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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돌아온 경복궁 선원전 현판
2030년 원래 위치에 복원된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8 2025 03:00 PM
일제·박정희 정권이 훼손한 선원전 국립민속박물관 자리 복원할 계획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반출돼 100여 년간 자취를 감췄던 경복궁 선원전 현판이 최근 국내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현판이 달려야 할 선원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선원전은 고종 때 재건됐지만 1923년 일제에 의해 훼철된 후 1966년 박정희 정부가 일대에 국립박물관을 지으면서 완전히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경복궁 선원전.
학계에 따르면 선원전의 유래는 숙종 21년에 창덕궁 인정전 서편의 춘휘전에 왕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보관하는 데서 시작된다. 선원전은 숙종 재위 시에는 어진을 보관하는 장소였으나 숙종 사후인 경종 시절부터 선왕의 어진을 어칸에 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바뀌었다.
선원전은 왕실의 정통성을 세우고 근원을 알게 하는 진전(眞殿)으로 선왕들의 어진을 모셔 놓고 수시로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봄가을로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가 궁 밖의 사당이라면 선원전은 왕실 사당인 셈이다. 이 때문에 왕이 기거하는 궁궐, 즉 법궁에만 세워졌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각 궁별로 선원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왕이 궁을 이어할 때마다 선원전이 설치됐기 때문"이라며 "궁궐 내 건물 중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가장 큰 전각"이라고 설명했다.
법궁의 사당이라는 상징성에도 경복궁 선원전은 시대의 풍파에 수없이 헐리는 수모를 겪었다. 국가유산청이 발간한 '경복궁 변천과정 및 지형분석 학술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선원전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복궁 내 다수 건물이 훼철될 때만 해도 원형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궐도상에서 선원전과 전면의 일자형 행각과 'ㅁ' 자 행각 등이 모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제사 건물이 가진 신성함 때문에 쉽게 철거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선원전 본당 건물이 헐린 정확한 시점과 정황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유산청 등은 선원전 소실 정황 관련 기록을 볼 때 일제강점기인 1932년 조선총독부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짓기 위해 일부를 이건해 창고로 사용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 1908년 2월 29일자 기사에 "경복궁 선원전이 안동별궁으로 이건됐다"는 내용이 발견되는 등 새로운 정황이 나오고 있어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만신창이가 된 선원전은 우리 정부에 의해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유산청이 발간한 '경복궁 변천사' 보고서에 따르면 6·25전쟁 후인 1966년까지 남아 있던 9동 106칸의 선원전 전각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통째로 철거된 뒤 일대가 국립박물관(현재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선원전의 유구가 대부분 훼손됐고, 건축 자재와 부속품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다. 유산청은 경복궁 복원 계획에 따라 2030년 선원전을 원위치에 복원할 계획이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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