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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스포츠

MG 오토 세일

우리 시대 풍경화의 비밀

현실과 상상을 오가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26 2025 01:51 PM

두 번의 大戰 겪은 20세기 유럽 화가 더는 과거의 회화 전통 계승할 수 없어 말레비치·몬드리안 등 미술 양식 변화 과거 단절 의미로 순수 추상의 길 제시 김환기·유영국, 한국 추상미술 이끌어 “산은 내 앞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자연을 마음서 녹여내 조형으로 해석


미래의 풍경화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세기 초에 그려진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말레비치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15년에 검은 사각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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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1915년,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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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저녁: 붉은 나무'. 위키피디아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블랙 아웃’처럼 과거의 회화적 전통에 대한 강한 부정을 의미한다. 서구에서 오랫동안 진리로 여겼던 합리적 이성의 역사가 결과적으로 파멸적인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응답으로 볼 수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을 겪은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을 통해 공포와 두려움, 과거 전통에 대한 강한 부정,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까지 담으려 했다.

그저 검은색 사각형일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았는지 의아하다면,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했던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몬드리안이 각기 다른 시기에 그린 네 작품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미술계의 양식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인상파에서 시작해 조형적 단순화를 거치며 순수 추상으로 향해 간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형태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에서 회화 평면을 공간과 공간의 연결, 색채와 색채의 관계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그의 순수 추상화는 말레비치가 보여주었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몬드리안도 과거 조형적 전통의 결과가 파멸적 전쟁이라고 생각하면서, 과거와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순수 추상의 길을 제시한다.

유럽 문명은 20세기에 들어서며 자기 파괴적 모습을 보인다. 확실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20세기 전반은 광란의 시대였다. 이 시대를 겪은 화가들은 더 이상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인류 문명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 대신 새로운 인식을 세워야만 했다. 이 시기의 괴팍하고 비현실적인 미술도 그들이 겪었던 충격을 고려하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대상과 단절한 채 순수 형태로 향하는 20세기 회화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말레비치, 몬드리안을 낳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으로 이어진다. 마크 로스코는 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방식의 표현으로, 형태 묘사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던 유럽 문화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했다. 풍경화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이라면, 순수 색면추상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후 달라진 세계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풍경화로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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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구성(Composition with Large Red Plane, Yellow, Black, Grey and Blue)'. 위키피디아

 


심리적 풍경이 된 전후 한국의 추상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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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환기미술관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풍경을 읽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김환기, 유영국 작가의 작품들에서 그들이 풍경을 바라볼 때 가졌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1913년생인 김환기와 1916년생인 유영국은 20세기 순수 추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자기들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김환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전면점화를 통해 자연에서 느낀 감수성을 순수한 추상과 결합하였다. 이 같은 그의 시도는 순수 추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1970년 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대한 작가 자신의 설명을 보면 그가 점을 통해 자연을 직간접적으로 담아냈다는 사실이 명확해 보인다. 우선 이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중략$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우리는 ‘저녁에’의 내용에서 김환기가 전면점화를 그릴 때 염두에 둔 것이 별이 한가득 빛나는 밤하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유년기 자신의 고향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봤던 바로 그 청정한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자연을 마음속에서 다시 녹여내어 그것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는데, 그 결과 풍경과 추상이 절묘하게 맞닿게 되었다.

유영국도 1960년대 후반부터 완전한 순수 추상으로 넘어갔다. 예를 들어 그의 1967년 작품은 색면 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중앙의 노란 삼각형은 충분히 산으로 읽힐 수 있는데, 추정컨대 개나리가 물든 봄의 산일 수도, 석양빛에 물든 산일 수도 있다. 유영국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산은 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눈으로 본 풍경이 아니라 마음에 읽히고 다가오는 풍경을 그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영국의 작품들은 추상이면서도 형태적인 암시가 있기에 그가 순수 추상 작가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감상을 동시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절제된 추상적 감성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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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작품(Work)'.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1세기의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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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알리스의 '신념이 산을 옮길 때(2002년)'. 위키피디아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자연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도 시도되고 있다.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작품 ‘신념이 산을 옮길 때’가 좋은 예가 된다. 작가는 2002년 페루 리마에 방문하여 현지에서 500명의 지원자를 모아 하루 동안 리마 외곽의 거대한 모래 언덕을 삽으로 옮기는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였다. 하루가 지났을 때 모래 언덕은 원래 위치에서 10㎝ 정도 이동했다. 풍경을 단순히 보고 감상하는 단계를 넘어서 풍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우리의 행동으로 변화시킬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풍경화는 언제 바뀌게 될까? 새로운 풍경화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시리즈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풍경화는 16세기 베네치아, 17세기 암스테르담, 18, 19세기 런던과 파리 같은 당시 기준으로 혁신적 도시들에서 새롭게 도약하였다. 이 도시들은 인류에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도시 환경을 보여주었고, 이 변화에 부응하여 새로운 풍경화가 등장하였다. 이는 미래의 풍경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풍경화의 변화는 그만한 혁신적인 도시가 등장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약하자면 인류가 정말 화성에 이주하게 된다면 새로운 행성에서 그려지는 풍경화는 지금의 것과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화성 이주가 아직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면, 보다 근접한 사례를 찾아보자.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진 중인 네옴 프로젝트 정도면 현 단계에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에서 풍경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 만한 독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사막 한가운데에 높이 500m의 거울형 건물 ‘더 라인’을 직선으로 170㎞까지 짓고, 여기에 최대 900만 명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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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 중인 미래형신도시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더라인' 조감도. NEOM 제공

 

현재 계획보다 진행이 늦어지고 있지만, 2030년까지 더 라인의 일부라도 완성된다면 과거의 베네치아나 암스테르담이 그랬던 것처럼 도시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새로운 도시 환경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생활양식은 결국 새로운 풍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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