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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서··· 매일 읽고, 책에 대해 쓰느라 32년이 흘렀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19 2025 02:03 PM
책이 좋아 출판사 영업부 첫 취업 유통·판매 전 분야 경험, 좋은 자산 책 욕심 버리려 주기적으로 솎아내 동시대 젊은 작가들 소설 좋아해 어린이 책이 집 안 곳곳 가장 많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서 서평 시작 양육자로서 쓴 어린이책 서평 두각 공저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도 호평 동네 책방의 묘미는 큐레이션 새로운 책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줘 ‘동네책방 생존탐구’ ‘유럽책방 문화$’ 책방 예찬론자다운 저서 2권도 집필
“나의 읽기는 동네 책방과 더불어 자랐다.”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지난달 28일 서울 은평구 자택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다. 하상윤 기자
32년째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미화(57) 출판평론가는 동네 책방 예찬론자다. 소도시 변두리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동네 책방에 자주 갔다. 버스정류장 근처 고갯마루에 있던,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작은 책방. 특별한 일이 없어도 언제든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 는 “책방 주인 아저씨는 가라는 소리 한번 안하고 하염없이 책을 볼 수 있게 해줬다”며 “고교생이 되어서는 교양잡지를 매달 책방에서 사서 보던 기억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책을 좋아했던 소녀는 이제 자기만의 서재에서 매일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쓴다. 오래된 책 향이 솔솔 풍기는 서울 은평구 한 평론가의 서재를 지난달 28일 찾았다.
“죽기 전에 다 못 읽어”… 솎아내도 쌓이고
“이제는 책 욕심은 안 부리려고 해요. 내가 다 읽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걸 아니까요.” 언젠가 읽을 책까지 바리바리 껴안고 살던 그는 몇 차례 이사를 하며 책을 과감히 정리했다. 그의 서가에 머무는 책의 수명은 평균 1년 남짓. 그 정도 뒀다가 다시 볼 일 없는 책 위주로 주기적으로 솎아낸다.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팔을 뻗어 그림책 한 권을 꺼내고 있다. 두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서가에는 그림책이 가장 많이 꽂혀 있다. 하상윤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재는 “살아남은 책들”로 빼곡했다. 책상을 중앙에 놓고 서재 겸 작업실로 쓰는 거실 두 벽면은 6단 책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은 안방과 베란다까지 침투했다. 집안 곳곳 비치된 책들 중엔 어린이책이 가장 많다. 그는 어린이책 출판 평론 전문가다.
어린이책을 가장 가깝게 뒀다. 책상에 앉은 그가 팔을 뻗으면 닿는 서가에 그림책이 자리한다. 1940년대 영화의 영향을 받아 시점 이동에 의해 공간을 표현한 최초의 그림책 로버트 맥클로스키의 ‘아기 오리들한테 길을 비켜 주세요’부터 피카소가 ‘제2의 레오나르도 다비치’라 극찬한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안개 속의 서커스’, 20세기 최고의 아동문학으로 꼽히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 칼데콧 아너상을 3번이나 받은 모 윌렘스의 ‘내 토끼 어딨어’ 등. 그림책의 역사를 짚을 때 필시 거론되는 책들이 눈에 띈다.
책에 관한 인문서도 즐겨 읽는다. 일본의 출판·서점 전문 저널리스트인 이시바시 다케후미가 쓴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나 세계적 인지신경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읽기 연구 고전인 ‘프루스트와 오징어’ 등이다. 지난달 출간된 강창래의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는 요즘 읽고 있다. 그는 이 책을 “시스템에 저항하고 세계를 균열하는 책 26권을 골라 그에 대해 쓴 에세이집”이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요하고 유효한 고전을 다루는데 상당히 재미있다”고 했다.
소설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동시대의 문제작이라고 평가되는 작품들 위주로 읽는다. 조해진, 백수린, 정세랑 같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는 “이미 MZ세대와 격차가 있다보니 그들의 감각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며 “소설을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의 취미는 그림책 속 캐릭터 인형을 모으는 것이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 속 피터 래빗 가족 인형 등이 책꽂이에 있다. 하상윤 기자
책, 어린이, 책방… 어느덧 32년이 쌓였다
그의 커리어는 크게 책, 어린이, 책방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된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그는 1994년 웅진출판에 입사했다. 편집자가 아닌 마케터로였다. 그는 “일을 해야겠는데 제일 좋아하는 건 책이니까 출판사에 취직하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며 “신문에 실린 책 광고 옆 구인 공고를 보고 편집자로 지원 했다 몇 번 떨어지고 난 뒤 영업부에 지원해 붙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영업부 최초의 대졸 여직원이었다. 수도권 도매상과 서점을 관리하는 게 그의 업무였다. 그는 “영업하면서 도서 유통과 판매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외려 마케터로 시작한 게 출판의 전 분야를 경험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했다.
1998년 9월 문을 연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 합류하게 된 것은 또다른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외환위기를 거치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 말고 나 아니면 못할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출판사를 박차고 나왔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출판 잡지를 만들면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첫 외고 청탁을 받아 잡지 ‘샘이 깊은 물’에 서평을 쓰던 때 기억이 생생하다. 원고지 7,8매짜리를 하루종일 매달려 고치고 또 고쳤다.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그동안 수집한 그림책 캐릭터 인형의 일부. 하상윤 기자
해를 거듭하면서 어린이책 분야 서평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출판평론가 중에는 양육자가 없었다. 양육자였던 그가 읽고 쓰는 어린이책은 남달랐다. 그림책이나 동화를 읽는 성인 독자들도 등장했던 시기다. 9년 전 공저로 출간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과거의 어린이 독자가 성인 독자로 바뀌면서 어린이책 시장이 무르익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이 나왔다”며 “특히 그림책 에세이라는 전에 없던 장르여서 많은 독자들이 좋아해줬다”고 설명했다.
오감 자극하는 동네 책방 예찬
동네 책방 예찬론자인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자기 생활권 안에서 찾은 동네 책방을 꾸준히 다닐 것을 권했다. 하상윤 기자
2015년 동네 책방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동네 책방 예찬에는 이유가 있다. “동네 책방의 묘미는 뭐냐면요. 여기 김영하 작가의 책이 있어요. 인터넷 서점에 가면 언제든 구매 버튼 한 번 눌러 주문할 수 있죠. 동네 책방엔 책방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큐레이션이 있어요. 그 안에서 내가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기쁨, 그 큰 즐거움을 한번 누려보세요. 지금껏 생각지도 못한 다른 세계가 열릴 겁니다.”
동네 책방에서는 오감이 모두 작동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책방이라는 공간, 서가의 구성, 매대 위에 놓인 여러 종류의 책을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물성으로서의 책을 직접 들고 펼쳐 보는 행위, 조명과 음악, 책방의 향기, 책방 주인과의 교감이 동시다발적으로 감각을 자극한다고 했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시대지만, 계속해서 책방이 생기는 이유다.
책 생태계에서 동네 책방의 역할도 크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나면 말하고 싶고, 알리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동네 책방에서는 독서 모임, 북토크 등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책 세상이 확장된다. 최근에는 지역 동네 책방을 탐방하는 여행객들도 많다. 독서는 시공간을 따지지 않는다. “책방에서 딱 1시간만 마음에 드는 책을 집중해서 읽어 보세요. 정말 희한하게도 머리가 맑아지거든요. 책방 문을 열고 나올 때는 혈색도 달라져 있을 걸요. 해보면 알아요. 그게 집중의 힘이거든요.”
한미화 출판평론가가 쓴 책 '동네책방 생존탐구'와 '유럽책방 문화탐구'. 하상윤 기자
그의 동네 책방 예찬은 책으로도 이어졌다. 동네 책방 존재 이유를 밝히기 위해 ‘동네책방 생존탐구’(2020)에 이어 ‘유럽책방 문화탐구’(2024)를 냈다. 인공지능(AI) 시대 책과 서점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 “AI가 모든 자료를 요약해주고, 유튜브가 매뉴얼을 보여준다지만 경험상 빨리 얻은 건 빨리 나갑니다. 지금이라도 책방에 가서 한 권의 책을 정성스레 골라 사서 읽어보세요. 5년, 10년 후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동네 책방에서 책 사는 당신이 멋진 사람입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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