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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상)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07 2025 09:55 AM
“나, 안 살 거야.”
잠든 아이를 등에서 내려 눕힌 딸이 대뜸 말했다.
아이 머리맡에 앉은 딸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누르스름하게 탈색된 까실한 머리카락은 이마 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고 오기 전에 뒤엉켜 한바탕 치고받기라도 했던지 차림새며 표정이 한 번 쥐어짰다 편 손수건 같았다.
“무슨 일이야 이 야밤에?”
요동치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내가 물었다. 늦은 시각에 어수선한 꼴로 아이를 업은 채 내 집 문을 들어서던 그때부터 이미 비정상적으로 두근대던 가슴이었다.
전후 사정은 잘라 버리고 대뜸 ‘안 산다.’는 말부터 한 딸은 내 물음에는 입을 다물었다. 찢어도 열지 않겠다는 듯이 다문 입, 꼿꼿한 등과 목덜미가 고집스럽다. 언젠가 한 번은 일내지 싶어, 조마조마했었는데 결국 터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말려도 외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세우던, 결국 저 자신도 꺾지 못한 그 고집이 빚은 꼴일 터였다. 성질대로였다면 애초에 대문엘 들어섰을 때 눈물이 쑥 빠지도록 꾸짖어 스스로 등 돌려 나가도록 했을 텐데, 내가 내 성질을 누른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딸 나이였을 때 같은 꼴을 하고 나타난 나를 받아준 어머니였다.
어쨌거나 어머니의 성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내 마음 한 곳엔 여전히 다스리기 힘든 울화가 끓는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옆에서 굿을 해도 곁눈질 한 번 줄 줄 모르는 저 고집에의 울화. 그것은 내가 넌더리를 내는 한때의 내 모습, 결국 나 자신 때문에 끓는 울화였다.
아이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엉겁결에 낚아채듯 업혀 왔을 어린것이나, 목덜미로 비어져 나온 부스스한 머리카락도 갈무리할 줄 모른 채 방바닥 어딘가에다 시선을 꽂고 있는 딸, 내 눈엔 둘 다 신산스럽다.
불규칙적으로 뛰고 울화로 끓던 가슴이 이젠 불안으로 바짝바짝 타는 것 같다. 딸이 입을 다물수록 내 속에서 팽창되던 불안이 ‘어쩌자고 애는 낳아서’ 하는 원망과 어우러지며 그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다.
“안 살 거면서 애는 왜 끼고 와?”
내 속의 팽창된 뭔가가 급기야 악담으로 터져버렸다.
“그럼 어쩌라고, 엄마도 못 버렸다면서.”
딸이 꼿꼿한 목을 홱 돌리더니 다시는 열 것 같지 않던 입으로 바락 대들었다.
속에서 연거푸 터져 나오려던 뭔가가 딸의 입에서 터져 나온‘엄마도 못 버렸다면서’란 말의 기세에 눌려 쑥 들어가 버렸다.
‘버려도 좋을 것까지..’
‘닮았구나’란 부분은 나도 모르게 삼켜버렸다. 마치 거울 속에 든, 결코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인 듯 딸을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 외면했다. 남자가 잠시 한눈을 팔았다고 정말 갓난쟁이를 둘러업고 나와 그 길로 남자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어머니 곁에서 버틴 나였다.
그때 어머니는 어린것을 끼고 나타난 날 한숨만 뽑아 올리며 바라보셨다. 비장한 마음으로 앉아 있던 내가 오히려 무색할 정도로 도무지 억장이 무너져 한마디 말조차도 할 수 없다는 눈빛을 한 채 침묵을 고집하던 어머니. 집 나온 딸을 대하는 어머니와 나의 다른 점은 말 없음과 갉기였다. 속마음과는 달리 자꾸 어깃장을 놓으며 딸을 갉으려는 나 자신을 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제대로 속 시원하게 터지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린 할 말 덩어리가 명치를 틀어막았는지 갑갑하고 암담하다.
집을 나와 내 집으로 온 것을 딸은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한 번 바락 대들고는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릎을 덮고 있는 치맛자락만 만지작대고 있다. 그때 이마에 따갑게 와 닿던 어머니의 시선도 외면한 채 고집이 빚은 난감한 현실을 잘근잘근 입술과 함께 씹기만 했던 한때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은 딸의 모양이었다. 그 옛날 말없이 한숨만 뽑아 올리시던 내 어머니의 심정도 지금의 나 같았을까?
오래전, ‘그만 살 거야.’라며, 마치 어머니가 맺어준 짝과 헤어지기라도 하는 듯 내가 당당하게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등에 업힌 어린것 때문이었다. 어린것만 버리지 않으면 그간에 있었던 어떠한 잘못도 면죄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애 엄마로 나타난 딸을 앞에 둔 어머니의 눈에는 등에 업힌 어린것이나 ‘그만 살 거야.’라고 말하는 딸이 한 덩어리로 보였던지 천정이 내려앉아 버릴 것만 같은 깊은 한숨만 내쉴 뿐 말이 없으셨다. 어머니의 한 숨은 내 철없던 고집이 어머니를 꺾으면서 비롯된 어이없는 현실을 말없이 나무라는 의미였는가 하면, 그 철딱서니를 그래도 품는 의미이기도 했었다. 무슨 억하심정이었던지 나는 그 어머니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늘 꼿꼿이 고개를 세워 어머니의 속을 긁었다. 내게 어머니는 동네북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잠시 한눈을 팔았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오냐, 나가 주마.’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입고 있던 옷에 아이만 꿰차고 나온 내 고집이 장애물이라도 만난 듯 잠시 휘청거렸던 건 역시 말없이 깊이 바라만 보다 속 깊은 곳에서 뽑아내던 어머니의 그 한숨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내 고집을 잠시라도 주춤하게 한 건 늘 이런저런 긴 훈계가 아닌 어머니의 그 한숨 소리였다.
다시는 열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문 채 한참을 날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그래, 살자꾸나, 어미랑.’ 하며 날 받아들이신 건 나중 일이었다. 고집 세워 집을 나와 여차하면 남자도 어머니도 없는 다른 곳으로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작정으로 입술만 잘근대며 앉은 나를 정말 그대로 주저앉힌 건 바로 한숨 뽑아 올리며 한 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였다. 고집을 세우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철없었던 한때를 후회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적이 있는 어머니의 집에 아이를 업은 채 돌아와 슬그머니 눌러앉아 버렸다. 한 번 눈길과 마음 주면 벼락이 쳐도 고개 돌려 한눈팔 줄 모르던 내 고집. 돌이켜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이던 고집 센 딸, 그러나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철이 없어 허술하기만 한 딸을, 속이야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차라리 당신의 눈앞에다 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
‘엄마도 못 버렸다면서’라 하고는 여전히 시선을 한 곳에다 두고 있는 딸을 나 역시 말없이 바라본다. 아이는 쌕쌕 고른 숨소리를 내며 여태 깊이 잠들어 있다. 집을 나와서 어미 앞임에도 속을 드러낼 줄도 모르고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딸의 머릿속에는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뿐일까? 제 어미가 어떠한 근심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잠들어 있어도 내 눈에 어린것은 이미 어미의 마음을 묶어두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미가 그 마음에서 어린것을 떨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가슴에다 비수를 꽂으며 선택한 남자였음에도 그 남자는 버렸어도 피붙이는 달고 나온 바로 내 모습이었다.
나도 어쩌지 못한 저 마음 한 자락, 다시는 볼 일 없다는 듯 냉정하게 등 돌리던 딸의 마음을 세상모르게 잠든 어린 자식은 온통 옥죄고 있음이 경황 중에도 신기하다. 그래서 자식을 살붙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끼고 왔어도 그 자식이 오히려 족쇄로 느껴진 적이 내겐 있었다.
모질게 마음먹고 끼고 온 어린 딸은 내 마음 같잖게 자꾸만 엉뚱한 길을 기웃대며 내 속을 태웠다. 어쨌든 나 같지 않게는 키워야 했는데 철없던 딸은 어미의 마음을 모르고 바깥으로만 돌았다. 아비 없이 자란 탓일까? 아무리 애를 끓여도 내 눈에 딸은 위태로운 곳으로만 눈길을 돌리는데, 그렇다고 힘겹게 날 받아주신 어머니 앞에서 아비 없는 자식 키우느라 속 문드러지는 내색은 할 수 없었다. 바로 어머니도 꺾지 못한 내 고집이 만든 결과였으므로.
그렇게 바깥으로 돌아 처음 만난 사내에게 마음을 빠뜨린 채 어미는 안중에도 두지 않더니 딸은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딸은, 부른 배를 안고 내 앞에 나타났다.
몸무게보다 더 나갈 부른 배를 하고도 부끄러움은커녕 개선장군 행세를 해 내가 오히려 얼굴을 들지 못했는데, 그것은 내가 어머니의 철없던 딸이었을 때는 결코 알지 못한 민망함이었다.
딸도 사는 것도 다 귀찮아 훌훌 털어 버리고 세상을 뜨고 싶은데, 영락없는 한때의 내 모습은 오히려 내게 족쇄가 되어 붙박이인 듯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고통을 겪게 했다. 자식을 끼고 지키는 일이란 어머니를 저버린 잘못조차도 상쇄될 수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인 줄 알았는데, 그러함에도 지키려 고집한 그 자식이 어느 날 내 발목을 묶는 족쇄로 남아있음을 문득 알았을 때, 나는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자식이 내게 족쇄이듯 한 때의 나도 어머니를 묶은 올무 같은 존재였을까? 발등을 찍고 싶은 후회와 함께 나도 분명히 내 어머니에게 올무였겠다 는 뒤늦은 깨달음이 이마에다 인을 치듯 뜨끔하니 스쳤다. 깨달음은 그렇게 지독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인지 그때야 나는 진정으로 고집스러운 딸을 둔 어머니의 심정을 내 심정인 양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눈으로 아이 머리맡의 딸을 바라보노라니 내 발의 족쇄이던 딸도 이제는 저가 만든 족쇄에 스스로 묶여버린 것 같다.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거울 속에서 듯 딸에게서 읽는 일이란 진정 형벌이다. 서로 혈육이란 연결고리로 엮인 형벌이란 족쇄에 어머니도 나도, 이제는 딸까지 묶인 셈이었다.
‘어쩌라고 내가? 고집 세워 갔으면 잘 살아야지 날 더러 대체 어쩌라고?’
말없이 방바닥만 응시하고 있는 딸이 원망스러워도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사내한테 빠져 집 밖으로 돌며 내 심장을 찢어 놓더니 어느 날 저만큼이나 철딱서니 없어 보이던 사내 하나를 거느리고 부른 배를 한 채 집으로 온 딸이었다.
‘오빠랑 결혼할 거야.’
딸은 어미가 받을 충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거워 보이는 배를 부끄럼도 없이 내밀며 통고했었다.
할 말 다 못해 억장 무너질 지경이어도, 틀어막힌 듯 안 나오는 것이 말이었다. 그때도 나는 딸에게서 지나간 내 모습만 보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딸은 그간의 과정이야 어떠했든 뱃속에든, 업고서든 자식만 끼고 오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줄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자, 병원에. 지금도 늦지 않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듬직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사내를 앞에 두고 모진 말을 참지 않았다. 이미 때를 넘긴 배 모양 하며, 명색이 아비라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사내가 딸 옆에 앉아 있어도 내가 모진 말을 참지 않은 이유는 두 철딱서니의 앞날을 내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
내 말에 딸은 배를 감싸며 눈에 불을 켠 채 대들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사내는 딸의 어깨를 감쌌다.
‘아기랑 나 죽어 없어지면, 엄마 탓인 줄 알아!’
배를 감싼 채 이글거리는 눈빛을 날 향해 쏘아대던 딸은 어미가 눈앞에 있음에도 사내의 품에 파고들며 울었다. 그리고 그 옛날, 까무러친 어머니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남자를 따라나섰던 나처럼 다시는 볼 일 없다는 듯 매몰찬 뒷모습을 보이며 총총 그렇게 떠났다.
내가 그러했듯 처음 눈길을 준 사내에게 정을 주고, 그것이 온통 제 세상인 양 다른 것에는 곁눈질도 할 줄 모르던 고집스러운 딸의 허술하기 짝이 없던 시작이었으니 이러한 결과의 수 순은 이미 시작의 그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꼿꼿이 목을 세우고 바닥만 내려다보는 딸에게 집 나온 이유조차도 묻기 싫어서 나도 입을 다문 채 앉아 있다. 딸이 꼿꼿하던 고개를 수그려 자는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말없이 아이만 내려다보던 딸이 소리 없이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저 고집으로 혼자 버티자니 오죽이나 힘들까?’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잡념이 끓고 있어도 소리 내어 표현은 하지 않는 딸이 그 고집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 것 같다. 제 입으로 말하기 싫어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딸에게 나 또한 먼저 이유를 묻지 않고 버틴다. 마치 갉듯 버티며 그간에 있었을 전후 사정을 내가 묻지 않은 건 구태여 묻지 않아도 이유 같은 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단편은 2편으로 나눠 연재됩니다. 다음 편(하)에서 계속됩니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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