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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 “한국인 존경ˑ감사 큰 위로”
한국전 참전 윌리엄 존 크라이슬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30 2025 11:23 AM
생전에 한국에 묻히기 소망해 와 부산 유엔기념공원 묘역에서 영면
22일 오전 부산 남구 재한유엔기념공원 참전용사 묘역에는 커다란 하얀색 천막이 세워졌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천막 아래 모인 50~60명은 검은색 묘비를 바라봤다. 묘비에는 ‘CHRYSLER WILLIAM J.’라는 이름이 하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22일 부산 남구 재한유엔기념공원에 마련된 한국전 참전 용사 고 윌리엄 존 크라이슬러의 묘비와 영정. 부산=권경훈 기자
이날 참전용사 묘역에서는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자원한 캐나다 출신 고(故) 윌리엄 존 크라이슬러의 안장식이 열렸다. 부인인 한국인 경자(70)씨는 추도사가 이어지는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들 그레고리도 눈가를 훔치며 어머니의 등을 다독였다. 나란히 앉은 크라이슬러의 손자와 며느리도 울먹이느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 크라이슬러는 1930년 5월 4일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12월 캐나다 경보병연대 제2대대 소속 이병으로 한국에 왔다. 이듬해 11월까지 1년 8개월간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치렀다. 94세였던 지난해 11월 24일 미국에서 별세했다.
그는 치열했던 가평 전투에서 부상한 전우를 부축하는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눈부신 전우애와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한눈에 보여준 이 사진은 현재 영국 제국전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고 윌리엄 존 크라이슬러(오른쪽) 캐나다 참전 용사가 6·25전쟁 가평 전투에서 부상 당한 동료를 부축해 이동하고 있다. 주한캐나다대사관 제공
생전 한국에 묻히기를 바랐던 크라이슬러의 소망은 사후 5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날 그는 73년 만에 한국전에 참전해 함께 싸웠던 전우들 곁으로 돌아왔다.
추도사가 끝나고 미리 파놓은 땅속에 유해를 담은 함을 넣고 흙을 한 줌 뿌리는 순간 부인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땅속에 손을 넣어 마지막으로 남편의 유해함을 어루만졌다. 부인은 아들과 손자의 부축을 받아 겨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22일 부산 남구 재한유엔기념공원 참전용사 묘역에서 한국전쟁 캐나다 참전용사 고 윌리엄 존 크라이슬러의 유해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부인은 빨간색과 하얀색이 고루 섞인 장미꽃 다발을 묘비 앞에 조용히 놓았고, 아들과 손자 등에 이어 참석자들은 국화를 헌화했다. 묵념과 함께 행사가 끝난 뒤 크라이슬러의 유족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부인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한국전 참전 용사라고 밝힌 한 한국인 노신사가 인삼차를 선물하자 “이런 것까지 준비해 주셔 정말 감사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안장식에 앞서 부인은 “한국은 남편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며 “남편이 원하는 대로 대한민국 땅에 안장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레고리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는 거실에서 함께 태권도 연습을 했고, 한국의 발전상이 나오는 방송을 보여 주시기도 했다”면서 “한국인들이 보내준 존경과 감사가 아버지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의미 있는 보답이 됐다”고 말했다.
크라이슬러는 한국전에 참전한 14개 국가 2,330명의 유엔군 전우들과 함께 영면에 들었다. 부인은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뒤에도 남편의 묘비 앞에 한참을 서 있다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부산=권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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