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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대, 노인의 바로 어제였다!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Sep 04 2025 08:19 AM
‘늙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
마치 노인들의 수칙(守則)처럼 떠도는 이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해서 노인이나 젊은이나, 왜 꼭 그래야만 해?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다. 대개의 노인들은 쓴 입맛 다시며 그렇지 뭐, 하고 수긍하는 기색을 띈다. 젊은이들은 머쓱했다가 받아들이고,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굳힌다. 머쓱한 것은 노인들의 태도가 진정한 수긍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어쩔 수없이 포기하는 심정으로 수용(受容)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노인들 자신만이 아니라 젊은이들도 안다는 의미다. 알면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노인들의 소극적인 행위와, 은근슬쩍 받아들이는 젊은이들로 인하여 사회적 경향이 되고 현실의 룰이 되어버린 셈이다.
카톡이나 공공 인터넷에 마구 생각 없이 퍼 날라진다. 그러는 사이, 현실적으로 하나의 경향이 되고, 노인수칙처럼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현상이 되어버린 분위기가 조성되어 안타깝다.
자조적(自嘲的)임을 실감하면서도 만들어버린 경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밥값은 내되, 입은 다물고 있으라니, 이런 불평등이 어디 있는가. 젊은 세대들에게 치우친 이기적인 발상이다.
반대로 젊은이들에게 묻자.
“밥값은 젊은 그대들이 내고,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존중하라!”
사회교육이 이렇게 되어야하지 않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나를 되레 세상물정 모르는 완고한 고집불통으로 몰아간다.
그 이기적인 생각이 처음엔 어색하지만 자주 듣다보니 그러려니 하며 물들고 그것이 관습이 되어버린다. 일종의 사회적 세뇌(洗腦)이다. 그런 식으로 노인들을 반강제로 수긍하게 하는 그 말에 앞서 젊은 세대들이 각성할 수 있는 사회적 교육을 먼저 시켜야하지 않을까?
나치의 선동부장 답게 ‘큰 거짓말을 반복하라 (The Big Lie)’고 한 궤벨스(Joseph Goebbels)까지 끌어다 대지 않아도 ‘말대로 된다’는 우리말도 있다.
1980년대 전후, 내가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할 때였다. 국산품애용, 한글전용, 근검절약, 식생활개선 등 사회전반에 걸친 계몽운동이 주력운동이었다. 그 무렵 각 구청마다 동사무소들이 새 건물로 다시 지어지곤 했는데, 언제나 ‘어린이집’이 부속으로 딸려 지어졌고, 도서관도 더러 생기기 시작했다. 동네방네 골목골목에 ‘어린이 집’과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운동장들이 많이 생겼다. 도서관은 주로 중고등학생들 차지이고 어린이집이나 놀이터들은 당연히 어린이들 차지였다.

언스플래쉬
나는 이의(異意)를 제기(提起)했다.
어린이들이 나라의 기둥!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경로(敬老)와 효(孝)를 중요이데올로기로 갖고, 소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입마다 달고 있는 사회에서 경로시설보다 어린이 시설을 우선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어린이 시설에 앞서 노인을 위한 위락시설이 먼저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건의도 했다. 그런 나의 의견은 돌출취급을 받았고, 미력해서 모기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멈추지 않았다. 수긍하면서도 선 듯 따라나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이 바로 대중(大衆)이다. 수긍하면서도 끌려가는 것 그것이 곧 대중심리(大衆心理)이다. 대개의 대중(大衆)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된 일반적인 경향이나 다수의 의견에 젖어 미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의견이나 주장도 없이 휩쓸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곧 사회적 세뇌이기도 하고, 앎의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겨우 ‘양로당(養老堂)’이라고 하는 노인 시설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때의 작은 외침들이 오늘의 노인시설의 원조이고, 노인 단체의 시동(始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령화 시대가 되었다. 노인의 숫자가 늘어나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금 노인문제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급속한 세태변화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고(思考)도 지향하는 방향도 달라졌다.
‘늙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
달라진 세태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그 말은 껄끄럽다. 알게 모르게 스며서 사회적 가치관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 말에 스스로 세뇌되고, 경향이 되고 틀이 되어버린 현실이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사회교육의 무서움이다.
나 젊었을 적, 경로당(敬老堂) 대신 어린이집을 짓던 그 행태를, 아무 의식 없이 받아들여버리는 식의 ‘의견 없음’ 혹은 ‘주장하지 않음’이 오늘의 현상을 빚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다.
젊은 그대들이여, 그대들에게 ‘노인을 위하여 지갑은 열고 입은 다물라!’고 한다면 그대들은 어찌 하겠는가? 그대들의 답이 궁금하다.
밥값은 젊은 그대들이 내고, 노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그것이 곧 사회질서의 순리이고 예의이다.
지금 젊은 그대의 모습이 노인들의 바로 어제였음을 아시는가?♠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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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