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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털색에 있는 고양이의 유전적 비밀
X 염색체 내 희귀 결실, 수컷 발현률 높여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May 16 2025 03:45 PM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주황 고양이 유전자’가 마침내 밝혀졌다. 고양이 유전학자들은 국내 고양이의 특이한 주황색 털 색깔이 X 염색체에 위치한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됐다.
주황색 털은 호랑이나 골든 리트리버, 오랑우탄,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등 다양한 포유류에서 나타나지만, 고양이에게서는 그 색이 성별과 밀접하게 연결돼 수컷에서 훨씬 더 자주 나타난다. 이 같은 패턴은 고양이의 X 염색체 어딘가에 ‘주황 유전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해왔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번 연구에서 일본 규슈대학교(Kyushu University)의 유전학자 사사키 히로유키(Hiroyuki Sasaki) 교수 연구팀은 수컷 고양이의 X 염색체에서 ‘ARHGAP36’ 유전자에 특정 구간이 삭제된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이 돌연변이가 있을 경우, 수컷 고양이는 전신이 주황색 털로 뒤덮이게 된다.
연구진에 따르면, 암컷 고양이가 전신이 주황색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X 염색체 모두에 이 유전적 변화가 있어야 하며, 이는 드문 경우다. 한쪽은 주황, 다른 한쪽은 검은색 유전자를 물려받은 암컷 고양이는 얼룩무늬나 삼색 털 패턴을 갖게 된다.
사사키 교수는 이러한 얼룩무늬는 발생 초기에 각 세포에서 무작위로 X 염색체 중 하나가 비활성화되기 때문에 나타나며, 세포가 분열하면서 각기 다른 유전자 발현이 국소적으로 드러나 시각적으로 명확한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현상은 생물학 교과서에서 X 염색체 불활성화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연구진은 주황색 고양이 10마리와 비주황색 고양이 8마리의 DNA를 분석했으며, 주황색 고양이 모두에게 ARHGAP36 유전자의 특정 결실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 결과는 국제 고양이 유전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49마리의 추가 샘플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고양이의 주황 털색이 특정 X염색체 유전자 결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100여 년 만에 규명됐다. 언스플래쉬
ARHGAP36 유전자는 그동안 색소 형성과는 무관한, 생물의 전반적인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해당 유전자가 털 색깔을 결정짓는 ‘주황 유전자’일 것이라고는 예측되지 않았다. 사사키 교수는 단백질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고양이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이 유전자가 색소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이 유전자가 주황색 고양이의 색소세포에서 비정상적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의 연구자 크리스토퍼 케일린(Christopher Kaelin)은 이 발현이 털 색을 조절하는 중간 단계를 억제하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의 변형된 발현이 고양이의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케일린은 주황 고양이의 성격과 행동을 연구한 과학적 문헌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고양이 주인들이 털 색과 성격 사이의 관련성을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사사키 교수는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흥미로운 연구 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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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