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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약자 흉내... ‘밈’ 유행에 숟가락 얹기
‘SNL’ ‘나는 솔로’ 잡음이 드러낸 예능 속 약자 경시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08 2024 11:16 AM
SNL, 국감 출석한 하니 말투 흉내... “인종차별” 시끌 미성년 캐릭터 ‘정년이’ 성적 대상으로 패러디해 논란 “권력 비트는 게 올바른 패러디... SNL 콩트는 무의미” ‘나솔’ 방송작가 계약서 안 써 과태료... K예능의 그늘
#.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한 K팝 외국인 아이돌의 설움이 웃음거리로 활용됐다.
#. 시청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 솔로들의 핑크빛 만남이 알고 보니 비정규직 작가의 불안한 지위를 악용한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졌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 화제의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와 케이블채널 SBS플러스·ENA 인기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둘러싼 잡음으로 드러난 K예능의 그늘이다. 사회적 약자를 함부로 다뤄 물의를 빚은 게 두 논란의 공통적 원인이다.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콘텐츠로 해외에서 역풍을 맞은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국내 예능 제작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국정감사' 한 장면. K팝 아이돌그룹 뉴진스의 외국인 멤버 하니가 서툰 한국말로 울먹이며 최근 국정감사에 출석해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증언을 하는 말투를 따라해 논란을 빚었다. 쿠팡플레이 영상 캡처
‘SNL코리아’는 약자를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따라하기로 최근 거듭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9일 공개된 ‘SNL코리아’ 콩트 ‘국정감사’의 한 장면. 흐느끼던 한국인 배우 지예은은 말을 일부러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회사 복도에서 직원분을 만나서 인사를 했는데 옆팀 상사님이 ‘야, 그냥 무시해’라고 하셨습니다. 저가 너무 슬펐습니다.” 아이돌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최근 국감에 출석해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증언을 하다 감정에 복받쳐 서툰 한국말로 울먹인 모습을 따라한 것이다.
하니는 베트남계 호주 국적자다. 미국 백인 배우가 아시아계 이민자가 서툰 영어로 피해를 호소하는 모습을 미국판 ‘SNL’에서 따라 했다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쇄도했을 것이다. 인권 감수성이 개선된 덕에 한국 여론도 발칵 뒤집혔다. “하니의 어눌한 말투를 따라한 건 인종차별”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하니가 국감장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소신 발언 한 걸 따라 했다면 몰라도, 외국인의 서툰 말투만 따라한 건 조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약자의 단순 모방은 패러디가 아니라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하니 콩트는 ‘패러디’를 ‘단순 흉내’라고 생각하는 K코미디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짚었다.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도 “대중이 막연하게 권력을 숭배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위치에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게 하는 게 패러디의 사회적 효과”라며 “하니를 소재로 한 ‘SNL코리아’의 콩트는 어떤 사회적 효과도, 카타르시스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한 흉내 내기이며 그래서 문제적”이라고 봤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 콩트 '정년이'에 등장한 젖년이 캐릭터. 코미디언 안영미가 신체 특정 부위를 부각하며 패러디해 잡음이 불거졌다. 쿠팡플레이 영상 캡처
일주일 뒤인 26일 ‘SNL코리아’는 1950년대의 10대 소녀들이 여성국극 배우로 꿈을 키우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 ‘정년이’를 따라 하며 난데없이 ‘젖년이’ 캐릭터를 등장시켜 여론을 다시 들끓게 했다. 미성년 여성 주인공을 성적 패러디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패러디의 정의를 이해지 못하는 건 ‘SNL코리아’의 고질적인 문제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인터넷 방송인 ‘과즙세연’(본명 인세연)이 미국에서 동행한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된 상황을 지난 8월 패러디했을 땐 과즙세연의 직업과 활동명은 노출하고 방 의장의 이름과 직업은 물음표로 지웠다. 패러디를 하면서 권력자(방 의장)의 정보는 드러내지 않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먹방' 유튜버 쯔양(오른쪽)이 지난 1월 올린 영상에서 코미디언 김지영이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을 흉내 내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인종차별 비판에 영상은 삭제됐다.
해외에선 K예능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인기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 쯔양은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을 흉내 내는 코미디언과 함께 찍은 먹방 영상을 지난 2월 올렸다가 “인종차별”이란 필리핀 네티즌들의 항의에 영상을 내렸다.
패러디가 방향을 상실한 건 제작진이 인터넷 화젯거리, 즉 밈(meme)에 편승해 함부로 패러디하려 하기 때문이다. 김교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예능 제작진들이 ‘밈’만 쫓는 데 급급해 시각적 이미지에 집착하고 화제에 숟가락만 얹는 식의 의미 없는 ‘가짜 패러디’를 하다 보니 코미디란 이름으로 가해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패러디한 장면. 쿠팡플레이 영상 캡처
예능 제작 현장의 그늘도 짙다. ‘나는 솔로’ 제작사인 촌장엔터테인먼트는 최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서 방송작가와 서면 계약서를 작성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서다. 이 조사는 “제작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작가들에게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고 적정한 수익 배분을 거부했다”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의 신고에서 비롯됐다. 성상민 대중문화 평론가는 “코미디와 연애 예능의 양대 축인 ‘SNL코리아’와 ‘나는 솔로’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예능의 퇴보를 보여준다”며 “정치적 올바름(PC)을 핑계로 코미디와 예능의 위기를 말할 게 아니라 시대에 맞는 제작 시스템의 개선을 먼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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