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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데려갔으면”

부모 잃은 ‘엘리오’는 왜 우주로 가고 싶을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09 2025 02:05 PM

지구선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우주엔 필요로 해주는 존재 있지 않을까 큰 상실 겪은 아이들의 ‘심리적 방어기제’ ‘사랑하는 사람 사라질 수 있다’ 두려움에 ‘잃는 고통보다 외로운게 더 낫다’ 믿게 돼 타인 관심 밀어낼 때마다 외로움 더 커져 ‘있는 그대로의 나’ 받아 준 외계 생명체 “난 너 좋아” 한마디에 마음의 문 열어 따뜻한 경험은 외로움 맞설 강력한 힘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엘리오’는 외로운 아이가 소통을 하며 성장하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엘리오는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잃고,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고모와 함께 살게 된다. 고모는 엘리오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두 사람은 공군 우주센터 근처에서 함께 지낸다. 엘리오는 자신이 고모의 인생을 방해하는 존재라고 느낀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누군가 나를 데려가 줬으면’ 하고 바라본다. 지구에서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엘리오에게 우주는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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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오'의 주인공 엘리오가 외계인이 자신을 발견하고 우주로 데려가주기를 바라며 모래사장에 누워 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있는 그대로의 나’ 누가 받아줄까

엘리오는 날마다 해변에 나가 외계인과 교신을 시도한다.

“나는 지구의 엘리오입니다. 나를 데리러 와주세요. 기다릴게요. 사랑해요.”

머리에 안테나를 쓴 소년이 라디오를 조작하며 혼잣말을 하는 이 장면은 가볍게 웃음을 주다가 무거운 울림으로 여운을 남긴다. 왜 이 아이는 외계인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지구에서는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우주 어딘가에는 나를 진짜로 필요로 해주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이런 생각은 큰 상실을 겪은 아이들이 종종 품는 상상과 닮아 있다. 이런 상상 혹은 공상이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아이들은 마음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어떤 존재를 만들어낸다. 숨겨진 ‘진짜 부모님’이 있다고 믿기도 하고 내가 진짜 속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따로 있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엘리오는 바로 자기가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를 우주라는 배경 위에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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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와 함께 사는 엘리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엘리오는 자신이 고모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고 느끼며 어디에서도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러한 감정은 엘리오의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됐지만 비슷한 외로움과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늘 누군가에게 유용하거나 도움이 될 때만 존재 가치를 느낀다.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여야 사랑받는다’ ‘성공해야 인정받는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결국 이렇게 믿게 된다. ‘나는 있는 그대로는 부족하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

이런 마음은 자존감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관계 안에서도 스스로를 ‘역할’로 정의하게 만든다. 늘 잘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기여해야만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자신이 사라져도 되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엘리오가 간절히 기다리는 존재는 무언가를 잘하거나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줄 누군가다. 그 마음은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 느껴본 마음일지도 모른다.

 

외로운데도 계속 타인 밀어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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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오는 늘 혼자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엘리오는 학교에서 늘 혼자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무선통신장비를 만지고, 혼잣말을 한다. 이렇게 혼자 있는 엘리오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해변에서 먼저 말을 걸며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엘리오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타인의 관심을 밀어낸다. 물건만 받고 대화를 끊고 거리를 두며 혼자가 되는 것을 택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엘리오의 마음속에 단순한 낯가림이나 움츠림이 아닌 깊은 두려움과 상처가 숨어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른다.

엘리오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인 부모님을 잃었다. 부모님이 어떤 연유로 세상을 떴는지 영화에선 설명이 확실치 않지만 엘리오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님을 잃어버렸다. 얼결에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버린 것이다. 이 경험은 엘리오의 마음속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 할 때마다 작동하는 불안의 불씨가 된다. 이처럼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상태를 유기불안이라고 한다. 유기불안이 강한 아이들은 타인과 가까워질수록 불안도 커진다.

‘이 사람이 언젠가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이 관계가 깨지면 나는 다시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차라리 처음부터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한다. 친해지려 내민 누군가의 손길조차 그저 금방 사라질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엘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반갑기보다 무서웠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여는 순간 그 사람을 잃게 될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거리를 둔다. 혼자가 외롭다 해도 잃는 고통보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더 낫다고 믿게 된다.

이러한 생각이 굳어지면 관계에 기대거나 의존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엘리오는 헌신적인 고모와 함께 지내며 보살핌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엘리오는 고모의 마음이 진심인지, 고모와의 가족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과의 거리를 스스로 설정하고 조절 가능한 관계만을 허용한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가까워졌다가 상처받을 바엔 차라리 애초부터 혼자인 게 낫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엘리오의 외로움은 누군가를 밀어낼 때마다 더 커진다. 겉으로는 혼자 있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먼저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진심이 숨어 있다.

‘누군가 나를 끝까지 좋아해 준다면, 내가 좀 이상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면, 그때는 나도 다시 세상을 믿어볼 수 있을 것 같아.’

 

 

따뜻한 경험은 강력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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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오가 우주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 글로든.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엘리오는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 글로든을 만난다. 각각 ‘왕자’와 ‘지구의 대표’인 두 아이는 모두 외로움과 결핍을 안고 있다. 엘리오는 글로든에게 이렇게 털어놓는다.

“지구에선 친구가 없었어. 처음엔 지구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내가 문제인 것 같아.”

그동안 엘리오가 감추고 있던 진짜 속마음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내가 잘못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슬퍼하는 엘리오에게 글로든이 말한다.

“난 너 좋아. 내 눈엔 너 꽤 괜찮아.”

그 짧은 한마디가 엘리오의 마음을 연다. 사실 엘리오는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었던 아이였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혼자 있던 것도,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담 분야에서는 이런 경험을 교정적 정서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상처를 덮을 만큼 충분히 따뜻하고 새로운 경험, 세상은 늘 나를 거부할 것이라 믿던 사람에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경험은 외로움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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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오가 글로든과 함께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외로움을 그대로 안아주기

우리는 흔히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울 때가 많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 나만 혼자인 것 같은 고립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 외로움이 더 짙어진다. 영화 ‘엘리오’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외로움을 외로움 그대로 안아주며 토닥인다.

“너는 지금 이대로 괜찮아. 네가 누구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든.”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 주는 마음 하나가 외로움을 견디게 만드는 ‘심리적 안전기지’가 될 수 있음을 영화는 조용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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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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