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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망’이라는 청춘들 “그래도 ‘조금 망한 사랑’이라면 괜찮겠지요”
김지연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11 2024 11:09 AM
연인 위해 대출받아 1억원 빚지고 바람 피운 남편 이별 통보하는 등 다양한 삶의 곤란 마주한 청춘들
‘망한 사랑’은 분명 절망적이다. 그렇지만 ‘조금’ 망했다면 어떨까.
2,000만 원을 빌려준 사촌의 전 연인이 잠적해 버리거나(‘포기’),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가 오른손이 프레스기에 끼여 다치거나(‘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바람을 피운 남편이 아이는 잘 키우겠으니 제발 헤어져달라고 빌거나(‘좋아하는 마음 없이’).
소설가 김지연. 본인 제공
김지연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 속 등장인물들은 이처럼 각기 다른 삶의 곤란에 마주해있다. 그러나 “제구실하지 못하고 끝장이 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의미의 ‘망하다’라는 표현을 쓰기엔 지나치다. 복구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이르진 않았거나, 말 그대로 조금 망했을 뿐이다.
수록작 ‘반려빚’의 주인공 ‘정현’은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능한 수준까지 대출을 받아 준다. 그러나 이별 후 남은 건 1억6,000만 원의 빚. 친구에게 “나 망했어?”를 묻는 정현 역시 조금 망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반려동물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에서는 “빚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럼에도 정현은 돈은 어떻게든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애써 믿으며 살아간다.
조금 망한 사랑·김지연 지음·문학동네 발행·336쪽·1만7,000원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2022)에서부터 ‘조금 망한 사랑’까지. 김 작가의 시선은 빛나는 청춘의 시기를 ‘그럭저럭’ 보내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김 작가는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늘 빛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막상 소설을 쓸 때는 하려던 일이 잘되지 않고 좌절하는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간다”면서 “‘조금 망한 사랑’에 나오는 사람들도 잘해보려고 했으나 목표, 꿈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망한 삶의 천재’(전청림 문학평론가)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에 붙는 이유다.
김 작가는 “쓸 때는 (소설 속 상황이) 그렇게 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인물들이 ‘망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반려빚’에서 정현에게 빚을 지게 하고 어느 날 불쑥 다시 나타난 전 연인이 거듭 “너 하나도 안 망했어”를 읊조리듯이.
김 작가는 이어 “뭔가를 더 해보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이들을 더 그려보고 싶었다”며 “외부 환경이나 상황이 기대한 만큼 좋지 않더라도 일말의 희망은 늘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실패한 채로도 삶은 이어진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김 작가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일말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수록 작품 ‘유자차를 마시고 나를 쓰네’에서 가족이 교통사고로 모두 죽어버린 ‘삼촌’은 “죽을 때까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묻는다. 삼촌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그러다 보면 “지극히 행복할 때 느닷없이 슬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채로 살아가게 된다. 좋은 사람이라서 고른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헤어진, 수록작 ‘좋아하는 마음 없이’의 ‘안지’가 이혼하고 5년이 지나 “이번에는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과 재혼을 했듯이.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한 김 작가는 지난해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선정한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단 한 편의 소설을 발표한 신인이지만, 앞으로 ‘김지연풍’ 소설을 기대해도 좋겠다”(신인상 수상자 인터뷰)는 말을 그는 현실로 만들고 있다.
이번 소설집 제목을 지은 편집자와 “망했지만 조금이니까 괜찮겠지요”라는 메일을 주고받았다는 김 작가는 독자들에게 말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나이의 분들이 많이 읽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빛나고 밝은 장면을 그리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장면이 많이 있지 않을까요.”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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