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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같은 경제학, 꽁꽁 숨긴 오류들
토론토생태희망연대 칼럼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09 2025 06:03 PM
경제를 기계가 아닌 생태계로 취급해야
현대 경제학은 시장을 매커니즘으로 본다. 계산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기계적 체계라는 말이다. 매커니즘(mechanism) 이란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기계, 장치 등 입력이 정해지면 출력이 자동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현대에는 좀 더 폭넓은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시장 매카니즘이란 수요와 공급, 자본의 흐름 등등이 물리학 법칙이나 수학처럼 방정식으로 풀이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왼쪽부터 방글라데시, 한국,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도넛모델에 대입한 결과. 방글라데시는 생태적 한계를 넘지 않지만 사회적 기초를 거의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과 미국은 사회적 기초는 거의 충족하지만 생태적 한계를 크게 초과했다.서울시 유튜브 캡처
특정 단어의 선택은 이미 그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을 최대한 살리는 것으로 프레임을 만든다. 경제에 매커니즘이란 말을 넣고 복잡한 계산식을 도입하면서 마치 그게 진리인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경제의 전제는 앞서 말했듯이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합으로서의 경제주체’를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전제가 틀리면 다른 모든 계산이 맞아 들어가더라도 헛된 것이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그녀의 책 도넛 경제학에서 경제를 안정된 기계장치(매카니즘)로 묘사한 기존 학계를 비판하며 경제는 역동적 생명세계 안에서 서로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으로 구성된 복잡적응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이워스는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서로 자신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돕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 했다. 또 기계가 아니라 하늘의 햇빛에너지를 받아 식물과 동물이 살게 되고 땅 속의 제한된 광물을 캐서 인간이 사는 지구의 생태계라는 복잡한 적응시스템(complex adaptive system)의 일부가 경제라는 것이다.
기존 경제학이 제시한 가설과 달리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시스템 속에 경제를 펼쳐 좋으면 모든게 달라진다. 이를 레이워스는 ‘엔지니어의 안전모를 벗어 던지고 정원사의 장갑을 끼는 것’이라 표현했다. 19세기 이후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수식으로 자연 만물을 설명하는 물리학처럼 만들기 위해 이런 복잡계, 인간의 다양한 본성, 생태계의 복잡한 시스템을 모두 버렸다. 이렇게 과학처럼 변질된 경제학은 ‘순수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깔끔하고, 배우기 쉽고, 별로 어렵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뭔가 과학 같은 느낌을 줄 만큼 기술적’이 됐다.
지금 미국의 트럼프가 관세만 올리면 미국이 부강해지고 위대해 질 것이라는 주장을 실천에 옮기자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아우성들이 터져 나오고 미국의 경제력은 오히려 위태로워 지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기존 경제학 이론에 맞는지는 차치하고 적어도 단순한 기계적 해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실제 보여주고 있다. 유럽과 캐나다 아시아 각국을 적으로 돌린 결과는 예상치 못한 미국 시장의 최대 위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기존 경제학에서 제쳐 놓은 분배문제를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 또 자원 문제나 상호 협력하는 인간의 본성, 공동체성, 공유재 등 감안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도넛 안에서 자족하는 삶을 함께 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삶의 품격을 지키고 기회를 공평하게 나누며 공동체 스스로 공유재를 가꿔 나가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극빈자들은 주로 저개발국에 집중돼 있었으나 신자유주의 경제가 지배한 결과 극빈자의 ¾는 중위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중위소득 국가로 성장하는 동안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고소득 국가도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격차가 지난 30년 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현재는 세계 1.2%의 부자 6천여만명이 세계 부의 47.8%를 보유하게 됐다. 세계 자산 상위 10% 인구가 80% 이상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 이 차이는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쿠즈네츠는 1955년 소득 불평등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처음에는 커지다가 어느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킨 그의 연구결과는 경제학자들의 전가의 보도처럼 ‘성장’을 찬양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는 몇가지 함정이 있다. 도시로 이주한 엄청난 수의 농촌 인구들을 포함시킨 조사였는데 농촌에서의 소득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조차 이후 오류가 무려 95%나 된다고 인정했지만 경제학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성장을 노래했다.
그래도 우리 인류는 괜찮은 걸까? 오류 투성이인 지금의 경제학을 그대로 두어도 앞으로 별 문제 없을까?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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