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그 아침의 농담 (하)
김외숙 단편소설(2023. 경북일보문학대전 대상 수상작)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n 20 2025 09:11 AM
나는 이제 그를 정상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 정상인데 알츠하이머라 진단한 의사의 말만으로 내가 과하게 그를 환자로 수발했는지도 모른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그를 돕는다며 내가 나서서 한 일들이 수년간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의 수족 노릇을 하느라 나는 그동안 너무나 고단했고, 고단했음에도 아직은 그가 스스로 샤워하고 스스로 옷을 입고 스스로 식사할 줄 안다는 이유로 환자 가족을 위한 미더운 제도조차도 이용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일일이 내 수발을 받느라 그는 할 수 있던 사고도 행동도 거세당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수발이란 이름으로 그의 병이 깊어 가는 일에 일조한 셈이었다. 이 아침 그가 한 맑은 정신의 말은, 나로 인해 정말 환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날 더 이상 환자 취급하지 마’하는, 내게 보내는 경고 같았다.
가든파티에서 다시 남편의 짝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웃 남자는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의 아내를 생각했다. 평생 남자의 다리 역할을 한 여자였다. 그녀도 좀 벗어나야 했다, 그 고단했을 휠체어 노동에서. 다리 불편한 남자가 응급실에 가면 여자가 잠시라도 휠체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리 불편한 남자보다 나는 이제 여자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려니 알츠하이머 진단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몇 년간 그의 수족 노릇을 한 나의 수고도 한꺼번에 내 어깨에 내려앉는 듯 갑자기 버거웠다.
스물네 시간 그와 밀착할 수밖에 없던 나날이었다. 그의 표정, 그의 숨소리로 나는 그의 심기를 알아채야 했다. 내 행동은 갈수록 민첩했고 그는 갈수록 느렸다. 그는 환자였고 나는 건강했다. 그런데, 누군가와 스물네 시간 함께 해야 하는 일, 그것에서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긴 그 시간이 갑자기 내 어깨를 짓누르더니 숨통까지 막는 것 같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 재작년 여름 모임 때 이웃의 그녀와 내가 마치 동지인 듯이 서로의 남편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에 이렇게 말했었다, ‘우린 강해야 해요.’ 하고.
내가 한 말인지 그녀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데 남편들이 우릴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젠 강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버거웠다. 갑자기 모든 것이 벅차면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치 그의 기억의 창고를 뛰쳐나온 기억인 듯, 훨훨 날고 싶었다. 스물네 시간을 아무와도 나누지 않고 오직 날 위해서만 써 보고 싶었다. 한 번도 한 적 없던 생각이었다.
생각만으로도 흐뭇한 그 넘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도록 나는 생각을 방치했다.
모르면 모를까 이웃에서 일어나고 있는 응급의 사실을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 겨우 젖혀진 블라인드 사이로 몰래 내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자도 손 쓸 수 없도록 하는 이 응급의 순간에 아무리 응급요원이 알아서 한다고 할지라도 이럴 때일수록 이웃은 이웃대로 나름의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같이 걱정을 나누고 위로하는 일일 것이었다. 그런데 바이러스 감염을 이유로 훔쳐보듯이 블라인드 날개 하나 사이로 남의 고통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이 행태, 설령 다른 이웃들도 나처럼 블라인드 사이로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웃의 일에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나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동병상련의 끈끈한 관계가 이미 그들과 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침 햇살은 이미 거리에 찼고 응급차가 서 있는 거리는 고요했다.
마스크 너머 눈빛으로나마 이웃 여자를 위로하고 싶었다, 남자가 응급실로 간 몇 시간 동안이라도 좀 쉬라고. 그리고 내가 뭘 도울 것은 없는지 물으려 했다.
거리를 지켜야 해서 나는 응급차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길 건너서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이웃집에서 응급요원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먼저 현관문 바깥으로 몸을 내밀고는 안쪽으로 몸을 돌려 아픈 이웃 남자가 누웠을 들것을 조심스럽게 당기는 것 같았다. 다른 한 남자는 아직 집 안에서 들것의 발치 부분을 잡고 있을 거였다.
세 개의 계단을 내려서야 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몹시 신중했다.
이윽고, 들것 바퀴가 땅에 내려섰다. 들것을 따라 나오리라며 나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러나 바퀴가 땅에서 구르도록 여자는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마침내, 들것이 응급차 문 앞에 서고 두 남자가 그것을 차 속으로 들일 찰나였다.
“어머나!”
응급요원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들것 머리깨로 무심코 눈길을 주던 내가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두 응급요원이 막 응급차 속으로 들이려던 들것엔 빛바랜 긴 블론드 머리카락의 여자가 누워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이미 길을 건너 응급차 쪽에 서 있었다.
“욕실에서...”
여자가 말했다.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는 말 같았다.
날 알아본 여자가 천천히 시작한 말을 다 마무리하기도 전에 두 남자가 응급차 속으로 들것을 들인 후 문을 닫더니 휑하니 달아났다. 여전히 사이렌 소리는 없었지만 잽싼 마무리가 그때 서야 비로소 응급차 같았다.
길 위에 선 채 나는 달아나던 응급차 꼬리에다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은밀하게 하고 있던 나의 계획이 갑자기 뒤죽박죽되어버리기라도 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응급차가 사라진 공간엔 봄 햇살이 아지랑이인 듯 아른거렸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속에서 갑자기 두 남자가 나타났다. 이웃 남자와 남편이었다.
이웃 남자는 아지랑이를 헤치며 휠체어 바퀴를 굴리고, 남편은 응급차 꽁무니를 향해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휠체어를 굴리는 남자의 팔뚝은 근육으로 탄탄했고, 늘 앉았거나 눕기만 하던 남편도 휠체어 밀기 경주라도 하듯이 상기된 표정이었다. 여름 가든파티에서 휠체어와 접이의자에 나란히 앉았을 때처럼 두 남자가 단짝 같았다.
‘우린 어떡하라고 맘대로 다친 거야?’
두 남자가 따라가며 소리치는 것 같았다. 두 남자가 밀고 굴리는 힘은 의외로 강해서 행여 그들의 휠체어가 사이렌 소리도 없는 응급차를 따라잡을까 나는 조마조마했다.
‘어서 달아나, 넌 응급차잖아!’
마치 본연의 의무를 잊은 듯 느리고 고요하기만 하던 응급차를 향해 내가 채근했다. 단 며칠이라도, 비록 응급실에서라도 여자는 쉬어야 했다. 쉬어야만 또 휠체어를 밀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이미 저만치 달아나고 있던 응급차를 향해 용을 쓰고 있던 내 눈 속으로 블라인드를 비집고 들어오던 그 봄 햇살이 찌르듯 꽂힌 것은.
그때 서야 나는 머리를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지랑이도 두 남자도 없는 길에 나 혼자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블라인드 날개 사이로 수많은 눈이 날 바라보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나는 그 눈길들을 피하듯 잽싸게 걸어가 현관문을 밀었다.
“누구세요?”
여태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머릿속을 한 채 집안에다 발을 들이는데, 블라인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을 남편이 현관문 쪽으로 와 내 앞에 섰다.
“누구시냐고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었지만 그가 농담한다고 믿고 싶었다. 아니, 농담이어야 했다.
“아, 농담 좀 그만 해요!”
너무나 진지한 그에게 이런 일로는 결코 농담하고 싶지 않은 내가 바락 소리쳤다.
그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 목소리에 놀란 나도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이젠 나도 헷갈렸다.
그도 나도 창가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내 손은 습관인 듯 길게 누운 블라인드 날개 하나를 젖혔다.
봄 햇살이 마구 눈을 찔렀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