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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하)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08 2025 09:05 AM


  다툼의 이유가 늘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날 나는 남자를 떠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버텼었다. 워낙 허술한 시작이었으니 다툼의 요소는 갈피마다 함정처럼 숨겨져 있던 것이 그때의 내 삶이었다. 마치 어설프게 쌓은 장난감 블록처럼 어느 하나만 제 자리를 이탈해도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소지를 지닌 것이 내 울타리였는데, 비록 얼기설기 엮은 담장처럼 허술했어도 안간힘으로 버틴 건 실은 내가 외면한 어머니 때문이었다. 
  ‘날 밟고 가라!’
   어머니는 그때 사내를 앞세우고 집을 떠나려는 내 앞에서 그 말 한마디를 하며 정말 눈을 뒤집고 쓰러지셨다. 형제들의 자지러지는 외마디와 비난을 뒤로하고 이를 악문 채 남자를 따라나선 건 쓰러진 어머니를 돌아보면 그 남자를 영영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내 속의 위기감 때문이었다. 어머니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내가 붙잡았던 사람. 
  ‘네가 나한테 그럴 수는 없지.’
   그 남자가 저지른 외도였기에 정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매몰차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애는 두고 가!’
   가되 자식은 두고 가라던 남자는 자식을 두고 가면 결국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평소의 내 고집을 알기에 자식을 끼고 가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미 남자의 의중과 자식에 대한 내 마음을 꿰뚫고 있던 나는 갉듯 자는 애를 둘러업고 집을 나왔다. 다시는 남자가 있는 집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을 요량으로 나선 걸음이었다. 당연히 밟아야 할 절차를 거치고도, 죽고 못 산다는 사랑을 내세우고도 언제 어느 사이에 남남이 될지 모르는 함정은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 사실을 내가 깨달은 건 이미 모두에게 상처를 안길 만큼 안겨 도무지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곳까지 와 버린 나중이었다. 

  그렇게 모진 마음으로 집을 나왔으면서도 때로는 내 고집이 옳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은 건 자식에게 생떼같이 살아있는 아비를 없는 듯 여기게 하며 아비와의 관계를 단절하게 한 것 때문이었다. 내 고집이 아이에게 아비 없는 자식을 만든 셈이었다. 
  살면서 내가 뼈저리게 느낀 후회를 딸은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하는 것일까? 아이 쪽으로 휘어진 딸의 가녀린 목 줄기가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마구 찌른다.
   “어미가 그랬다고 너도 그래야 했니?”
   드러내 보아야 소용도 없을 말을 나는 아이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 딸에게 잔소리처럼 주절주절한다. 그래도 딸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릴 뿐 말이 없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딸은 여전히 아이만 내려다보고 있고 속을 뒤집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딸의 그 속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애당초부터 마땅찮았던 사내였지만 살지 않겠다고 할 때 내 어머니처럼 ‘오냐, 나랑 살자꾸나.’라며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단호히 돌려세워야 할지 얼른 판단은 할 수가 없다. 돌려세우자니 밤은 이미 너무 깊었고 받아들이자니 고단하던 지금까지의 내 삶이 차창 밖의 풍경처럼 스치기 때문이었다. 

   ‘인간 안 되려면 차라리 나가서 죽어라!’
   ‘그만 살 거야’라며 아이를 풀어놓던 내 앞에서 ‘같이 살자꾸나.’라며 날 받아주신 어머니였지만 실은 고집 세워 사내 따라 집을 나가려 했던 그때는 그렇게 뼈에 사무칠 말도 숨기지 않으셨다. 그 말을 해 놓고는 ‘차라리 날 밟고 가라.’며 혼절하셨다. 
  그때는 무슨 마음이었던지 그 사내만 있으면 어머니는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래서 ‘나가서 죽어라.’하고는 오히려 나가는 내 등 뒤에서 먼저 까무러치던 어머니를 두고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유유히 집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머니를 버리고 택한 그 사내를 떠나 어린 자식을 끼고 와 다시 어머니와 사는 일이란 겹겹이 족쇄를 끼고 사는 형국에, 다름 아니었다.

  고집 세워 어머니 곁으로 오긴 했지만, 가끔 정말 가끔, 버린 사내도 사내라고 생각이 나고 또 때로는 한눈을 팔았다고 두 말도 하지 않고 아이 둘러업고 뛰쳐나온 한때의 행동이 경솔하게도 여겨지면서 내가 힘들어한 적이 있었다. 
   ‘가자, 집으로. 나, 다시는 안 그런다.’ 
   딴 건 다 몰라도 어머니를 버리면서까지 택한 남자가 한눈을 판 건 용납할 수 없던 내 앞에서 보인 남자의 어설픈 외도. 섣부르게 내민 한쪽 발을 집안으로 미처 거둬들이기도 전에 아이부터 업고 어머니의 집으로 와 버린 내 앞에서 남자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었다. 
  한 눈 한 번 팔았다고 아이부터 업고 집을 나온 내 행동을 되돌아보고 있던 즈음이었으므로 아이 핑계하며 못 이긴 척 따라나설까 생각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처자식 두고 한눈팔다 뒤늦게 놀란 듯 무릎을 꿇은 남자의 모습이 한순간 비루하게 느껴지는데, 나는 도저히 남은 삶을 그 남자에게 걸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저 모습에 내 눈이 멀어 어머니까지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망하고 어이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날 밟고 가라.’던 어머니를 외면하면서까지 택한 남자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나 초라하게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사실에 대한 실망일 것이었다. 
  ‘모질다 당신, 쓰러지신 장모님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따라나설 때 이미 알아봤지만 이렇게까지 모진 줄은 정말 몰랐다. 애는 내놔!’
  그러나 사람에게 실망한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남자는 단지 돌이킬 줄 모르는 내 고집을 넌더리 낼뿐이었다. 
  몇 날 며칠 애원해도 꿈쩍 않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남자는 결국 제 자식을 한 번 안아보고는 그렇게 영영 찾지 않을 눈빛을 하며 떠났고, 그리고 딸과 나의 고행은 시작된 셈이었다. 
  사는 것이 몹시 버겁게 여겨지던 그때는 좀 더 냉정하게 돌려세우지 않고 ‘그래 살자꾸나.’라며 받아준 어머니까지 원망하면서 날 묶고 있는 족쇄를 힘겨워했다. 네 고집대로 했으니 너 알아서 하라며 내 눈에서 원망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어머니가 냉혹하게 날 돌려세웠다면 딸과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딸은 여태 자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고 나 또한 딸의 눈길이 가 있는 잠든 아이의 얼굴에다 시선을 준다. 어미가 어떠한 일로 가슴 쥐어뜯기는 고통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내처 잠만 자는 어린것의 높지 않은 코와 좁은 이마가 그대로 제 아비를 닮은 것, 같아 불쑥 화가 솟구친다. 그 얼굴이 마치 어린 제 처를 내보내고 태연하게 잠이라도 들었을지도 모를 그 작자의 얼굴 같아 얼른 아이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나는 일어나 장롱 속에서 이불을 꺼내 이미 펴놓은 내 이부자리 옆에다 하나를 더 폈다. 어쨌든 이 밤은 너무 늦은 것만 같다. ‘그래, 함께 살자꾸나.’라며 품 안에 두든, ‘네가 저지른 일, 네가 알아서 하라.’며 냉정히 돌려세우든 어쨌든 이 밤은 내 곁에서 재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마냥 아이만 내려다보고 있던 딸이 자는 아이를 둘러업기 시작한 건 내가 이부자리를 하나 더 펴놓고 맥 놓고 앉아 있는 딸에게 우선 잠이나 자자고 하려던 그때였다. 
   “나, 갈래!”
   “가? 어디로?”
   잠자는 아이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딸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 난 사람처럼 서두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뉘었다 둘러업었다 하는 어미의 손길이 성가셨던지 눈을 감은 잠결임에도 칭얼댄다. 
  놀라 묻는 내 말에 딸이 대답은 없이 서둘러 포대기 끈을 다잡아 매고는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제 어미보다 실한 머리를 얄팍한 등에 누이고 잠이 든 채였다.
   “왜 그래? 어딜 가려고?”
   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늦은 시간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내 집을 찾아왔던 조금 전처럼 내 가슴은 또다시 불규칙적으로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애 때문에...”
   어느 사이 현관의 신발을 꿰며 딸이 말했다. ‘안 산다며?’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받쳐 올랐지만 나는 묵묵히 딸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 ‘안 산다.’라고 했느냐는 듯 딸은 어느 사이 앞장서 문을 나서고 있었다. 딸은 등에다 저보다 실한 아이를 업고도 마치 경보라도 하듯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내 몸이 딸과 하나의 줄로 엮여 있기라도 한 듯 나 또한 갑자기 마음을 바꾼 딸의 뒤를 말없이 서둘러 따른다.
   달빛인지 가로 등 불빛인지 모를 빛이 깊은 밤임에도 우리를 앞서고 있다. 행여 어미에게 부담이라도 줄까 지레 염려한 탓일까?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이 만든 고집이 어미에게 기대는 삶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밤늦게 안 살겠다며 찾은 딸을 대하는 살갑지 않은 내 눈빛이 행여 갈 곳 없는 딸을 다시금 마음 붙일 수 없도록 밀어내기라도 했기 때문일까? 한 발 뒤 쳐져 뒤따라가며 나는 혼자 속으로 이런저런 딸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이미 버스는 끊어져 택시를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나, 아빠 없이 자란 거 싫었어.”
   경보하듯이 어지간히 빠르게 걷던 걸음의 속도를 늦춰 한숨을 돌리며 가로등 불빛이 환한 길을 타박타박 둘이 걷는데 두 손 돌려 아이의 엉덩이 위에다 손깍지를 낀 딸이 시선은 발끝에다 둔 채 말했다. 
  내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나의 고집이 딸에게는 아비 없는 설움이었다는 우회적 표현이었다.       
  마치 어깃장을 놓듯 늘 바깥으로 돌았을지언정, 어미 앞에선 제 아비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던 딸이었다. 내 집에서 금지된 유일한 언어인 듯 저나 나나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아비를 딸이 그리워했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내 고집이 만든 죄책감, 그러나 한편으로는‘너 하나만을 보고 살았다.’라는 자랑 아닌 자랑으로 아닌 척 덮어두기만 한 내 속의 고집을, 제 자식을 빌미로 딸이 하는 책망의 의미였다. 
  별안간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낚아채기라도 하는 듯 그 자리에 선 채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멈춰서자 딸도 그 자리에 서서 날 바라보았다. 달빛인지 가로 등불인지 모를 빛이 딸의 눈 속에서 서늘한 광채를 발했다. 멈춰 선 내 겨드랑과 목덜미 속으로 서늘한 광채가 한 자락 찬바람이 되어 스쳐 지나가며 머리털까지 곤두서는 한기를 느끼게 했다. 몸은 한기로 떨리는데 마치 치부라도 드러내 보이기라도 한 듯 내 두 볼은, 불 지핀 아궁이 앞이듯 화끈거린다. 내가 아무리 저 하나 바라보고 산 삶에다 가치를 부여하고자 해도 딸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었다. 
   붉어진 얼굴이 행여 불빛에 드러날까 내가 한 번 뺨을 쓸고는 다시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딸도 이내 발길을 재촉했다.
   돌부리도 없는 불 밝은 아스팔트 길임에도 나는 헛발이라도 디딘 듯 자꾸만 휘청거린다. 딸은 앞만 보고 걷고 있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딸을 따른다. 달빛인지 가로등 불인지 모를 빛이 딸과 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르고 있다. 
  여전히 눈길은 발끝에다 둔 채 아이 엉덩이 위에다 양손 깍지를 끼고 대낮인 듯 걷고 있는 딸을 따라가며 경황 중에도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철없다고 여긴 딸이, 죽을죄를 지었노라고 무릎을 꿇는 남자를 외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돌려보낸, 무너진 내 자존심만 생각했지, 아비를 생으로 잃어야 한 딸의 장래는 외면한 차갑고 매몰찬 어미 같지 않음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들어가 엄마. 애 딸린 여편네, 누가 어쩌겠어?”
   앞만 보고 걷던 딸이 눈길은 여전히 발끝에다 둔 채 갑자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낙 같은 말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겸연쩍은 웃음을 씨익 웃는다. 늦은 밤이라 택시로 바래다주려는 내 속마음을 딸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나 보았다. 
  어이가 없어 나도 마주 보며 피식 웃는다. 달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모를 빛이 둘 사이에 있었으므로 서로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거울 속의 날 보고 있는 것 같다. 딸과 날 구분하지도 못하는 저 거울은 어쩌면 이리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아빠 외면한 거, 엄마 잘못 아니야. 나도 살아 보니...”
  택시에 오르며 딸이 남긴 말이었다. 아마도 유일한 금지 언어였던 ‘아빠’를 거론한 것으로 행여 내 마음이 상했을까 하는, 이전에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딸의 살가움이었다. 아무 대꾸 하지 않은 채 내가 택시 문을 닫았다.

  혼자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안도의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 같으면서도 꼭 나라고도 할 수 없는 딸이다. 딸은 정말 나 같지 않은, 제 길을 갈 것인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딸을 볼 때마다 그 속에서 내 모습을 읽으며 느낀 형벌은 정말이지 이것으로 벗고 싶다. 이제부터 딸에게서는 딸의 모습만 보고 싶다. 
  ‘거울아, 거울아...’
  택시 꽁무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간절한 심정으로 중얼거리며 그렇게 길 위에 서 있었다. 달빛인지 가로 등불인지 모를 빛이 나와 함께 길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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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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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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