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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티끌 걷어내기 - 경거망동(輕擧妄動) 2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Dec 14 2024 09:15 AM
독일에 사는 한 독자의 권유로 A사(寺) 사이트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의 시와 수필을 올려왔다. 나의 블로그에, YMCA의 ‘문화산책’을 진행하면서 다룬 시와 수필들을 ‘K-문화산책’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공간을 통해서 독자가 된 분이다.
A사(寺) 사이트의 글방을 이어가면서 스님과 단골보살님들의 댓글과 단체방 등으로 의견도 주고받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듣고 배우면서 불교식의 마음가짐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중에 얼마 전 불교관련 책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있었다. 그 주고받음의 과정에서 한 독자가 나에게 S스님의 저서를 보내겠다면서 나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 저서를 읽으면서 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배웠다고 하며 그 감동을 나와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메일로 주소를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그 소통을 본 B보살님이 나에게 자신에게도 주소를 알려달라는 요청과 함께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올려놓았다.
나는 불교 관련서적에 대한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이라서 B보살님도 책을 보내 주시려나보다 생각했다. 고맙고 반가운 일이긴 했지만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주소를 알려드리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도반님들과 마음의 길을 튼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말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언스플래쉬
‘B보살님, 참고로 주소를 알려드리긴 했습니다만, 책은 안 보내셔도 괜찮습니다.
읽을 만한 책이름과 저자, 출판사 등만 알려주시면 제가 이곳에서 구해보겠습니다.
마음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문을 열고 소통하게 된 것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그 메일을 띄우고 난 뒤에 앗차! 실수! 내가 경망스러웠구나 하는 번개가 스쳤다.
불교관련 책에 대한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이라서 책을 보내려나보다 하는 지레짐작으로 한 나의 말이 어쩌면 B보살님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뒤늦은 생각 때문이었다. 만일 B보살님이 나에게 책을 보낼 생각이 없이 다른 용도로 주소가 필요했다면, 책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 나의 말이 그 보살님에겐 부담이 될 것이고, 그 때문에 잠시라도 ‘책을 보내야하나?’ ‘무슨 책을 보낼까?’ 하고 고민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은근히 부추기거나 옆구리 쿡 찌르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꼭 책을 보내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인데, 그렇다면 나의 지레짐작은 섣부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책을 부쳤다고 치자. 그건 내가 옆구리 찔러 절 받은 식이 되고 만 것이다. 나의 섣부른 지레짐작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터이니, 보내는 보살님도 받은 나도 상큼하지 않을 일이다. 생각이 자꾸만 그렇게 굴러가다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나의 마음에 티끌 한 개가 생겼다. 그것은 또 하나의 경거망동이 아닌가, 오, 이 경거망동!
우리말에 ‘건너짚다가 팔 부러진다’거나,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거나, 또는
‘쿵 소리 듣고 슬쩍 문고리 벗겨놓는다’는 말도 있다. (혼자 사는 여인이 누군가 담을 넘는 쿵 소리에 잠가둔 문고리를 벗겨놓는다는 비유)
꼬리를 무는 생각에 둘러싸이면서 서둘러 메일의 발송취소를 하려고 다시 들어갔지만 B보살님의 이메일 주소와 내가 사용하는 이메일이 다른 웹사이트 시스템으로 서로 기능이 달라서 발송취소를 할 수가 없었다.
한번 저질러진 일을 어쩌겠는가. 찜찜한 채로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B보살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A사(寺)의 달력을 보내주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 다행!
비로소 안도의 마음과 함께 후련했다. 마음에서 티끌 한 점을 걷어낸 기분이다. 팔 부러지지 않아도 되고, 김칫국부터 마신 경우가 되지 않아서이다. 더불어서 작은 티끌 한 점 걷어내는 일도 결코 쉽지 않음을 더불어 새긴다.
코앞으로 다가선 연말, 뒤숭숭한 시간의 연속이다. 꼭 연말 탓만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 주변 사회의 쾌청하지 않은 일들이 보도될 때마다 뒤숭숭함이 더욱 가중되는 판국에 한시름 던 셈이다.
누구라도 어쩔 수없이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게 되는 이 시점에서 크든 작든, 한 가지라도 티끌이 없기를, 있는 티끌을 한 개라도 걷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머니 속에 든 재주가 튀어나오는 것이라면 몰라도 경거망동이 튀어나오는 이 난감한 존재가 어찌 민망하지 않겠는가. 어디 민망뿐인가. 중학생 때부터 다진 그 마음의 좌표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나이 들어감이 정말 부끄럽다.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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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