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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 세계에 ‘부조리’로 대답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3 2025 08:01 PM
‘불태워달라’ 유언 남겼던 작품 비교적 전개 깔끔한 ‘변신’과 달리 개연 없는 ‘부조리극의 극치’ 평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변신’(1912년 집필, 1915년 출판)은 우화로 읽을 수 있다.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사람이 해충으로 변하고 가족들을 경제적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 해충은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상처가 생기고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은 이야기 구조나 전개가 깔끔한 편이다. 그가 쓴 작품의 90%는 발표하지 않았다는 전기 작가의 설명으로 미루어보면 ‘변신’은 당대에도 잘 받아들여지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 위키미디어 커먼스
사후에 발표된 ‘소송’(1914년 집필, 1925년 출판)은 아주 다르다. 그의 문장은 아도르노의 말처럼, ‘모든 문장이 해석해 보라고 하지만 어떤 문장도 해석을 거부한다.’ 말도 안 되는 장면과 무의미한 대화를 통해 부조리의 극치를 달리는 이 작품은 작가가 불태워 없애기를 바랐던 원고였다.
그러나 그 역할을 맡았던 절친인 막스 브로트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자신도 작가였던 그에게는 유고인 이 장편소설이 비록 미완성이지만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옳았다.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카프카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달라졌고, 현대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깊은 관심과 함께 찬사를 보냈다.
소송·프란츠 카프카 지음·권혁준 옮김·문학동네 발행·360쪽·1만4,000원
카프카의 삶을 관통한 ‘부조리’
프란츠 카프카. 위키미디어 커먼스
세 번씩이나 약혼하고 파혼했던 그의 우유부단함과 무식하지만 자수성가한 독재자인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사회적 억압에 순응했던 태도를 고려해 보면, 문학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그의 삶은 당연히 부조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조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대충 다음과 같다. 의미를 찾고 질서를 통해 안정감을 획득하려는 인간이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카오스적인 세계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욕지기 같은 것이다. 사실 이런 부조리에 대한 인식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맥베스는 열정적인 권력투쟁의 막바지에 이르러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분노와 소리로 가득 찬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한탄한다. ‘맥베스’(1606)에서 표현되는 이런 부조리한 인식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1929)에까지 연결된다. 크게 보면 문학의 주제는 모두 이런 삶의 부조리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조리’가 하나의 용어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하이데거 이후 실존주의자들에 의해서였다. 그 개념의 시발점이 하이데거의 주저인 ‘존재와 시간’(1927)이었고 1940년대를 전후해서 싸르트르와 카뮈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사상가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고도를 기다리며’(1953)라는 부조리극으로 유명한 샤무엘 베케트 역시 프란츠 카프카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소송’은 대단히 때이른, 그러면서도 본격적인 부조리극 장면으로 가득찬 소설로 읽을 수 있다. ‘부조리한 상황극’이라는 해석의 기대 지평 없이 읽으면 말도 안 된다거나, 잘해야 헛웃음만 나오는 내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의 시작은 ‘체포’ 장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은 여느 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지속된다.
카프카는 친구들 앞에서 이 ‘체포’ 장을 읽어주었던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모두가 하나같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한다. 다들 너무 심하게 웃어대는 바람에 카프카가 낭독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 카프카로 하여금 이 원고를 불태워 없앨 결심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송’은 장편소설이지만 스토리는 단순하다. 존재가 분명치 않은 법원에 의해 소송을 당해 체포된 은행의 고위직 인사인 요제프 K가 무죄선고를 받기 위해 법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다가 ‘종말’ 장에서 갑자기 처형당한다. 카프카는 시작과 끝인 ‘체포’ 장과 ‘종말’ 장을 먼저 쓴 다음 그사이의 사건 전개를 다룬 장들을 썼다. 작가가 생각하고 있던 소송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뻔한 내용이라고 보았다는 의미다.
작가는 ‘법정 중재자’를 자처하는 화가의 입을 통해 주인공에게 어떤 판결이 날 것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실질적인 무죄, 외견상의 무죄, 판결 지연이 그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명백한 유죄가 아닐 때이다. 그러나 화가는 실질적인 무죄 판결 같은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외견상의 무죄 판결이나 판결 지연은 그리 다른 것이 아니다. 일단 소송에 휘말리면 유죄이고 판결이 내려지는 시기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체포된 적이 있는 사람은 설사 일상생활을 한다 해도 언제나 법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런 점은 화가가 그린 ‘정의의 여신’이 체포된 적이 있는 요제프 K에게 ‘사냥의 여신’으로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것이 법학 박사 학위를 가졌던 카프카가 이해한 당대의 ‘소송’ 체계였던 것이다.
학생 시절의 프란츠 카프카. 위키미디어 커먼스
등장인물에게 스며드는 ‘체험화법’
이렇게 부조리한 내용을 담은 그의 작품이 ‘잘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의 스타일, 극단적인 자유간접화법이라고 볼 수 있는 체험화법의 효과일 것이다. 자유간접화법은 영국의 작가 제인 오스틴에게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서술 기법이다. 이는 서술자가 등장인물인 것처럼, 또는 등장인물이 서술자인 것처럼 말하는 방식이다. 그럼으로써 독자가 등장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때 ‘자유’란 말하는 주체가 서술자와 등장인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는 의미이다.
카프카는 그 효과를 더욱더 강화하기 위해서 아예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말하거나 서술자가 등장인물 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린 것처럼 말한다. 독자는 문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의 시선은 채석장에 인접한 건물 맨 꼭대기 층에 가 닿았다. 불빛이 번쩍이는 것처럼 창문의 양쪽 문짝이 활짝 열리더니, 너무 멀고 높은 곳에 있어서 약하고 여위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는 양팔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누굴까?”(‘소송’의 마지막 장면)
첫 문장은 서술자의 설명이지만 두 번째 문장부터는 등장인물의 체험만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문장을 해석하다 보면 서술자나 독자도 사라지고 등장인물의 느낌만 남는다.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쉽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독자가 작품을 직접 읽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 안팎의 맥락을 조사해서 소개하는 것이다. 필자가 적어도 네 번은 읽는 과정에서 생긴 궁금증을 추적 조사한 다음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들만 고른다. 두 번째 읽었을 때였다. 텍스트를 잘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작가의 전기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았다.
‘자유로운 갈까마귀’의 이중생활
동생들과 함께 서 있는 어린 시절의 프란츠 카프카.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는 오랫동안 ‘프란츠 카프카’가 본명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갈까마귀’라는 뜻이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중부 유럽(체코) 유대인의 오랜 삶의 역사가 담겨 있는 본명이었다. 그곳에서 갈까마귀는 지혜를 가진 신비로운 동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새가 자유의 상징임을 생각하면 억압받던 유대인이 ‘갈까마귀’를 집안과 사업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집안의 장남이었던 카프카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했다. 첫 번째 직장은 퇴근 후 글쓸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9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그러나 곧 국영기관과 다를 바 없는 ‘프라하의 체코 노동자 재해 보험회사’에 입사한다. 거기에서 14년 동안 재직하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루 6시간 근무였다. 오후 2시에 퇴근하니 글 쓸 시간이 충분했던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깊었지만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중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직장에서는 고속 승진을 했고 일찍 고위직에 올랐다.
여성 편력이 심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당시로는 불치병이었던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문학을 이해해준 유일한 여인이었던 밀레나와의 관계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모든 작품은 작가의 일대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의 전기적 사실들이 작품의 스타일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면서 구체적인 그의 부조리에 담긴 비유와 상징이 어떤 것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강창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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