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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음’님
신순호 | 동화작가/소설가·캐나다문협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Dec 02 2024 01:31 PM
‘얼마나 슬프세요.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요. 좋은 데 가셨을 거예요.’
부모님 상을 당한 지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동안 내가 해온 말이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 아픔의 천분지 아니 만분지 일도 모르면서 위로한답시고 가식적인 말을 내뱉은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허술하고 건성인 말들이 가시가 되어 온몸에 박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강 건너 불이 나서 몹시 안타까운 정도의 마음이었지 절대로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이민을 결정하면서 장차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의 나이 여든이 넘어가면서 언제든 한국을 다녀올 때면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각오를 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런 막연한 감정은 직접 닥쳐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는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제법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자부했었는데, 갑작스레 연락이 온 동생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흑흑 아버지 돌아가셨어.”
“뭐? 허억…. 아이고. 왜? 왜? 갑자기 왜?”
나도 모르게 비명과 악을 쓰다 주저앉고 말았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엉엉 울음이 터져 나오고 체면 불고하고 전화기가 터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고 까맣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짜내도 짜내도 계속 눈물은 나왔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온몸을 감쌌다. 누구 보라고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몸속 깊은 곳에서 ‘아이고’ 곡소리가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끊임없이 나왔다. 정신이 아득했다. 살점이 하나하나 찢겨 나가 분쇄되는 것 같았다. 2주 전 볼일 때문에 다녀온 일주일이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게 된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니. 그것이 마지막 만남인 줄 알았다면 그 소중한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날 밤 잠시 몇십 분 나눈 대화와 새벽에 공항을 가기 위해 나서며 몇 초간 안아본 아버지의 어깨가 전부라니. 아버지와 포옹한 그 순간 나는 ‘사랑해요, 아버지.’이 말을 몇 번이고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평생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드리지 못했는데 결국 다시는 할 수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마음으로는 수백 번도 더 했음에도 막상 부모님 앞에 서면, 이 아름답고 편안한 단어가 절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결국 말을 꿀꺽 삼키며 다음엔 꼭 해야지 했다. 다음에….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계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줄 알았다. 다음에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게 다음은 없었다.
세상이 좋아져 요즘은 너나없이 국제전화 없이도 휴대전화 메신저라는 신문물을 통해 한국의 가족이나 지인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불현듯 생각나면 시간 맞춰 메신저로 전화하고, 문자, 사진을 보내고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리 가르쳐 드려도 사진 업로드나 채팅은커녕 보이스톡도 잘 못 하셨다. 사진을 전송해도 아주 한참 지난 다음에 동생들을 통해 확인하시던 아버지. 그래도 메신저 첫 화면에 ‘하이’라는 문구와 등산복 차림의 소개 사진을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가끔 생시처럼 문자를 남기고, 사진도 남겼다. 당연히 읽지 않음을 확인하면서도 차마 나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간혹 내가 올린 글이나 사진을 보면서 진작에 좀 자주 할걸, 좀 더 확실히 가르쳐 드려서 자식이나 손주들과 쉽게 연락하시게 할걸…. 그런 생각들을 했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매일 연락하고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릴 텐데…. 깨닫고 보니 이젠 옆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왜 이렇게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지 정말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내 메신저 친구명단에 있는 아버지 사진을 보는 것이 그런대로의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히 들여다본 친구명단에 아버지가 없는 것이었다. 혹시 실수로 삭제했나 싶어 황급히 하나씩 확인해 보니 ‘알 수 없음’님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대화창으로 들어가 보니 이제껏 읽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보낸 메시지가 모두 읽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가슴이 두근거렸다가 이내 맥이 풀렸다. 이 와중에 아버지가 읽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이없었다. 그러고 보니 거의 1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누군가 주인이 없어져 버린 아버지의 핸드폰 전화번호로 개통했나 보다. 당연히 못 보는 줄 알면서도 어딘가 얘기하고 사진도 보여주고 할 데가 있다는 게 정말 큰 위로였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허전함과 함께 또다시 눈물이 솟았다. 너무 슬펐다. 이젠 정말 아버지의 흔적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마음이 참 아팠다. ‘알 수 없음’님이 된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아무 문자조차 남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또 슬펐다. 아버지가 ‘알 수 없음’님이 되면서 소개 사진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제 정말로 아버지를 잃은 것 같아서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전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목을 놓아 울지는 않았지만 신음 같은 작은 한탄과 주르륵 온 얼굴을 적시는 눈물은 여전했다. 지금의 눈물은 그리움과 후회의 눈물이었다.
언스플래쉬
아버지는 마지막 벚꽃의 흩날림을 보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또 그 봄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나에게는 소중한 뒷마당 텃밭이 있다. 이 텃밭은 이민 간 맏딸을 처음 보러오신 아버지가 이 좋은 땅에 잔디만 키우냐며 손수 땅을 파서 자그마하게 만들어주신 것을 매년 확장한 것이다. 오이, 호박, 토마토, 상추, 쑥갓, 부추, 깻잎 같은 한국 작물을 키워 여름 내내 우리 집 밥상을 풍성하게 해준다. 그 텃밭에 새로운 식구를 작년에 하나 들였다. 아버지 생전 마지막 방문했다가 떠나올 때 새벽 빈속에 먼 길 떠나는 맏딸을 위해 아버지가 방울토마토를 싸주셨다. 전날 제법 거리가 먼 청과물 가게를 불편한 다리로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사 오신 것이다. 나는 귀찮아하며 안 가져가려 하다 비닐봉지에 싸서 자꾸 들이미시는 것을 더 이상 마다하지 못하고 가방에 넣었다. 비행기에는 외부 음식을 못 가져간다고 투덜대는 내게 공항까지 가는 차에서 먹으라 하셨고, 나는 그것을 발권을 위해 줄을 서며 하나씩 꺼내먹었다. 정말 이제껏 내가 먹어본 적이 없었던 달콤한 방울토마토였다. 그런데 다 먹은 줄 알았던 그중 한 개가 어쩌다 가방 밑바닥에 깔려 뭉그러진 채 캐나다 내 집까지 따라온 것이다. 그 방울토마토가 너무나도 달았기에 나는 말라붙은 씨앗 중 한두 개를 텃밭에 심었다. 얼떨결에 비행기로 14시간이나 실려 와서 생전 처음 접해보는 낯선 공기와 흙, 물을 받아먹으며 그 방울토마토는 잘 자라서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다. 나는 뜨거운 여름내 그 방울토마토가 비바람과 낯선 풍토, 곤충의 공격을 잘 이겨내는지 과연 열매를 맺을 것인지 걱정과 기대를 했었지만 기우였다. 방울토마토는 너무나 튼튼하게 잘 자랐고 아버지가 주셨던 것과 같은 달콤한 열매를 내게 주었다.
아버지가 ‘알 수 없음’님이 되는 동안, 마지막으로 내게 주신 방울토마토는 이곳에 자손을 남겼고 나는 새로운 봄에 다시 그 자손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정해진 순리에 따라 여름이 왔고 방울토마토는 올해도 나에게 달콤한 열매와 씨앗을 남겼다. 나는 텃밭 일하다 빨갛게 영근 방울토마토를 한두 개 따먹으며 그날 아버지의 얼굴과 몇 마디 나누지 않았던 대화를 하나하나 되새겨 본다. 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사소했던 작은 일화들도 떠올려 본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와의 인연은 ‘알 수 없음’님으로 끝난 것 같지만 이렇게 나의 기억과 눈앞의 방울토마토로 이어지고 있다. 비닐봉지에 담은 방울토마토를 건네주시던 그 따뜻했던 손길과 마음도 텃밭의 방울토마토를 보면 계속 생각이 날 것이다. 그래서 비록 아버지가 ‘알 수 없음’님이 되었지만 나는 늘 ‘알 수 있음’이다.
신순호 | 동화작가/소설가·캐나다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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