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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인의 퀴어영화 될 뻔했다”
‘JSA’ 개봉 25년 만에 듣는 뒷얘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15 2025 02:20 PM
영화 ‘JSA’ 25년 ‘관객과의 대화’ 박찬욱 “‘올드보이’ 있게 한 작품” 이병헌 “관객 반응 보려 40번 봐” 송강호 “연기 인생 초반 화양연화” 이영애 “30대 관문이 된 기적 같아” 감독·배우들, 결말·캐스팅 비화 나눠
배우 김태우가 나타났고 이영애가 뒤를 이었다. 이병헌과 송강호, 박찬욱 감독이 잇따라 등장했다. 대작 한국 영화 촬영장은 아니었다. 유명 영화상 시상식장도 아니었다. 사회자가 “지금 실화인가 생각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진귀한 자리였다. 지난 4일 밤 서울 용산구 한강로 CGV용산아이파크몰 박찬욱관. 이날 이들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개봉 25주년을 맞아 한 자리에 모였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JSA 동지’들이 뭉친 건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배우 이병헌(왼쪽부터)과 이영애, 박찬욱 감독, 배우 김태우, 송강호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 대화(GV)에 앞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독과 배우들 삶 바꿔 놓은 영화
박찬욱(왼쪽 두 번째부터)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박찬욱관에서 열린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25주년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JSA’는 한국 영화사에 주요 이정표 중 하나다. 남북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첫 대중 영화라는 평가가 따른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던 남북한 군인이 우정을 나누다 비극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개봉해 관객 582만 명을 모았다. 당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이었다. ‘JSA’는 2000년대 펼쳐질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신호탄이었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은 “한국은 칸국제영화제 수상작이 흥행 상위에 들어가는 특이한 나라”라며 “그 시원을 찾아가면 ‘JSA’가 있다”고 평가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CJ ENM 제공
박 감독과 배우들에게는 ‘인생 영화’다. 박 감독은 “제가 이전 영화 2편(‘달은… 해가 꾸는 꿈’과 ‘3인조’)이 흥행이 안 돼 세 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JSA’가) 유작이 될 거라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박 감독은 ‘JSA’ 성공을 발판 삼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올드 보이’(2003)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JSA’를 “저를 살려준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이병헌에게는 “흥행의 맛, 자본주의의 맛을 알려준” 영화다. 그는 “‘JSA’ 개봉 이후 열린 한 시상식에서 ‘흥행 배우 이병헌’이라고 저를 소개했다”며 “관객이 울고 웃는 반응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 극장에서만 40번쯤 봤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저를 소개할 때 ‘JSA’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송강호와 이영애 김태우도 다르지 않았다. 송강호는 “1995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카메라 앞에 처음 선 후 30년이 됐다”며 “‘JSA’는 연기 인생 초반에 ‘화양연화(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를 이끌어준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3일 전 다시 봤는데 젊었을 적에는 제가 이병헌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이영애는 “20대 말에 만난 ‘JSA’는 화창한 30대로 가는 관문이 된 기적 같은 작품”이라고 돌아봤다. 김태우는 “제 출연작 중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사람들에게 ‘JSA’를 말하면 다들 알아준다”고 거들었다.
박찬욱 “국가보안법 적용 걱정하기도”
박찬욱(왼쪽부터) 감독과 송강호, 이병헌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 박찬욱관에서 열린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25주년 기념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CJ ENM 제공
흥행에 성공하고 25년 후 자리까지 마련해 준 영화라고 하나 제작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JSA’가 촬영에 들어간 1999년은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박 감독은 “지금이야 ‘남북한 군인들이 기껏 닭싸움 하는 장면이 문제냐’ 생각할 수 있으나 당시에는 찬양고무죄에 해당할 수도 있었다”며 “당시 제작사 명필름 분들과 단단히 마음 먹고 촬영을 시작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싱겁게도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걱정은 기우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칫 송강호의 출연이 무산될 뻔도 했다. 송강호가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처음엔 거절했기 때문”이다. 송강호는 “시나리오가 너무 밀도감 있고 꽉 짜인 구성이어서”라는 좀 엉뚱한 이유를 댔다. “당시 한국에서 이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박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트렌치코트를 입은 기품 있는 모습을 보고 시나리오대로 영화가 완성될 거라 직감했어요.”
배우 이영애가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25주년 기념 관객과의 대화에서 답변하고 있다. CJ ENM 제공
결말이 바뀔 수도 있었다는 비화가 이날 공개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이수혁(이병헌)이 죽지 않고 오경필(송강호)을 유럽에 가서 만나는 엔딩을 고집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피 장(이영애)이 (중립국을 택한 인민군 포로) 아버지를 찾아가 손톱을 깎아주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도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송강호는 “그때 (제작사가)‘그러면 망합니다’라고 극렬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당초 남북 군인이 사랑을 나누는 퀴어영화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며 “21세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신하균은 이날 자리에 오지 못했다. 송강호가 “신하균이 여행을 갔다”고 밝히자 박 감독은 “부득이한 이유로 알았는데 얼마나 재미있는 여행이길래”라며 슬쩍 서운함을 드러냈다. 김태우는 “신하균이 안 와서 50대지만 귀한 막내 역할을 제가 하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박 감독이 “25년 뒤 개봉 50주년 기념 행사가 있으면 70대가 된 신하균을 꼭 데리고 올 것”이라 약속하며 이날 관객과의 대화는 끝을 맺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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