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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학상 30년, 여전한 과제
남성 중심 문학계에서 평등은 아직 멀었다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Jun 16 2025 03:57 PM
소설계에 영향력있는 상 중 하나인 여성 소설상(Women’s Prize for Fiction)은 영어로 쓰여 영국에서 출간된 여성 작가의 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선정한다. 1996년 처음 수여된 이 국제상은 1991년 부커상(Booker Prize) 최종 후보에 여성 작가가 단 한 명도 오르지 못한 데 대한 반발로 제정됐다.
오늘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자주 오르고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여성만을 위한 문학상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앨버타대학교 산하 ‘올랜도 프로젝트(The Orlando Project)’의 연구진 4명은 이 질문을 검토하기 위해 15개 영국 문학상과 관련한 데이터를 새롭게 구축했다. 데이터는 총 682명의 수상자 및 최종 후보자에 대한 성별, 인종, 학력 정보를 담고 있다.
분석 결과, 여성 작가의 문학이 남성 작가와 동등하게 인정받고, 보상받고, 읽히는 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성소설상이 첫 수상자를 발표한 1996년 당시, 역설적으로 다른 영국 문학상에서 여성 수상자의 비율은 감소했다. 그 비율은 2003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2012년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2003년 여성 수상자는 전체의 8%에 불과했지만, 2012년에는 53%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평균 45% 수준에서 정체됐다. 수치는 매년 등락을 거듭하며 일관된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2016년에는 21%였던 반면, 이듬해인 2017년에는 64%까지 올랐다.
부커상 수상자 데이터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여성 작가는 전체 후보의 39%를 차지했지만, 실제 수상은 32%에 불과했다. 특히 2016년 이후 부커상 최종 후보의 57%가 여성 작가였지만, 이 중 수상자는 33%로 남성 작가에 비해 비율이 낮았다.
장르별 차이도 뚜렷했다. 이제는 폐지된 코스타 아동문학상(Costa Children’s Book Award)은 수상자의 71%가 여성이었지만, 영국 SF문학상(British Science Fiction Award)에서는 여성 비율이 21%, 범죄소설협회 골드 대거상(Crime Writers Association Gold Dagger Award)에서는 31%에 그쳤다.
비소설(non-fiction) 분야는 여전히 남성 중심이다. 역사, 정치, 스포츠, 시사 등을 다루는 이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처하는 베일리 기포드 상(Baillie Gifford Award)의 경우, 수상자의 67%가 남성이었다.
인종과 민족 데이터도 주목할 만하다. 여성소설상이 여성 작가의 가시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모든 여성의 목소리를 동시에 확장하는 효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커상은 여성소설상이 도입된 1990년 이후 여성 작가 비율이 점차 늘어나 1996년 26%, 2022년 58%를 기록했지만, 인종적으로는 비백인 수상자가 여성소설상이 22%인 데 비해 부커상은 26%로 다소 높은 수치를 보였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서에서는 문학상 제도가 인종적 편향을 내포한 생태계의 일부라고 지적하며, 여성소설상을 중심 사례로 제시했다.
여성 문학상은 30년 동안 여성 작가의 가시성을 높였지만, 성별과 인종, 장르별 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언스플래쉬
여성 작가의 작품이 수상작에 더 자주 오르면서 동시에 픽션 독서 자체가 점점 줄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다. 특히 남성 독자의 감소가 두드러진다.
2024년 여성소설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베스트셀러 픽션 상위 500권 중 여성 작가의 책은 57%를 차지했지만, 남성 독자가 여성 작가의 책을 읽는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반면 여성은 남성 작가의 책을 읽는 비율이 44%에 달했다. 이는 여성의 참여가 높아진 분야가 동시에 사회적 위신을 잃는, 역사적으로 반복된 패턴을 연상시킨다. 예컨대 가정의학, 인문학 분야 교수직 등은 여성 비율이 증가할수록 사회적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경향을 보였다.
올랜도 프로젝트의 연구는 지난 800년간 영국 여성 문학사를 분석해왔다. 이들이 발견한 경향 중 하나는 장르와 성별에 따른 수익 및 명예의 격차다. 아동문학, 로맨스 등 여성 작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장르는 가장 수익이 낮은 편에 속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시대의 소설을 봐도 이 같은 패턴이 드러난다. 월터 스콧(Walter Scott) 등 남성 작가들이 ‘저급한 로맨스’라 비하한 소설 장르를 고급 문학으로 재구성하기 전까지는 여성 작가들이 이 장르를 주도했지만, 수익은 낮았다. 현재도 성별에 따른 문학 수입 격차는 여전하다. 2022년 영국에서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의 58.6% 수준의 수입을 얻었고, 이는 그들이 선택한 장르가 고수익 분야가 아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성소설상이 여전히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해진다. 여성들이 논픽션처럼 권위 있는 장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남성 독자들이 여성 작가의 책을 읽는 비율이 높아지며, 작가들의 수입이 축구선수만큼 높아지는 시점이 오기 전까지는 여성소설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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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