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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관세 폭격 타깃 될라, 트럼프 달래는 동남아
트럼프發 관세 전쟁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9 2025 10:17 AM
베트남, 작년 대미 흑자 178조원 中·멕시코 다음으로 커··· 표적 우려 스타링크 허가 등 머스크 구애 나서 美서 에너지·콩가루 수입 확대 등 태국·말레이시아도 대응 마련 분주 동남아 내 韓 기업도 ‘직접 영향권’
“베트남은 ‘스타링크’ 사업 허가를 신속하게 발급하겠다.”
일론 머스크(왼쪽)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팔짱을 낀 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지난 1일 하노이에서 미국 정부 관계자, 미국 대표 기업 38곳 임원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스타링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민간 우주개발 기업 스페이스X의 위성 기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다. 인터넷 기반 시설이 미흡하거나 유선 연결이 어려운 저개발·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사용된다.
스페이스X는 2020년대 초 베트남 진출을 추진했지만 외국인 소유 제한 규제 문턱에 막혀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베트남 정부는 그간 “베트남 기업과 합작 법인을 세워야만 사업을 허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①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무차별 관세 폭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 ②머스크가 트럼프 정부 실세로 떠올랐다는 것뿐이다. 베트남이 ‘관세 전쟁’ 타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스페이스X를 지렛대 삼아 구애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국제방위엑스포 2024'에 참석한 미국 육·공군이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C-130J 허큘리스 수송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 따른 피해를 낮추기 위해 미국 정부와 해당 수송기 도입을 협상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로이터통신은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이 그간 여러 민감한 경제 분야에서 외국인(접근)을 엄격하게 통제·제한해 온 점을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변화(sudden shift)”라고 평가했다. 이날 팜 총리는 “미국과의 무역 수지를 조정하기 위해 항공기, 무기, 액화천연가스(LNG), 농산물, 의약품 등 미국 제품 수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베트남의 적극적 시장 개방 움직임은 미국 통상정책 변화에 따른 동남아시아의 고군분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주요국은 트럼프 1기(2017~2021년) 당시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분산하는 ‘중국 플러스 원(차이나+1)’ 전략을 채택하며 수혜를 입었다.
전 세계에서 투자금이 몰리면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미국과의 무역 규모도 늘었다. 2023년 기준 아세안의 대미 흑자는 약 2,000만 달러(약 289조 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태국과 베트남의 경우 흑자 규모가 2017년보다 각각 343%, 222% 증가했다.
가파른 무역량 증가는 오히려 독이 돼 돌아왔다. 지난 1월 백악관으로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연관 공급망까지 추적한다고 공언하면서 아세안이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가장 다급해진 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지난해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1,235억 달러(약 178조 원)를 기록했다. 최근 고율 관세 직격탄을 맞은 중국(2,954억 달러)과 멕시코(1,718억 달러) 다음이다. 같은 시기 한국의 무역 흑자(약 81조 원)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베트남을 겨누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12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의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미국 등 해외로 수출될 제품을 만들고 있다. 하노이=EPA 연합뉴스
최대 무역 상대국 미국의 시장 장벽이 높아진다면 경제 충격이 불가피하다. 국영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 산하 경제연구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이 베트남 상품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3~5% 감소하고 수출 성장률이 1.5~2%가량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성장률 목표치(8%)가 꺾일 수 있는 까닭에 총리까지 나서 ‘미국 달래기’에 나선 셈이다.
지난해 각각 354억 달러(약 51조6,000억 원)와 248억 달러(약 36조 원) 규모 대미 흑자를 기록한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국은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선제적으로 늘리고 사료용 콩가루 등 미국산 농산물 수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베트남 박장성에 위치한 대만 폭스콘(홍하이정밀공업) 공장 앞을 중국 트럭이 지나고 있다. 애플 최대 협력사인 폭스콘 공장은 미국의 중국 제재를 피해 베트남에 둥지를 틀었다. 박장=허경주 특파원
불똥이 동남아 내 한국 기업으로 튈 가능성도 있다. 베트남에는 1만 개 가까운 한국 업체가 진출해있다. 베트남에서 만든 한국 제품은 ‘베트남 수출품’으로 잡힌다. 미국이 베트남에 관세를 매길 경우 한국 제품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다만 동남아가 여전히 반사이익을 누릴 여지가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여전하다. 첨단 기술 패권에 대한 미중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미국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때리면서, 세계 기술 기업의 ‘차이나 엑소더스(탈출)’ 추세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게 이유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들이 ‘차이나 플러스 원’ 대신 아예 공장을 이전하는 ‘애니싱 벗 차이나(Anything But China·중국 말고 어디든지)’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이 수요를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 흡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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