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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소화기 질환과 직결
영양 결핍과 환경 미생물 노출 증가로 악화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Jun 30 2025 03:38 PM
기후변화가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심혈관 질환과 호흡기 질환, 정신건강 문제를 넘어 소화기 질환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설사병, 과민성대장증후군, 장 감염 등 다양한 소화기 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이고 있다.
미시간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 수생생태학 교수 엘레나 리치먼(Elena Litchman)은 고온이 인체 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켜 장 점막, 면역 세포, 호르몬 조절 세포의 기능을 교란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음식물의 소화 시간이 불규칙해지고,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는 이형증(dysbiosis)이 발생하게 된다.
캐나다 달하우지대(Dalhousie University) 의학 교수 데스먼드 레딘(Desmond Leddin)은 고온이 장 점막의 투과성을 높여 이른바 ‘새는 장(leaky gut)’ 현상을 유발하고, 장내 미생물이 혈류로 침투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치먼 교수는 장 점막의 연결 부위가 느슨해지면 장내 산소 농도가 높아져, 비유익한 세균이 증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내 미생물은 인간뿐 아니라 토양, 공기, 물 등 외부 환경의 미생물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리스테리아, 대장균, 시겔라 같은 유해 미생물이 토양과 수계에서 증식하고 있으며, 이는 음식물 섭취, 피부 접촉, 먼지 흡입 등을 통해 인체 내 미생물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으로 환경 미생물에의 노출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농업 중심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러한 접촉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레딘 교수는 과거에는 드물던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질환이 저소득 국가에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기온 상승은 수인성 병원균의 농도를 높이는 동시에, 무더위를 견디기 위한 물 섭취 증가로 오염된 병원균에 노출될 위험도 커지게 한다. 반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탈수 상태에 이르고, 이로 인해 혈액이 장과 근육에서 뇌와 심장 등 주요 장기로 우선 공급되면서 소화기관 기능이 저하된다. 그 결과 복통, 변비, 소화 지연, 영양 흡수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휴스턴 메소디스트 병원(Houston Methodist Hospital) 위장 건강 담당 교수 이암몬 퀴글리(Eamonn Quigley)는 탈수가 소화기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도 장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레딘 교수가 2024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홍수는 로타바이러스, 크립토스포리디움, 캠필로박터, 예르시니아 같은 병원균으로 지하수를 오염시켜 감염병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2004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홍수는 약 35만 건의 설사병 사례를 초래했다.
기후변화가 장내 미생물 균형과 식품 영양에 영향을 미쳐 다양한 소화기 질환 위험을 높이고 있다. 언스플래쉬
기후변화는 식품 영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온은 작물의 생장 속도를 빠르게 하지만 영양가는 낮아진다. 30도 이상에서는 항산화 성분이 줄고, 쌀은 환경 속 비소를 더 많이 흡수한다. 리치먼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로 인해 밀, 쌀, 옥수수의 아연, 철분, 단백질 함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2050년까지 단백질 결핍 인구가 1억 명, 아연 결핍 인구가 2억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해양 온도 상승 역시 어패류 자원 감소로 이어져, 특히 저소득 국가의 단백질 섭취량과 장내 미생물 다양성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리치먼 교수는 ‘숨은 기아(hidden hunger)’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동일한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영양가는 줄고 소화는 어려워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환경의 악화는 식량 부족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다양한 식단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다양성과 직결되며, 그 다양성은 곧 장 건강의 지표가 된다. 퀴글리 교수는 농업이 불가능한 지역이 늘어나면서 식량 위기와 함께 장내 미생물 다양성의 붕괴가 인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4년은 관측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됐으며, 최근 10년은 지구 기온이 가장 높은 시기로 꼽힌다. 기후위기의 심화는 지구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 전반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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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