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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신학 2000년 연구 망라”
김상봉 교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08 2025 03:01 PM
고대 그리스어·중세 라틴신학·19세기 등 ‘20여 쪽 원문’ 주석서들 꼼꼼히 살펴
“국내 서양철학 연구자들은 이제 이 책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게 됐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제주 자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길 제공
김상봉(65)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서양철학의 토대를 다진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형이상학’(총 14권) 중 신학(제12권) 전문을 번역해 주석을 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총 2권)을 최근 내놨다. 장장 5년간 집필한 책은 총 1,932쪽에 달한다. 희랍어로 쓰인 원문은 전문을 옮겨도 20여 쪽에 그친다. 책은 2,000년 동안 원문에 달린 주석도 해석했다. 여기에 저자가 자신의 말로 주석을 보태 완성됐다. 실로 동·서양을 통틀어 전대미문의 성과다.
“말 그대로 정신의 노동이었죠.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대장정의 집필을 마치고 최근 전화로 만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출간은 당초 계획에 없었다. 그는 2019년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씨알사상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는 책을 쓰기 위해 제주로 내려갔다. 형이상학의 유래가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들췄다가 이를 파고드는 책을 먼저 쓰기로 작심했다. “스스로 이해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소개할 수는 없다”는 학자로서 신조 때문이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2016년 1월 7일 서울 명동 전진상 교육관에서 '함석헌과 씨알사상'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 교수는 1987~1992년 독일 마인츠대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칸트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 고전문헌학의 사실상 국내 1세대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에서 5년간 철학과 역사까지 아우르는 문헌학적 방법으로 텍스트를 분석하는 훈련을 혹독하게 받았다”며 “그때 배웠던 방식이 이 책 집필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오늘날 판본으로 확정된 건 불과 19세기 전반이다. “서양에서도 그만큼 어려웠던 작업”이라는 방증. 김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대해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주석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가 대표하는 중세의 라틴 신학, 19세기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쓴 주석서까지 꼼꼼히 살폈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전체를 강독했고 ‘자연학’, ‘영혼론’, ‘천체론’ 등 자연철학 저술까지 모두 살폈다. 플라톤 등 다른 고대 철학자들의 문헌도 참고했다. 김 교수는 “서양철학자들도 보여주지 못한 철저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의 서양철학 연구가 한 단계 도약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1·2·김상봉 지음·길 발행·1,932쪽
김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신학이 핵심이고, 서양의 형이상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이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존재의 의미와 근거를 묻는 존재론에 기반한다. 김 교수는 “한마디로 신학과 존재론, 신학과 형이상학은 분리시켜야 한다는 게 베르너 예거(아리스토텔레스 연구자)의 주장”이지만 “플라톤부터 하이데거까지 역사에서 철학과 신학은 별개였던 적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근거를 신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가 찾은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아닌, 존재사유를 찾는 정신을 말한다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책은 대중서와는 거리가 멀다. 학술서로서는 뛰어나다. 김 교수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아닌 한국어로 쓰인 신학 주석을 읽을 수 있다”며 “이 책이 서양철학 연구 활성화에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28일 정년퇴임 하는 그는 제주에서 머물면서 필생의 작업인 함석헌과 만해 한용운(1879~1944) 연구에 천착할 계획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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