작가가? 진짜?’였고, 진짜인 줄 알고는 ‘와, 좋겠다, 드디어 한림원에서 우리나라 작품을 알아줬네?’라며 수다스러운 반응부터 보였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한 친구 질문의 뉘앙스가 좀 걸렸다.
‘어떻게 생각해?’란 질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친구는 한 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강 작가를 이전부터 부러워했었는데, 수년 전 그녀의 다른 상 수상 작품을 읽으면서였다. 또 한 번은 몇 해 전, 영국 여행 중에 옥스퍼드의 한 서점에서 맨 부커상 수상 작품으로 서점에 진열되었던 그녀의 책을 사면서였다.
그가 누구든 나는, 좋은 문장의 작품을 쓰는 사람이 부럽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장이란, 그 이야기를 가장 그 이야기답게 그려내려 한 그 작가 특유의 문장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해석이다.
언스플래쉬.
그런데, 내 눈이 쉬이 피로를 느껴서 읽는 대신 좀 가라앉은 심정으로 누군가의 좋은 문장을 듣고 또 되풀이해 들으며 감상하고 있던 두어 주 전에, 날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은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으로, 내게 꾸러미 하나를 전했는데, 그 속에 신문을 스크랩해 만든 세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이 스크랩 북을 만들어주신 분이, 창작에 도움 될 테니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이제 다 읽었으니 작품 주인인 김외숙 작가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맞다 싶어 갖고 왔다.’고 했다.
그 스크랩 북은 캐나다 한국일보에 연재된 김외숙의 장편소설, <유쾌한 결혼식>, <그 바람의 행적>, <그 집, 너싱홈>, 3편이었다.
한 권은 오래된 광고 책자에다 매일 그날의 연재 난을 오려 붙여 만든 것이었고, 두 권은 매일 스크랩한 연재작품을 장편소설 연재 안내 기사를 붙인 달력을 표지로 하여 만든 책이었다.
낱낱이 열어보면서, 작품에 대한 어떤 분의 관심을, 정성을 내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느꼈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벅차면서 그 순간의 심정대로라면, 나도 노벨 문학상 수상작 버금가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4편의 장편소설을 한국일보에 연재했었다. 한 편의 장편은 분량에 따라 연재에 4-5개월 걸리는데 신문을 펼칠 때마다, 알맞은 분량의 글을 매일 올리는 번거로운 일을 하는 한국일보 측에 고마워하면서도 일일이 읽지는 않았다. 이미 하도 많이 읽어서 그 문장들을 외울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러함에도 행여 부실한 문장이 눈에 띌까, 저어해서였다.
작가라면 누구나, 작품이 손안에 있을 때 더 이상 손댈 일 없도록 퇴고의 과정을 거친 후 떠나보내지만, 다음에 읽으면 꼭 고치고 싶은 문장이나 하다못해 오타라도 나오던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이미 활자화된 문장에서 오류를 발견한 심정 같았을 때, 한 독자는 아침마다 정성껏 읽은 후, 손수 세 권의 책을 만들어 글쓰기 좋아하는 분에게 읽게 하고, 그렇게 세 권은 돌아서 내 손까지 온 것이다.
문예 창작은 산고에 비유되기도 한다. 없던 것을 정신에서 뽑아 문장으로 직조해 내는 지난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고단한 작업을 희열로 아는 사람이 작가다.
독자의 관심이 바로, 희열의 근거다.
그래서, 쓰는 것이다.
김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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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