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청년 4명의 좌충우돌 스페인 여행기

“재밌어서 순식간에 봤어요. 진정한 수신료의 가치가 느껴지네요.”

EBS 예능 프로그램 '세상을 비집고-해외원정대'에서 출연진이 스페인을 여행하는 모습. EBS 제공

지난 2일 종영한 EBS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 ‘세상을 비집고-해외 원정대’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2030 청년 네 명의 9박10일 스페인 여행기를 담은 이 프로는 여느 여행 예능과 다를게 없어 보인다. 청년들은 행선지도 모르는 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나선다.

기존 여행 예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이 장애가 있다는 점이다. 지체 장애 청년은 시각 장애 청년에게 자신의 팔을 내어주며 천천히 걷고, 시각 장애 청년은 청각 장애 청년을 위해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그러나 스페인 음식과 풍광에 감탄하고, 의견 충돌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여느 예능과 다를 바 없다. 시청자들이 “재미와 감동 모두 잡았다”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진정한 예능”이라고 극찬하는 이유다.

EBS 예능 '세상을 비집고-해외원정대'에서 박현진(왼쪽)씨가 이준민씨를 도우며 함께 걷고 있다. EBS 제공

'세상을 비집고-해외 원정대'에서 박정인씨가 마드리드의 광장에서 흰 지팡이 안무 버스킹을 하고 있다. EBS 캡처

‘세상을 비집고-해외 원정대’의 청년들은 각기 다른 장애와 장기를 가졌다. 배우를 꿈꾸던 중 시각장애가 생긴 박정인(36)씨는 안무와 노래 등을 만드는 창작가이고, 심장마비로 양쪽 다리를 잃은 이준민(33)씨는 ‘로봇다리 마술사’로 활동하고 있다. 선천성 뇌병변장애가 있는 신홍윤(35)씨는 장애인식개선 강사이며 선천성 청각장애가 있는 박현진(25)씨는 K팝 댄스에 재능이 있다. 이들은 해외 여행 경험이 없거나 1~2개 국가를 여행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마드리드 솔광장에서 K팝 댄스와 흰 지팡이 안무, 마술쇼 등 버스킹 공연을 할 정도로 여행에 흠뻑 빠져든다. 이 프로그램 최복희 PD는 “장애가 있으면 가던 곳만 가게 되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게 돼 해외 여행의 기회가 잘 생기지 않는다”며 “이들이 해외에서 느끼는 것들을 온전히 전달하려고 ‘다 알아서 하라’고 한 후 연출 없이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번 스페인 여행 예능은 ‘세상을 비집고’의 시즌3라 할 수 있다. 장애 청년들의 유쾌한 토크쇼인시즌1(2022)은 기존 장애 관련 프로와 다른 접근으로 2023년 한국PD대상 TV독립제작 부문 작품상을 받는 등 크게 호평 받았다. 출연진이 국내 여행을 떠난 ‘세상을 비집고-여행을 떠나요’(2024)는 시즌2에 해당한다. 토크쇼에서 국내 여행, 해외 여행으로 계속 확장돼 온 것이다. 최복희 PD는 “기존 장애 관련 콘텐츠는 장애인이 얼마나 힘든지 등 소위 ‘사연팔이’를 하며 어두운 면만 강조했다”며 “밝은 예능인 ‘세상을 비집고’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많이 깨뜨린 것 같다”고 말했다.

2022년 첫 방송된 '세상을 비집고' 시즌1. EBS 캡처

EBS '세상을 비집고-해외 원정대'에서 출연진이 스페인을 여행하는 모습. EBS 제공

‘세상을 비집고’의 다음 이야기도 만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시즌 1~3은 모두 외부의 제작비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시즌1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발전기금, 시즌2는 지자체 협찬, 시즌3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았다. 이재우 EBS PD는 “시즌4를 제작하고 싶지만 제작비 문제 등으로 당장 후속 시리즈 계획은 없다”며 “외부에서 지원을 받게 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복희 PD는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은 지원조차 안 해주니 연예인이 나오는 예능만 많다”며 “장애를 예능으로 다룬 프로는 없었던 만큼 ‘세상을 비집고’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상을 비집고'를 연출한 최복희 PD가 2022년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