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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진 의도 토론하는 獨 학생들
“정치 배우는 건 당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08 2025 03:02 PM
독일의 교실
"저는 토론하는 수업이 편하고 좋아요. 어른이 되면 직접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되잖아요. 학교에서 연습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5월 20일 오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위치한 마리퀴리 김나지움(독일 인문계 중·고등학교 과정). 토론 수업을 막 마친 남학생 에밀 퓐프스튀크(17)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기자 앞으로 먼저 의자를 끌고 와 적극적인 태도로 답변하는 것만 해도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위치한 마리퀴리 김나지움에서 10학년 학생들이 정치 과목 수업에 참여해 의견을 말하기 위해 손을 드는 모습. 이날 수업에선 미 워싱턴포스트와 독일 연방군이 촬영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사진의 관점을 비교·분석했다. 브란덴부르크=최은서 기자
이날 10학년(한국의 고교 1학년) 20여 명이 모인 학급의 수업 주제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사진 분석'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사진을 분석해보는 수업으로, 교실 앞 큰 모니터 화면에는 각각 독일 연방군, 워싱턴포스트발 사진이 나란히 띄워졌다.
뤼디거 베커 정치 교사는 조별로 학생 4, 5명씩을 나눠 앉히고, 5분간 각자 배정받은 사진 한 장을 나름대로 분석한 다음 그 내용을 조원들과 공유하도록 했다. 교실은 학생들이 열띠게 의견을 나누는 소리로 금세 시끄러워졌다.
토의가 끝나자 조별로 교실 앞에 나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연방군발 사진을 맡은 조에 주어진 사진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전진 중인 우크라이나 탱크 사진, 단체로 모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군복과 무기를 갖추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 등이었다. 초반엔 주로 "큰 탱크가 돌진하고 있다" "단체사진은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등 장면 자체를 묘사하는 단순한 분석이 나왔다.
인상적인 건 그다음부터였다. 베커 교사가 "독일 연방군 사진에서 어떤 의도가 보이느냐"고 묻자 학생들은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었다. 한 학생이 "탱크 사진은 군대의 권력과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강인해 보이는 단체사진을 통해 우크라이나에도 승전의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사진을 맡은 조도 마찬가지 순서로 논의가 진전됐다. 참담한 표정을 짓는 전쟁 피란민의 모습, 폐허가 된 마을과 칙칙한 회색빛 하늘의 모습이 담긴 사진 구석구석을 묘사하던 학생들은 이내 "독일 연방군과 달리 워싱턴포스트는 전쟁의 우울함과 슬픔을 강조하고 있다"는 분석에 도달했다.
베커 교사는 끝으로 둘 중 어떤 관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떤 학생은 "우크라이나가 강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할 수 있으니 독일 연방군 사진이 더 적절하다"고 답했고, 또 다른 학생은 "워싱턴포스트 사진이 전쟁 참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줘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시각이 편향되지 않으려면 두 관점 모두 필요하다"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교사도 학생도, 어떤 의견이 정답이라고 확정 짓지 않은 채 수업이 마무리됐다.
"학생이 정치에 대해 판단하도록 돕는 게 공교육의 역할"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마리퀴리 김나지움에서 진행된 토론형 정치 수업에서 베커 교사가 10학년 학생들의 토의를 돕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최은서 기자
이날 이뤄진 토론형 시민교육은 독일 공교육에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수업 형태다. 1976년 채택된 이래 현재까지 독일 시민·정치교육의 제1 원칙으로 적용되는 '보이텔스바흐 원칙' 덕이다.
△주입 금지(교사가 정치적 입장을 학생에게 강요해선 안 됨) △논쟁성의 원칙(사회·학문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함) △자기 이익 판단 능력 강화(교육의 목적은 학생이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행동하도록 판단력을 키우는 것)를 말한다.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즉 서민이 고소득층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등의 계층 배반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점이 눈에 띈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교권을 보호하는 기능도 한다. 수업에서 정치 주제를 다뤘단 이유로 민원이 들어오진 않는지 묻자, 또 다른 정치 교사인 윌리엄 슈탈은 당연하다는 듯 "그런 일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학부모들도 학생이 수업에서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배우고 그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게 공교육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독일의 주 단위로 배포되는 교육 커리큘럼엔 "정치 수업에는 분석 및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그 자체로 교사의 수업권이 보장된다. 독일 헌법상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전파할 권리'가 명시된 점도 마찬가지다.
토론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토마스 마이네케 교장은 "수업뿐만 아니라 AFD(독일의 유명 극우 정당)나 좌파당 등 다양한 정당 정치인을 학교로 섭외해 토론을 한다"며 "그때 학생들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토론에 참여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교육 정책, 전쟁에 대해 대화... 두렵지 않아요"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마리퀴리 김나지움의 10학년 대상 토론형 정치 수업에서 한 학생이 발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최은서 기자
학생들 역시 토론형 시민교육을 통해 실생활에서 효과를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업에 적극 참여한 헬레네 에어케(16)는 "매일 듣는 뉴스지만 미디어 속 정보는 너무 광범위해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다"며 "이런 수업을 듣고 나면 요약도 되고 뉴스가 더 잘 이해된다"고 말했다.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과 적극성도 커진다. 퓐프스튀크는 "평소 친구들과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정말 많이 얘기한다"며 "요즘은 학교 교육 정책이나 전쟁 문제같이 우리 일상과 직접 연관된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고 말했다. 마라 토노(16)는 "모든 학생이 수업에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잘 모르더라도 선생님이 함께 논의하도록 도와주니 두렵지 않다"고 했다.
역사인식을 제대로 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간 받았던 시민교육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을 묻자 퓐프스튀크는 "나치에 대한 역사를 배웠을 때"라고 즉답했다. 그러더니 스스로 부연했다. "민주주의가 언제든 공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학교에서 배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브란덴부르크=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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