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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식해가 익는 시간 (상)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11 2025 09:11 AM
현관 벨이 울렸을 때 나는 급히 창문부터 열었다. 창을 열자 공원으로부터 바람이 밀고 들어왔다. 집안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냄새가 있었다.
현관문 밖에는 수아가 서 있었다. 수아는 어쩌면 내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시작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틈 사이로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 스트레스엔 같이 피우는 것이 약이라고 했더니 수아가 말했었다, ‘그러지 말아요, 언니. 힘들게 끊었는데.’라고.
“좀 심하지, 이 냄새?”
현관문 앞에 선 채 좀 큰 소리로 냄새부터 들먹였다. 수아가 몇 번 코를 킁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용 가방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잠시 가방에다 눈길을 주다가 이내 수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시선을 느낀 수아가 눈을 내리깔았다.
“앉아라, 수아야.”
따라온 가방에 대한 궁금증을 다스리며 나는 부엌으로 갔다. 가방을 현관 입구에다 세워둔 수아는 내가 책상 겸 식탁으로 쓰는 테이블에 가 의자를 뽑아내 앉았다.
“작업 중이었어요, 언니?”
컴퓨터의 커서가 내가 쓰고 있던 작품의 끝부분에서 여태 깜빡거리는 것을 보며 수아가 말했다.
“응.”
나는 수아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하고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왜 저렇게 상한 거야?’
그러나 끌고 온 가방에 대해, 상한 얼굴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졸졸 빠지는 연갈색 커피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앉아있던 수아가 창가로 갔다. 수아의 눈길이 가 있는 창밖 공원엔 송아지만 한 개를 앞세운 남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공원 때문에 언니는 이 집, 못 떠나실 거예요.’
수아는 내 집에 올 때마다 마치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인 듯 저 창가에 서서 탁 트인 공원 바라보기를 즐겨 했다.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던가, ‘넌 더 좋아하잖아.’ 하고.
오랜만에, 그것도 가방까지 앞세우고 내 집을 찾았으니 할 말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수아는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볼 뿐 말이 없고 나도 ‘저 가방은 뭐며, 네 얼굴은 왜 그렇게 상했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내가 묻지 않아도 조금 시간이 흐르면 수아는 스스로 속을 드러낼 것이고, 그것은 수아가 내 집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실은 수아가 통곡하며 들어선대도 ‘수아야, 왜? 하고 나는 묻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나는 수아의 그런 점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늘 기다린다.
‘언니는 나 같지 않아요.’
기다리는 일만큼은 저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수아가, 그래서 좋다는 뜻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지 모를 말을 언젠가 했었다.
실은 수아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참을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억지로 연다고 쉬이 열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을 뿐이란 것을, 기다리지 못해, 참지 못해 범한 오류는 이 나이가 되면 이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여서 그렇게 되풀이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참을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란 것을.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에 커턴 자락이 일렁인다. 나는 머그잔 두 개와 사각 유리그릇을 쟁반에 얹어 수아가 앉았던 책상 겸 식탁으로 들고 왔다.
“김치 담았어요, 언니?”
창에서 돌아서며 수아가 말했다. 유리그릇 속의 내용물이 붉어서 김치로 아는 것 같았다.
“알아 맞춰봐, 뭔지.”
김치를 못 알아볼 정도로 수아가 이 땅에 오래 살지는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내 속에서 사뭇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행 가방을 끌고 내 집으로 와야 했던 그 심정보다 통 속의 음식에다 수아의 관심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김치 아닌 것이 이렇게 고춧가루와 버무려질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내면 이 집안에 찬 정체 모를 냄새도 알게 될 것이란 묘한 표정으로 수아가 통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댔다.
‘가꾸면 눈길이 더 갈 얼굴인데...’
나는 어린아이 같은 수아의 표정을 보며 자신을 저리도 가꾸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 보았다. 마음을 늘 딴 곳에다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저 모습을 대해야 하는 푸른 눈의 심정도 짐작되었다.
“가자미식해 먹고 싶다고 했잖아.”
수아를 더 궁금하게 하기 싫어서 예사롭게 말했다.
“가자미식해예요?”
들고 있던 커피잔을 소리가 나게 놓으며 수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먹고 싶다고 간단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음식이 결코 아닌 줄 수아가 더 잘 알았다, 이곳은 가자미도 좁쌀도 없는 타국의 변방이므로. 마치 입덧하듯 당치도 않은 어떤 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먹고 싶어 정말 환장할 것 같아도 먹을 방법이 없어 더 미치는 곳, 안 되는 것은 안 될 수밖에 없는 땅이 이곳이었다.
“언니도 참,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수아가 타박 아닌 타박을 하며 짐짓 눈을 흘겨서 ‘나, 있는 거라곤 시간뿐이잖아.’ 하며 웃었다. 수아의 얼굴에도 이내 웃음이 번졌다.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웃음 번진 수아의 입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생각했다.
“참가자미여야 하는데 노르웨이 산이라나? 찬밥 더운밥 가릴 입장 아니었어.”
나는 수아의 얼굴에다 저 웃음기를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 표정까지 약간 뒤틀었다.
수아도 고개를 들어 깊게 날 바라보았다. 참가자미는 아니어도 가자미와 좁쌀을 구하기 위해 내가 장거리를 다녀와야 했다는 사실을, 저를 위해 낯선 음식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전화하지 않은 동안 가자미식해는 익었고 결국, 오래 소식 끊어서 미안하다는, 참으로 많은 말을 눈으로 하는 것 같았다.
수아는 내게로 준 눈길을 돌려 투명한 유리그릇을 통해 속을 들여다보다가 뚜껑을 열었다. 집안에 찬 냄새의 정체가 수아가 뚜껑을 여는 것과 동시에 다투듯이 쏟아져 나왔다.
“좀 심하지?”
그 콤콤하고 탑탑한 냄새가 내 탓인 듯이 내가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좁쌀과 잘게 썬 가자미, 무채가 붉은 양념과 어우러져 삭으면서 내는 냄새였다. 이미 형체 잃은 좁쌀은 무채와 가자미와 한데 어우러져 김장 속 같았다.
만들기는 수아를 위해서인데 난데없이 내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입에 침이 고이면서 식욕이 일었다. 잘 삭아 비린내도 가시고 좁쌀 냄새도 없는, 가자미가 입속에서 콤콤한 맛을 내며 졸깃하니 씹힐 것만 같았다. 만들어두고 수아가 올 때까지 기다린 가자미식해였다.
“가자미식해 만드는 법은 어떻게 알았어요, 언니?”
나는 입에 군침이 도는데 수아는 눈물이 그렁한 채 말했다. 코끝과 눈시울이 붉었다.
“내가 유년을 일본에서 보냈어. 거기서 함경도가 고향이시던 엄마가 가자미식해 담그실 때 어깨너머로 좀 봤지.”
장황하게 한 말은, 입맛이란 것이 그렇게까지 질기더란 의미였다. 그때 어렸던 내가 냄새 때문에 코부터 쥐면, 어머니는 기름기 자르르 흐르던 더운 흰밥 위에다 잘 익은 가자미식해를 듬뿍 얹어 먹으며 말했었다, ‘이제야 살갔구나 야.’하고. 함경도의 딸은 일본에서, 일본에서 자란 딸은 북미주 어느 곳에서 가자미식해를 담은 것이었다, 그것도 귀밑머리가 허연 이 나이에.
그런데 그때 수아는 왜 난데없이 가자미식해 생각이 났던 것일까? 자주 먹은 음식도 아니었을 것이고, 집에서 만들어 본 적도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 내 어머니처럼 수아 어머니가 함경도에 고향을 둔 분도 아니고 수아는 가자미식해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도 본 적 없다고 했었다.
‘가자미식해가 있던 식탁에의 기억 때문일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식욕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어느 날 불쑥 솟구치면 유치하도록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본능, 그 기억이 깊은 곳에 파편처럼 묻혀있다면 더욱.
‘가자미식해가 먹고 싶어, 언니.’
수아가 가자미식해를 처음 말한 것도 내 집에서였다. 그때 수아는, 낯선 곳에서 푸른 눈과의 삶에 마음 붙이지 못해 삭정이처럼 마르는 것이 만날 때마다 내 눈에 보였었다.
‘가자미식해라고 했니?’
그때 난데없던 낯선 음식 타령에, 마음 붙이지 못해 마르는 것이 아니라 입덧 때문이었구나, 하고 생각을 고쳤었다. 눈이 푸를 아이도 뱃속에서는 가자미식해를 찾는 것이 신기해 혼자 속으로 웃었다, 알고 보니 입덧도 아니었지만.
그때 수아가 말했었다, 첫 남편에게서 아이 가졌을 때 가자미식해로 입덧을 다스렸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던가, ‘바닷가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했어요, 그이가. 우리 수아가 해물을 좋아해. 라고.’
목에 넘긴 것은 모두 게워내던 아내를 지켜본 수아의 그이는 입맛 돌아오게 할 싱싱한 해물을 부탁했는데, 그 친구는 가자미식해를 함께 보내며 ‘원래 엉뚱한 것이 입에 당기기도 하는 것이 입덧이야.’라고 했다지 아마. 수아의 그이는 수아가 좋아한다고 냉장고에서 가자미식해가 떨어지지 않게 했었다고, 그것이 겨우 두 해 동안이었다고, 수아가 흐느끼며 말했었다.
수아가 가자미식해를 먹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가자미식해를 먹었던 그 기억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서야 알 수 있었다. 가자미식해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 다 게워내면서도 그것은 게걸스럽게 퍼먹었던 그때의 그 입덧. 몸은 고달팠어도 모두가 살아 있던 때였으므로 생명감으로 넘치던 때이기도 했으리라. 뱃속의 생명과, 건강하던 두 해 동안의 남편과의 삶의 희열로 충만하던 때의 그리움이 가자미식해로 떠올랐을 터였다. ‘입덧이 원래 그토록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면, 품은 생명을 낳을 때까지 입덧하고 싶었는데, 그 생명은 세상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수아는 울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제 방법으로 달랬을 파란 눈의 남자 앞에서 한꺼번에 밀려온 그리움의 실체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수아는 가자미식해를 떠올렸으리라. 가자미식해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푸른 눈은, 그래서 더 난감했으리라.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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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전체 댓글
Sarahh ( hahnsa**@yahoo.ca )
Aug, 11, 04:03 PM Reply잘 읽었습니다. 저는 가자미식해를 만들어 주시던 엄마, 가자미 식해를 알려주신 아버지 그리고 그것을 맛나게 먹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