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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협 신춘문예 소설 가작...'새뜸 마을'
오윤미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an 09 2025 01:37 PM
우리 가족이 새뜸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자 학교에 부설된 도서관의 관장이셨다. 어느 날 도서관에 도둑이 들어 귀한 도서와 비품을 훔쳐 갔다. 상당한 재정적 손해를 본 학교에서 아버지에게 재정적 책임을 물었고, 이로 인해 우리가 살던 이층 양옥집을 처분해야 했다. 난데없이 빈털털이가 된 우리 가족이 갈 수 있는 곳은 외곽지대에 있는 새뜸 마을 뿐이었다.이사하는 날 일꾼들은 짐을 크기와 아귀에 맞춰 트럭에 실었다.
아버지와 동생들은 먼저 떠나고, 엄마와 나는 트럭 조수석에 앉았다. 트럭은 곧 동네를 벗어났다. 나는 멀리 있다가 다가오고 사라지는 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도 간간이 트럭의 뒤칸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단단히 묶은 노끈 틈 사이로 차가 달릴 때마다 반복적으로 한껏 몸을 부풀려 올라갔다. 가라앉는 검은 비닐거죽이 마치 숨을 몰아쉬는 생물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리자 트럭은 대로를 벗어나 천변 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 경사를 오르더니 언덕 위 활짝 열린 대문 사이로 들어가 멈추었다. 엄마와 나는 주섬주섬 발 밑에 있는 귀중품을 챙겨 트럭에서 내렸다.그리고 주위를 돌아 보았다. 우리가 살 집은 언덕 위에 있었기에 마을의 전경을 한번에 볼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붕들과 지렁이의 희미한 선 같은 골목들이 집들 사이에 있었다.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 있고 창공의 무리진 새들이 쏠려 다니거나 곡선을 그리며 솟구쳐 날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는 빨랫줄이 있었고, 누군가 방금 걸쳐 놓은 듯한 저고리, 양말, 속꼬쟁이, 면 치마가 가지런히 널려 있었다. 젖은 옷에서 떨어지는 콩알만한 물방울이 마른 땅에 깊이 패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바라보며 구멍의 숫자를 세었다. 건너편에 나무 지붕이 있는 우물이 보였다. 떨어진 감꽃들이 나무 지붕 위에 별처럼 촘촘히 널려 있었다.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기역자형 기와 집으로 트럭에서 내린 짐들이 옮겨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삐거덕’하고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우물 건너편 별채 부엌에 한 할머니가 서있었다. 너무 뚱뚱해서 팽팽한 몸이 문 사이에 꽉 끼어 있었다. 몇 가닥 되지 않는 머리를 당겨 뒷목에서 길다란 은 비녀로
동그랗게 쪽을 지었고, 끈으로 단단히 묶은 갈색 저고리 틈사이로 통통한 젖가슴이 삐져나왔다.
발목이 드러난 낡은 무명 치마 아래 튼튼해 보이는 발목은 교각처럼 견고해 보였다. 할머니는 뒤로 부엌 문을 닫더니 문지방을 가뿐하게 넘어 뒤뚱뒤뚱 걸어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듯 진동이 느껴졌다. 트럭 옆에서 아저씨들에게 지시하고 있던 엄마는 할머니를 보자 반색을 하고 달려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나와 동생들을 불렀다. 엄마는 쭈뼛쭈뼛 망설이는 우리를 할머니 앞으로 살짝 밀면서 말했다. “인사 드려라.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집의 주인이시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아유, 요 녀석들 예쁘게도 생겼네.” 숭숭 뚫린 이빨 사이로 작고 검은 동굴들이
보였다. 목소리는 거칠었으나 왠지 정감이 갔다. 할머니는 내 머리를 크고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니가 큰 아이구나, 이름은 뭐니?” 나는 대답했다. “선영이요.” 엄마는 양갈래 머리의 새침떼기 여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애는 선미예요. 큰애보다 한 살 어려요.” 할머니는 잊어서는 안 되는 주문이라도 외우듯이 살에 묻힌 작은 눈을 굴리며 내 이름과 동생의 이름을 몇번이나 되뇌었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도나무깡 할머니’라 불리었다. 몸이 크고 원기둥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구별이 안된다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 참기름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고, 먼 친척의 아들을 입양해 키웠다. 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명석하고 공부를 잘해 할머니의 자랑이었지만, 명문대에 다니던 중 행방불명 되어 생사를 모른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본집을 내어 주고 자신은 별관에 살면서 그 세를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달동네인 새뜸 마을에서 우리 가족의 삶은 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내 옷처럼 편하고 익숙해져 갔다. 아버지는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다정하게 안부를 건네며 허물없이 지냈다. 하지만 엄마는 기름 위에 뜬 물처럼 새뜸마을에 정착하지 못했다. 엄마는 잠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잠시 이곳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동네를 벗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는 동네 아낙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엄마는 잘난 남편 덕에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사치나 하는 철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점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았다. 도서관 도난 사건 여파로 아직 남은 빚이 있어 여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도 궁핍한 티를 내지 않았다. 집 주변을 산뜻하고 청결하게 유지했고 자신의 취미생활도 계속했다. 이사 오기 전 이층 양옥집 살 때처럼 매일 들꽃을 한아름 투명한 병에 담아 구석구석에 두었다. 집안엔 고운 향기가 가득 찼다. 아침 청소를 할 때면 문을 활짝 열고 커다란 전축 위 LP판의 볼륨을 올렸다. 한국가요나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운명 교향곡’이 앞마당을 넘어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럴 때면 난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 같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엄마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문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만 청소를 하거나 뜨개질만 하던 엄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끔 외출을 하더니, 점점 매일 출근하듯 동네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동네 아낙들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외출 빈도가 높아질수록 소문도 점점 더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 이 소문은 아버지에게도 전해졌지만, 아버지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새뜸 마을로 이사온 뒤로 점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져 가는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의 실수로 인해 엄마의 삶의 패턴이 변화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엄마를 믿고 신뢰했다. 엄마가 집안일이나 아이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자 그 빈자리를 도나무깡 할머니가 채워 주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작은 바구니를 주면서 텃밭에서 애호박과 토마토를 따오라고 했다. “아주 어린
호박도 말고 너무 늙은 호박도 안된다. 어린 건 더 자라야 하니까, 늙은 건 다음에 호박죽을 해 먹자.”라고 했다. 우리는 신이 나서 텃밭에 달려가 잘 익은 애호박을 몇 개 바구니에 넣었다. 끈으로 묶어 얼기설기 얽힌 대나무 줄기를 따라 주렁주렁 열린 토마토도 몇 개 담아서 별채 부엌으로 왁자지껄 몰려 갔다.
할머니는 풍로 손잡이를 돌려 심지에 불을 붙이고 들깨 기름을 부은 후라이팬을 달궈 놓았다. 그리고 송송 썬 호박을 밀가루 반죽에 묻혀 한 국자 떠서 팬에 올려 놓으면 지글지글 맛있는 호박전이 익어 갔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와 배가 고픈 우리는 군침을 흘리며 익은 호박전이 접시에 옮겨지기를 기다렸다. 여동생은 식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한 입 손으로 집어 먹고는 뜨겁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호통을 치며 기다리지 못한 여동생에게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약삭빠르지 못한 남동생이 행여나 제 몫을 다 챙기지 못할까 봐 제동을 거는거였다.
여동생과 내가 게 눈 감추듯 정신없이 먹는 사이 할머니는 자신은 먹지도 않고 따로 챙긴 호박전을 호호 불어 남동생 입에 한입씩 넣어 주었다. 모두 배가 불러 잠잠해질 때까지 할머니는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호박전을 계속 부쳤다. 할머니의 남동생을 향한 사랑은 지극했다. 매일 오후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태권도 학원에 데리고 다녔다. 저보다 덩치가 큰 아이들에게 맞고 다니던 것을 걱정하여 엄마에게 권유해서 허락을 받아 낸 결과였다. 도장에 데리고 간 할머니는 구석에 앉아 키가 작고 약골인 남동생이 야무지게 품새 하는 것을 끝까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관장이 남동생을 할머니에게 데려 오면서 “곧 검은띠를 따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모두 다 관장님 덕입니다. 이젠 큰 아이들에게 안 맞고 다니겠네요.” 하고 안심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사서 동생의 손에 쥐어 주었다. 할머니와 남동생은 마치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다. 목소리가 크고 말투가 거칠어 동네 아이들은 겁을 냈지만 우린 할머니가 사실은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가끔 엄마는 할머니가 친가족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투덜댔다. 그건 사실이었다. 성격이 불같은 할머니가 가끔 못마땅한일이 생기면 엄마에게도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직접 대놓고 할머니에게 불편한 맘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엄마는 시내에서 허리 고무줄이 한없이 늘어나는 월남 치마를 선물하거나 저녁에 돌아오면서 신문지로 싼 따뜻한 군고구마를 건네 주곤 했다. 엄마가 문을 똑똑 두드리면 방문을 열고 내미는 군고구마를 받으면서 “아유, 이를 어쩌나. 자네나 들지.” 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할머니는 다음날 방과 후 아이들을 위한 간식으로 군고구마를 먹지도 않고 아껴두었다.
어느 날이었다. 난 자정 무렵에 잠에서 깼다. 생선은 비려 절대 먹지 않겠다는 걸 아버지가 억지로 숟가락 위에 자꾸 올려 주었기에 꾸역꾸역 먹은 것이 체했다. 계속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마당 외진 구석에 있는 음침한 변소 가기가 너무 무서워서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아랫배 통증이 심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낮에 보았던 우물가의 감나무 아래 요강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 방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두 그림자가 호롱불에 반사되어 격자문에 어른거렸다. 왼쪽에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몸집의 그림자는 할머니였고, 오른쪽의 키가 크고 마른 그림자는 알 수 없었다. 문틈 사이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나비 날개짓처럼 희미하고 고요한 대화였다. 상대방은 남자였는데 목소리가 낮고 굵었다. 그는 할머니가 차린 밥상 앞에 있었는데, 식사 중인지 오른 팔이 열심히 오르락내리락 했다. 간간이 대화 도중 숟가락이 밥공기에 부딪치는 소리도 분주하게 들렸다. 이 한밤 중에
‘누굴까?’ 궁금했지만 방문을 열고 아는 척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순간 엉덩이가 따끔거리며 간질간질했다. 난 엉덩이를 들고 손으로 사기 요강 주변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감나무에서 떨어진 물컹한 송충이가 몇마리나 만져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세게 뿌리치면서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안에서 들리던 소곤거림도 ‘뚝’ 그쳤다. 숟가락질하던 팔 그림자가 잠시 공중에 멈추더니 번개처럼 후다닥 사라졌다.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고개를 밖으로 ‘쑥’ 내밀며 좌우로 주변을 살폈다. 난 얼른 우물 뒤로 숨어 쥐 죽은듯이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한 할머니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림자가 나타나고 다시 숟가락 소리와 대화가 이어졌다. 안도의 숨을 깊이 쉬고 살금살금 걸어 방으로 돌아갔다. 난 졸려서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이 되자 할머니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디선가 그 정체 모를 사내가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별채는 여느때처럼 정적만이 흐를 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기웃거려 봐도 흔적을 찾지 못했기에 아마도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몽롱한 정신이 일으킨 착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꿈결처럼 나비 날개 팔랑거리는 듯 속삭이는 은근한 소리와 숟가락이 그릇에 닿아 부딪치는 소리가 반복되는 환청에 시달렸다. 그즈음 할머니는 왠지 초조하고 긴장되어 보였다. 더 이상 우리들을 할머니 방으로 부르지도 않았고, 낮에 외출을 할 때면 소중한 보물을 숨겨 놓은 것처럼 철통 같은 열쇠로 방문을 꼭 잠그고 나갔다.
새뜸 마을에서 이쁜이 집이 가장 부자였다. 이쁜이 아버지는 어린 시절 가난해서 학교도 못 가고 배를 탔는데,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새틈 마을 근처 강변의 낡은 방앗간을 인수했다. 처음에는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아 겨우 생활하며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이 방앗간에 손님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명절이면 마비가 될 정도로 바빠져서, 방앗간을 새로 지었고, 일하는 사람도 더 고용했다. 이쁜이 엄마는 그 방앗간에서 잡일을 도와주는 처녀였다고 한다. 고운 얼굴의 어린 이쁜이 엄마에게 반한 이쁜이 아버지는 꾸준히 구애를 하다가 결국 함께 살림을 차렸다. 당시 그는 중년의 나이에 결혼을 이미 했었지만 자식이 없었기에 그것을 구실로 이혼을 강행했다. 이쁜이 엄마는 결혼 후에도 여전한 남편의 바람기와 거친 성격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머리를 2대 1로 가르고 포마드 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발랐으며, 사각진 얼굴 한가운데에 두툼한 코가 있었다. 술을 한잔 하면 코가 빨갛게 부풀어 헉헉 숨을 쉬었는데, 그럴때마다 그의 조끼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금 단추가 살찐 배의 압력으로 튕겨나갈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항상 취해 있고 사소한 시비에도 싸움을 벌였지만, 아무도 그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방앗간에서 많은 돈을 벌었고 그 번 돈으로 사채 놀이를 했는데,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급전을 빌려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횡포는 계속 커져 갔지만, 늦게 얻은 자식 이쁜이에게만은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했다. 수정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었지만 그가 이쁜이라 호칭했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불렀다.
이쁜이와 나와 복자는 동갑이었기에 학교도 함께 다녔다. 아침에 책가방을 메고 대문앞에서 기다리면, 아버지 손을 잡고 이쁜이가 늦게 나타났다. 세라복에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은 단발 머리 이쁜이는 그야말로 서양 공주 같았다. 이쁜이는 우리를 보자 잡고 있던 아버지 손을 뿌리치며 심술궂게 말했다. “아빠, 학교까지 따라오지마, 창피해. 오늘은 우리끼리 갈거야.” 그러면 그는 멋쩍어하며 벗겨진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이쁜이에게 가방을 건네주며 “사이 좋게 지내라.” 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쁜이는 그 말조차 듣기 싫다는 듯 아버지에게 가방을 건네 받자마자 휙 돌아섰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그가 이쁜이 앞에서는 마치 바람 빠진 고무 풍선처럼 축 쳐져 순종적인 모습을 보면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쁜이는 언덕 아래 코너를 돌 때까지 한번도 돌아 보지 않고 뾰로뚱하게 걸었다. 복자네 가족은 이쁜이네 기와집 한 모퉁이방에 세를 살고 있었다. 긴 방을 두칸으로 나누어 쓰고 있었다. 오른쪽은 아버지의 서재 겸 부부방이였다. 방이라고는 하지만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으로 덮여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좁았다. 복자 아버지는 전에 초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이였지만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이제는 집에만 머물러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그는 항상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시를 쓰거나 독서를 했다.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도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기진맥진 할 정도로 격렬하게 토해냈다. 가끔 활짝 열린 방문으로 벽에 기대어 지쳐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는 고개를 들고 먼 허공을 바라보며 숨만 쉬었다. 그가 곧 현실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보고 있었을까?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 들이는 그의 숭고한 체념의 모습은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이 있어, 어린 내 마음에도 그는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 식구가 많아 소란스러울 법한데 복자네 집은 언제나 절간처럼 고요하고 정지되어 있었다. 어떤 소리도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린 아기조차 울지 않았다. 복자 어머니는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고 마당 한가운데 약탕기가 올려져 있는 석유 풍로 곁에서 떠나지 못했다. 쉼없이 부엌을 드나들며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어린아이를 돌보는 복자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난 복자의 병적인 외로움과 예민함이 이해되었다. 복자네 가족 모두에게서 쌉살한 한약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침통하고 우울했다. 양립할 수 없는 고고한 정신과 연약한 육체의 종말은 그 검고 쓰디쓴 약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의 중앙에 공터가 있었다. 환하고 넓은 그곳은 동네 아이들이 접근하기 좋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궁 속의 태아처럼 결핍이 있는 아이들을 아늑하고 넉넉하게 받아 주었다. 그곳으로 달려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한번도 질린 적이 없는 다양한 놀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과 후면 한적하고 의미없는 마을 공터에 웃음소리와 생명력 있는 에너지로 가득찼다. 딱히 아이들을 유혹하는 놀이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구석에 오래된 커다란 떡갈나무가 하나 있을 뿐이다. 그 떡갈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뿌리가 밖으로 울퉁불퉁 튀어나와 아늑한 의자가 되어 주었다.
그 옆에는 마을의 공사를 위해 높이 쌓아놓은 자갈들이나 골재들이 벽에 쌓여 있었다. 그 곳에서 적절한 것들을 골라 쓰면 아주 훌륭한 놀이기구가 되었다. 가진 게 없는 아이들이 창조해 내는 놀이는 무궁무진 했다. 가장 재미있는 건 해질 무렵 숨바꼭질이었다. 술래가 벽에 이마를 기대어 눈을 감고 열을 세는 동안 각자 숨을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탱자나무로 담을 이룬 이쁜이 집 개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장독대나 부엌에 숨기도 했다. 뒷문 혹은 공터 수풀 속에 숨기도 했다. 혹은 담벼락에 술래가 기대어 서고 하나가 엎드려 굽으면 그 위에 모두 올라 타는 말타기도 했다. 술래가
눈을 감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말이 끝나기 전에 앞으로 전진하며 온갖 포즈를 취하다 균형을 잃으면 술래가 되었다. 아이들은 왁자지껄하면서 어둠이 깊어져 가로등조차 지쳐 희미해질 때까지 놀았다. 모든 놀이가 끝나고도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했다. 우리는 떡갈나무 뿌리의자에 듬성듬성 앉거나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불쑥 지영이가 끼어들었다. “귀신이야기 해 줄까?” 지영이는 깊은 골목 끝을 지나 인적이 없는 언덕 너머에 살았다. 그 주변은 커다란 과수원 밭과 묘지터의 경계를 이루며 넓게 야생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어두워지면 으시시해서 아무도 가지 않는 황폐한 곳이었다. 몇 개의 무너진 돌 계단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허물어져가는 폐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집이 지영이가 사는 집이다. 원래 커다란 마당이 있는기와집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살지 않고 방치되어 기본 골조만 남아 있었다.
겨울이면 언덕 너머에서 부는 세찬 바람이 허물어진 벽 사이를 통과하곤 했다. 부서진 문이 달려있는 방들은 신문이나 낡은 골재같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방 하나만은 온전하게 유지되어 그 안에서 둘이 살고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여인과 함께 살고 있는 지영이는 그 여인을 어머니라고 하거나 할머니라고 하지 않고 ‘그 여자’라고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여인은 너무 말라 뼈의 윤곽들이 보였다. 주름진 얼굴은 마른 거죽 같았고, 이빨은 하나도 없어 항상 우물우물하며 쉼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한쪽 눈은 하얀 막으로 덮여 시력을 잃은 듯 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지 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허리를 굽혀 지팡이에 의지하며 어슬렁거렸지만, 집을 벗어나 마을로 내려 온 적은 거의 없었다.
언제부터 지영이가 그 폐가에서 살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이사 왔을 때부터 그 아이는 이미 거기 있었다. 학교도 가지 않았으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많은지 적은지도 알 수가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동네에 내려와 늦은 밤에 널어 놓은 빨래를 걷어 가거나 낮에 빈집에 가서 먹을 걸 훔쳐 간다고 했다. 지영이는 항상 부시시하고 마른 풀이나 실 조각이 머리에 엉켜 있었다. 말이 없고 조용하지만 커다란 눈망울이 뚜렷하고 긴장해 있어서 결코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지영이는 온종일 동네 근방을 배회하다가 아이들이 공터에 모일 때쯤 나타났다. 어느 누구도 지영이에게 관심이 없어서 투명 인간처럼 대했다. 놀이에도 열심히 끼지만 그건 우리가 적극적으로 권유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슬그머니 놀이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편을 가르는 게임에서 만일 한
사람이 남아 어느 편도 들지 못할 때는 지영이는 당연한 듯 스스로 조용히 물러나 공터 떡갈나무 뿌리 위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놀이에 지쳐 땀에 젖은 채 가로등 아래 삼삼오오 앉아 있을 때면 지영이는 묘한 존재함으로 빛을 발했다. 지영이는 다시 말했다. “귀신 이야기 해줄까? 실제로 겪은일이야.“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영이 주변에 모여 들었다.
“알지? 우리 집 바로 앞에 묘지가 있는 거? 한가족이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살던 사람들이래. 그들이 밤이면 관 뚜껑을 열고 온다고…” “진짜야? 네가 직접 귀신을 보았다고? 너 거짓말이지?” 복자가 말했다. “그럼 이야기 하지 말까 ?” 하고 지영이는 말했다. 우린 복자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복자는 눈치를 보며 말을 바꾸었다. “아니야 해봐.“ 하고 침을 삼키며 바싹 다가갔다. 지영이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긴장감을 고조 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루는 내가 화장실 가려고 마당으로 내려왔는데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여자 귀신이 대문 앞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 날 바라보는 거야. 바로 요런 표정으로.” 지영이는 커다란 눈을 치켜뜨더니 정색을 하고 씩~ 입을 옆으로 늘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음영이 지영이의 얼굴에 으시시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우 ~ 와! 진짜?” 우린 웅크리며 닭살 돋은 몸을 서로 밀착시켰다.
“너무나 무서워서 난 도망도 못 가고 그 자리에 얼어버렸어.” 내가 물었다. “어떻게 생겼어?” “까만 머리를 풀어 헤치고 빨간 혓바닥을 내밀고 있어. 요렇게… 하얀 소복을 입었는데 관에 넣어질때 입은 소복 같아.” 지영이는 살짝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그냥 말없이 우리 집 쪽을 노려보는 거야. 어둠에 익숙해져 자세히 보니 그 여자 주변에 한 무리가 있었어. 가족이야. 누더기를 걸친 해골들인데 아이가 둘이나 있어. 난 나와 함께 사는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갑자기 소름이 돋았어. 우리가 오기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인데 원한을 가진 친척에게 어느날 잔인하게
몰살당했다고 했어. 그중 가장 키가 큰 색바랜 누런 저고리를 걸친 해골이 이빨 사이로 쉰 소리를 내며 말했어.“우리 집을 내놔.” 난 그말에 조금 화가 나서 용기를 내어 소리쳤어. 나와 여자는 이집을 떠나면 갈 곳이 없어! 이젠 우리 집이라고! 그랬더니 부엌 있는 곳으로 떼를 지어 붕붕 떠서 가더라. 아주 작은 해골 아이까지 차례로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문 틈 사이로 물컹하게 빠져가는 거야. 난 무서워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쓰고 밤새 부들부들 떨었어. 내 말을 듣고 여자는 윗목에 있던 소금 주머니에서 소금을 덜어와 방의 사각 구석에 뿌렸어. 그 때문인지 귀신들이 방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밤새 부엌에서 안방으로 들어오려고 일제히 방문을 밀쳐대는 소리에 잠을 못잤어. 다음날 아침 여자는 온 집안에 부적을 만들어 여기저기 붙이고 마늘도 집 처마에 걸어 두었어. 지금도 문틈으로 가끔 달밤에 집 주위를 서성이는 걸 보곤 해.” “안 무서워?“ “할 수 없지, 함께 사는 수밖에. 사실 우리집은 아니니까.’’ 지영이는 잠시나마 우리 그룹의 리더가 되었다는 자부심에 생동감이 있어 보였다. “조심해! 어쩌면 지금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지
몰라.” “캬악!” 온몸이 오그라든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때 우리가 옹기종기 기대어 있던 담벼락 위 작은 덧창문이 드르륵 열리고 귀신 대신 우렁찬 아줌마의 목소리가 천둥을 쳤다. “이년들아! 지금이 몇 시인데 남의 집 담 벼락 밑에서 잠도 못 자게 시끄럽게 떠들고 지랄이야!
새벽에 장사하러 나가야 하는데… 너네 어미 아비는 이 시간에 너네들 찾지도 않냐? 계속 떠들면 주둥이에 물을 확 찌끄러버릴 탱게 냉큼 집에 안 가!! 썩을 년들.” 하고 호통을 쳤다. 우린 엉거주춤 일어나 하나둘씩 흩어졌다. 아줌마는 얼굴을 문턱에 걸어 놓고 눈을 부릅뜬채 모두 사라질 때까지 온갖 욕이란 욕은 다했다. 아래 골목 사는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어둠 속으로 떠나고 난 홀로 가야할 위 골목 입구를 바라보며 서성였다. 아줌마가 한 번 더 소리쳤다. “야, 이년아, 넌 왜 안가?” 난 아직도 지영이의 오싹한 이야기가 소화되지 않은 상태지만 천천히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언덕 골목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내 발자국 소리에 스스로 놀라며. 끈적끈적한 더위 속에서 목덜미의 미지근한 느낌은 착 달라붙은 귀신들의 우악스러운 손바닥의 찐득찐득 소름이 돋는 차가운 촉감이다. 달려가고 싶지만 뒤에서 기다란 손톱으로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길 듯 목덜미가 싸하다 하지만 뒤돌아 볼 수도 없다. 그러다 마주치면 끝장이다. 걸을 때마다 음흉한 달빛이 골목길에 음영을 그리며 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빽빽한 탱자나무 가시 사이로 붉은 눈동자들이 번들 거린다. 지영이가 보았다는 그 귀신 가족들의 한 서린 눈과 닮았다. 점점 불어나는 혼령들이 흐느적거리며 몸을 휘감은 순간, 불쑥 앞으로 튀어나온 탱자 나뭇가지 하나에 몸이 닿으면 그 공포는 거의 죽음에 이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하얗고 가쁜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달리는 등 뒤에 붙어 있던 귀신들은 대문 입구에 도착해서야 떨어졌다. 감나무가 있는 마당을 지나 퇴 마루에 앉아 가쁜 숨을 쉬었다. 인기척을 듣고 엄마는 안방 문을 열었다. “늦은 시간까지 계집애들이……” 엄마의 잔소리가 그날따라 구원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터 입구에 들어서자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묵직한 경찰차가 주차해 있고, 주변에는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있었다. 그들은 골목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한 일이 동네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난 가방을 맨 채 영문도 모르고 군중이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였다. 언덕 위에서 손목에 수갑을 찬 젊은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공터 방향으로 두 명의 경찰에 끌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젊은이의 양팔을 붙잡고 있던 경찰들이 입구까지 오자, 동네 사람들이 한꺼번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양 팔을 벌렸다. 하지만 궁금증에 찬 동네 사람들은 그 청년을 보기 위해 밀려들었다. 그는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고 했다. 또한 오래전에 행방불명되었던 할머니의 양아들이라고도 했다. 할머니 집에 몇 달을 숨어있다가 주민의 신고로 잡혔다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보려고 군중 사이를 뚫고 현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쳤다. 키가 크고 마른 하얀 피부의 창백한 청년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냉소적인 차가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그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수갑찬 그의 가녀린 손목도 그날 우물가에서 본 그림자가 연상되었다. 나는 문득 이 일이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은둔해 있는 동안 할머니 방에 숨어서 나의 일상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밤마다 잠자리에서 듣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였다. 그때였다. 언덕 위에서 찢을 듯이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도나무깡 할머니였다. 마실갔다가 소식을 듣고 급히히 달려온 것이다. 몸집이 큰 할머니는 평소답지 않게 날렵하게 군중들 틈 사이를 뚫고 청년을 붙잡고 있는 경찰을 향해 달려왔다. 탱크처럼 저돌적이었지만 무장한 경찰들에게 무참히 제지당했다. 그들은 할머니를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저고리가 반쯤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풀어져 헝클어졌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이놈들아! 우리 아들이 무슨 죄를 졌다고 수갑을 채우는 거냐?
우리 아들은 빨갱이가 아니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앙칼지게 달려들었다. 서둘러 이 상황을 종결하고 싶었던 경찰은 젊은이의 등을 밀어 짐짝처럼 차 안에 구겨 넣었다. 그가 차 안에 갇히자 양옆에 무장한 경찰이 단단하게 앉았다. 그는 체념한 듯 냉소적인 표정으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울부짖는 어머니를 보았다. 차 문이 군중을 밀치며 힘겹게 닫혔다. 할머니는 차에 매달려 차가 떠나는 걸 막아 보려고 했지만, 경찰차는 서서히 군중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곧 속력을 올리며 떠났다. 그 뒤로 뽀얀 먼지가 올라왔다. 할머니는 바닥에 다시 주저앉아 엎드려 통곡했다. “정민아! 불쌍한 내 아들 정민아!!” 너무나 절박해서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듯한 절규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최소한 무기징역을 받거나 사형을 언도받을 수도 있다고 소근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고생한 지엄마 호강시켜줄 수 있는데, 왜 그랬는지 몰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도나무깡 할머니는 헛짓만 했어. 배속으로 난 자식도 아닌데.”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자리에 눕고 곡기를 끊었다. 방에서 한동안 나오지도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미음을 끓여 직접 할머니 방에 가져가 떠먹여 주기도 하고, 할머니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퇴근하면 할머니 방에 가서 상태를 살피고, 누워있는 할머니의 머리 맡에 앉아 위로를 해 주곤 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호통치는 소리가 집안에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더욱 분주하게 일을 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메마른 텃밭을 적시고, 잡초를 뽑으려고 종일 호미질을 했다. 빨래를 하고 마당을 청소하고, 이웃에 마실을 갔다. 할머니는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 가족도 할머니의 일상 복구에 안심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리고 예전보다 힘이 없어졌고, 화가 나면 불같이 호통을 치는 일도 사라졌다.
우리가족이 새뜸 마을에 산지 3년이 지난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상당한 돈이 엄마에게 들어왔다. 엄마는 마침내 이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려 받은 유산과 은행에서 융자를 얻어 반듯한 마을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했다. 엄마는 새뜸 마을을 떠난다는 생각에 매일 마음이 들떠 있었다. 엄마가 행복해하자 나 역시 새로운 동네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였지만, 한편으로 가슴에 돌 하나가 얹힌 듯 무거웠다. 그리고 날마다 그 무게가 더해갔다. 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힌 생소한 감정이었다. 내가 보는 새뜸 마을의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내게 안식을 주었던 공터도, 비 오는날 퇴마루 위 초가지붕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도,최근 들어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할머니도, 텃밭에 채소와 봉숭아꽃도, 우물가의 감나무도. 그 동안 사랑한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 내 안에서 거리를 두고 저만치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할머니는 전날 밤 우리 남매를 방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 아직 다 피지도 않은 봉숭아 꽃을 따서 백반을 넣어 작은 사기그릇에 찧었다. 해마다 하는 일이있지만, 지금은 조금 때가 일렀다. 설익은 봉숭아꽃을 콩알만큼 떼어 차례로 손톱 위에 올린 다음, 커다란 연꽃 잎을 손가락에 감아 하얀 무명실로 칭칭 감았다. 손가락들이 모자를 썼다. 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다음 해에는 봉숭아 꽃을 심어도 쓸모가 없네.” 남동생은 그 의미를 모르는 듯 눈만 깜빡였고, 나와 여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의 젖은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할머니는 혼잣말로 “주책스럽게…” 하고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배고프지? 우리 강아지들” 하면서 미리 만든 호박전을 젓가락으로 적당히 잘라 각자의 입안에 차례로 넣어주었다.
우리는 칭칭감긴 다섯 손가락 때문에 젓가락질을 할 수 없어 참새처럼 입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우리는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할머니도 맘껏 웃었다. 그리고 무릎에 앉은 남동생을 할머니는 말없이 따스한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았다.
다음날 트럭이 왔다. 모든 것이 우리가 처음 이곳에 온 3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일꾼들은 트럭의 뒷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 쌓아 놓은 짐을 차례차례 올렸다. 난 마치 필름을 되감듯, 3년 전 일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거꾸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첫날 내가 보았던 풍경을 마감하듯이, 마지막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넓은 마당, 멀리 보이는 이웃들의 지붕, 아름다운 창공, 창공을 나는 새들, 우물 그리고 우물 위에 감나무, 길게 늘어선 빨랫줄 모든게 다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날 부엌 문에 거인처럼 서서 함박웃음을 짓던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차례로 주변을 살폈다. 길게 늘어선 빨랫줄, 창공…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난 굳게 닫힌 할머니 방문을 바라보았다. 한참후 그동안 엄마 흉만보고 비난했던 동네아낙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좋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되어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엄마 역시 아무런 감정 없이 그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 한 명씩 부둥켜 안으면서 등을 토닥거렸다. 혼란스러웠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라도 흘릴까 걱정이 되었다. 참 이상한 어른들이었다. 이 광경이 너무나 따뜻해서 우리 가족이 계속 이곳에 살면 엄마랑 동네 아낙들과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이 동네를 떠난다는 생각에 그 누구라도 용서해 주고 싶은
너그러운 마음이 잠시 있을 뿐이였다. 잠시후 복자와 이쁜이와 동네 아이들도 신기한 듯 트럭 주변을 서성였다. 아저씨들이 짐들을 차에 싣는 것을 신나게 구경하던 아이들이 내가 한눈을 판 사이에 어느새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공터로 몰려간 듯했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별관 쪽을 보았다. 할머니의 방문은 여전히 꼭 잠겨 있었다. 차에 짐이 모두 실려졌다.
커다란 초가집은 우리가 쓰던 물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빈 껍데기가 되었다.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집을 한 바퀴 돌아본 후에 엄마가 마침내 조수석에 타자, 아저씨는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대문을 서서히 빠져나갔다. 천천히 골목을 덜컹거리며 내려갔다. 난 결국 할머니를 보지 못 하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 난 문득 번개처럼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
할머니가 어디선가 우리를 계속 지켜 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트럭이 언덕을 내려와 골목의 코너를 돌아가려는 순간, 나는 잽싸게 뒤를 돌아 보았다. 그때 난 보았다. 멀리 언덕 위 감나무가 흐드러진 열린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너무나 익숙한 감청색 치마 자락이 깃발처럼 펄럭거리고 있었다. 낡은 감청색 면 치마 위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단단하게 멘 끈 달린 저고리를 입고 할머니는 작은 섬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그 지독한 고독과 반복된 체념과 사랑이 농축되어 박제되어 버린 할머니의 마지막 실루엣. 외로운 섬의 동상처럼 내 안에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잔잔한 수채화가 되어 깊숙히 갇혔다.
오윤미
1960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전북대학교 정보 문헌학과.
2001년 7월 토론토 이민.
심사평(강기영)
'새뜸마을'은 주인공 가족의 몰락 후 새롭게 정착한 마을에서의 유년기를 중심으로 사회적 계층과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풀어낸 작품이다. 적잖은 습작기를 거쳤음직한 유려한 문체가 눈길을 끌었고, 앞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로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입상하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시길 바란다. 아깝게 낙선하셨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역량을 보여주신 다른 응모자분들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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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