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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게임 (하)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01 2025 09:00 AM
머리가 몹시 무겁고 아프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머리의 무게에 짓눌려 잠자리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개운하지 못할까? 머리뿐 아니라 기분까지 오물 속에 빠졌다 나온 것 같다. 뭣 때문일까? 잠자리 속에서 미적대며 간밤의 일을 돌아보았다.
친구가 갖고 온 양주와 맥주를 폭탄주라며 마시기 시작했고 옛일들이며 샴페인 얘기도 했었던 것 같았다. 샴페인 얘기하면서 자연스레 샴페인 너무 일찍 터뜨린 한국의 경제와 정치로 연결했던 것 같았다.
‘아직 멀었어, 한국 사람들. 좀 있다고 잘난 척하고... 캐나다 교민들 한국 가면 캐나다 거지 왔다고 한다며?’
친구는 술기운이 오를수록 그렇게 듣도 보도 못한 말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았다.
‘자네들이 왜 거지야, 선구자지. 남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을 때 과감히 떠났잖아?’
내가 술기운을 억누르며 맞받았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때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이 땅으로 온 그들이었다. 이 땅에 뿌리 내리기 위해 오랜 세월 고생은 했겠지만 어쨌든 앞선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임에는 분명했다.
‘우리는 바보라 이러고 사는 줄 알아? 세금 천국 캐나다에서 양심껏 살고 있다고. 그래, 나 문 앞의 폭포에도 갈 여유 없이 살았어. 열심히 살았다고.’
친구는 이미 취해있었다. 아마도 폭탄주의 위력 때문일 것이었다. 취중에 드러내는 말로, 이 친구도 나처럼 가슴속에 쌓인 것이 많은가 보다, 란 생각을 나는 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기는 친구나 나나 마찬가지였구나 하는 생각도 한 것 같았다.
‘있는 척 온갖 거드름이나 피우고...어디 가도 그 근성 못 버리는 인간들!’
생각해보니 열이 바짝 오른 건 그 근성이란 말 때문이었다. 마치 나를 포함한 남은 사람 모두를 비하하는 것 같던 그 말, 술기운이 없었다면 어쩌면 흥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어쨌든 참았어야 한 말을 나는 근성이란 그 한마디에 들썩거리던, 그러나 애써 억누르고 있던 뚜껑을 머리가 획 도는 열기에 사로잡혀 팡, 터뜨리고 말았다, ‘일찌감치 보따리 싸 들고 떠난 넌 뭘 잘했냐? 는 말을 시작으로.
‘툭하면 샴페인 먼저 터뜨렸네, 어쩌네, 하는데 그래, 샴페인 좀 터뜨렸어. 자네들이 도와준 거 있어?’
나도 이미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자네들은 배운 것, 다 이 나라 위해 썼어. 세금 많이 내고 양심껏? 그게 누굴 위해서야? 살림 잘못 살아 경제난 만났어도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내쫓기고도 우리는 할 말 다 못했어.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할 말 다 하고 사냐고!’
내 속에 가득 차 있던 울화를 친구의 말을 트집 잡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할 말이 가득해도 억울해도 어디 한 곳 하소연할 데, 분풀이할 데가 없었다. 마음대로 한다면 누군가를 상대로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그래서 가득한 울분을 마구 터뜨리고 싶었어도 주먹은커녕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참아야 했다. 오히려 누군가가 알까, 언성을 낮추어야 했고 아내는 아이들이 알까 쉬쉬하다가 이웃이 알까 전전긍긍했다. 체면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억누르다가 힘겹게, 정말 힘겹게 남은 삶을 위한 선택을 앞두고 이곳까지 찾은 내게 친구는 마치 자신은 그렇게 말을 할 뭔가를 갖고 있기라도 한 듯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마치 친구가 내게 명퇴를 강요하기라도 한 듯, 그래서 화풀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이자 먼저 오른 술기운에 열을 올리던 친구가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것 같았고, 몽롱한 눈으로 술만 마시던 친구 아내가 놀라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는 것 같았다. 술기운이 전신에 퍼졌어도 나는 친구 내외의 놀라 휘둥그레진 표정은 읽을 수 있었다.
‘그래, 지지리도 못 살다가 좀 살만하니 과시가 하고 싶었겠지. 그것도 열등감일 거야. 그래도 일찌감치 보따리 싼 자네들보다 낫지 않아?’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싶었다. 내킨 겸에 모두 폭발시키자며 드러내 놓고는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기억을 할 수 없는데 눈을 떠보니 침대 위였다.
낭패감이 쓰린 위를 거쳐 전신에 퍼지는 듯했다. 그럴수록 일어날 수가 없어서 될 대로 되라며 그러고 있었다.
“일어났으면 해장 한잔하자, 오늘은 문 닫고 폭포라도 갈까 해.”
친구가 내 속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차마 일어나지 못해 미적대고만 있던 날 향해 문밖에서 말했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쓸고 있었다.
폭포는 내 눈에 혼돈이었다. 유유히 흐르다 한순간에 곤두박질친 물줄기는 떨어지면서 허옇게 거품을 물었다. 이어 바닥에 패대기쳐진 물줄기가 저들끼리 고꾸라지고 자빠지며 아우성치더니 잠시 기함한 듯 엎드려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았다.
경제난이란 큰 흐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맥을 추지 못한 채 이곳까지 흘러온 내가 문득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그래서 거품을 문 채 기함한 물줄기 같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장남이란 무게에 짓눌려 마음껏 활개를 치지 못한 적도 있지만, 장남이었기에 오히려 순탄한 혜택의 길을 걸었었다. 가난한 농부, 끼니 걱정해야 했던 집안에 태어나 꿈도 꿀 수 없던 대학을 나는 장남이었기에 다닐 수 있었고, 동생들은 장남이 아니었기에 희생했다. 마치 당연한 권리인 듯 받아 누린 혜택, 가족의 희생을 딛고 다닌 대학 생활과 직장생활, 그 순탄하던 길이 명예퇴직이란 낭떠러지를 만나면서 곤두박질쳤다고 이렇게 억울해하고 의기소침해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잠시 엎드린 채 숨죽이고 있던 물줄기가 서서히 미동하기 시작했다. 일렁이며 몸의 거품을 털어 낸 물은 혼미하던 정신을 웬만큼 수습하고는 다시 흐름을 시도했다. 그리고 좁고 가파른 흐름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뒤틀리고 뒤집히는 저 소용돌이의 혼란만 벗어나면 바다 같은 그 넉넉한 호수의 품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
물줄기가 다시 일어나 거품을 털어 내고 강을 따라 흐르듯 나도 내 피부처럼 지닌 체면의 거품을 벗어버리고, 없었던 일이듯 다시 흐를 수 있을까? 내 인생의 오후는 어디서부터 흘러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옆에 친구 내외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생각에 사로잡혔다.
친구는 말이 없었다.
‘그래, 말 잃을 만도 하지.’
저 폭포를 집 앞에다 두고도 와 보는데 십오 년이나 걸린 삶이라면 그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폭탄주를 빌미로 속에 찬 감정을 드러낼 만도 했겠다, 는 생각도 들었다. 폭포를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탄성이라도 질러야 할 친구는 마치 석고상 같은 옆얼굴을 한 채 폭포를 응시하고 있었다.
친구는, 울고 있었다.
당찬 체구에 눈빛이 유난히 당돌해 보이던 친구의 옛 모습은 이미 없었다.
“나, 이럴 줄 알고 이곳엔 안 오려고 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방치한 채 친구가 중얼거렸다.
“호기부리며 떠났지만, 이곳에도 수많은 낭떠러지가 있더라. 곤두박질치고 자빠지고... 돌아갈수도 없는데 하나 이겨내면 또 하나가 기다리고... 저 물줄기처럼 몸 날리고 싶어질까 봐 여긴 못 오겠더라.”
불투명한 발음으로 친구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이제는 그 낭떠러지들을 다 이겨냈을까? 아니면 설령 코앞에 낭떠러지가 있다 하더라도 멋지게 몸 날릴 정도로 단련이라도 된 것일까? 친구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오래 참았던 눈물이리라. 내가 살며시 친구의 어깨 위에다 팔을 얹었다. 어깨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거기서든 여기서든 다시 시작하자.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건 다행이야.”
친구가 젖은 눈으로 싱긋 웃었다. 말을 않았어도 친구는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폭포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연이어 떨어지는 물은 잠시 엎드렸다가 훌훌 거품부터 털어 내며 기동하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협곡을 향해 물줄기를 틀었다.
‘함께 흐르자, 너의 오후를 위해!’
어쩐지 혼절에서 깨어난 물줄기가 날 잡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물줄기에 잡힌 내 마음이 벌떡 일어섰다. 좁은 강폭을 따라 바삐 흐르노라면 부글거리던 내 속의 거품은 절로 씻겨나가리라. 그리고 마침내 멀지 않은 곳, 바다 같은 호수에 당도하리라.
천지를 뒤집어 놓는 것 같은 폭포 소리보다 더 크게 내 가슴이 쿵쿵댔다. 나는 심장박동을 방치한 채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흘러갈 곳을 두고 있는 물줄기였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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