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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생각이 아니라 감각에서 시작된다
대규모 뇌 연구, 데카르트 철학에 과학적 반론 제기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Jun 12 2025 02:46 P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1637년, 존재의 근거를 사고(思考)에서 찾았다. 감각이나 외부 세계, 심지어 육체까지도 의심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행위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전제를 통해 그는 '생각하는 나'를 자아의 근원으로 제시했다. 이 명제는 이후 400년간 서구 철학에서 자아를 사고하는 존재로 정의하는 기준이 됐다.
그러나 최근 뇌과학 연구들은 데카르트의 사고 중심 의식론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의식의 진정한 출발점은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대규모 국제 연구가 2025년 4월,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적대적 협업(adversarial collaboration)’이라는 드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서로 상반된 이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협력해 동일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다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실험 설계다. 총 12개국 256명의 피험자가 참여했고, 참가자들은 얼굴, 사물, 글꼴 등의 단순한 이미지를 제시받는 동안 EEG, fMRI, MEG 등 다양한 뇌 스캔을 통해 뇌 반응을 측정받았다. 이는 일반적인 단일 실험실 수준인 10\~20명 규모를 훨씬 초과하는 대규모 분석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두 가지 주요 의식 이론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통합 정보 이론(IIT,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다른 하나는 ‘전역 신경 작업공간 이론(GNWT, Global Neuronal Workspace Theory)’이다.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 박사는 이번 연구에 공동 저자로 참여했으며, 오랜 기간 IIT를 지지해온 인물이다. 그는 이번 실험이 기존 연구들보다 훨씬 정밀하게 설계되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쟁점은 의식이 뇌의 어디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GNWT는 전두엽, 즉 사고와 판단,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 앞부분을 의식의 중심으로 보지만, IIT는 시각, 청각, 신체 감각을 처리하는 후두엽, 즉 뇌의 뒤쪽 영역을 지목한다. 연구 결과는 후두엽 쪽에 명확한 손을 들어주었다. 코흐는 의식적 경험과 관련된 정보가 전두엽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거나 매우 미약했다고 밝혔다. 전두엽은 지능과 추론에 중요하지만, 의식적 시각 인식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쟁점은 의식이 언제 나타나는가였다. GNWT는 자극을 처음 인지할 때 순간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지만, IIT는 자극을 인식하고 있는 동안 계속 유지된다고 본다. 연구는 이번에도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극이 지속되는 동안 후두엽이 계속 활성화된다는 점에서 의식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 쟁점은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결론이 분명하지 않았다. 양측 이론 모두 고주파 뇌파인 감마 오실레이션(gamma oscillation)이 의식에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이번 데이터에서는 시각 피질과 전두엽 사이에서만 강한 연결이 나타났다. 이는 GNWT의 예측을 지지하지만, IIT에는 부정적인 결과다. 시각 정보와 후두엽 사이에서는 기대된 연결이 발견되지 않았다.
의식 이론 간의 승패를 단정짓기는 어려웠지만, 전체적으로는 IIT에 조금 더 유리한 결과였다. 특히 시각적 자극을 인지할 때 뇌 뒤쪽이 전두엽보다 더 활발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사고보다는 감각이 의식의 핵심이라는 주장이 부각됐다. 이는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와 한나 다마지오(Hanna Damasio)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이론과도 일치한다. 이들은 최근 발표한 '체화된 의식(embodied consciousness)' 이론에서, 의식은 배고픔, 통증, 쾌락, 스트레스 등 신체적 감각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느낌이 ‘나’라는 주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의식은 몸에서 시작되고, 사고는 그 뒤에 따라온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국제 뇌과학 연구 결과, 의식은 전통적으로 여겨졌던 사고나 전두엽이 아니라 감각과 후두엽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언스플래쉬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학문적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코흐는 의식의 기전을 파악하는 일이 의료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실용적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혼수상태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들을 다루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의 유무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생명유지 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데 직결된다.
그는 테리 샤이보(Terry Schiavo)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1990년 심장마비로 쓰러진 샤이보는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생명유지장치 제거 결정에 따라 사망했다. 코흐는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 심정지, 약물 과다복용 등으로 인한 비반응성 각성증후군 환자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의식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경우, 가족과 의료진은 생명 유지에 대한 의사를 결정하게 되며, 이로 인해 전체 환자의 70~90%가 사망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2024년 8월 발표된 논문은 이러한 결정에 충격을 던졌다. 해당 연구는 혼수 상태나 식물인간으로 진단된 환자의 약 25%가 침대 옆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숨겨진 의식(covert consciousness)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코흐는 이들이 의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연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식과 의식의 원인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식의 철학과 의학을 연구하는 조던 콘래드(Jordan Conrad) 박사는 몇 년마다 누군가가 의식의 물리적 상관관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상관관계가 곧 의식 그 자체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착각이 자주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의식의 원인을 밝힐 수는 있지만, 의식 자체를 발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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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