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플랫폼 (중)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Sep 11 2025 09:14 AM
오랜만에 달게 잠잤다. 역에서 내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에게 남편은 없는 것일까?
‘12살 딸과 남편을 두고 왔어요. 여기 나오느라 돈 많이 썼어요’
파리 민박집에서 부엌일을 하던 조선족 여자는 지갑 속에 꽂힌 갸름한 얼굴의 딸 사진을 보여주며, 그래서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여주던 여자의 표정은 행여 눈물 울이라도 떨어뜨릴까 아슬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나와는 달리, 떠나온 지 2년이 되다 보니 체념하고 산다며 오히려, 담담했었다.
테레미니 역에 숙박할 사람을 호객하러 간 그녀도 고향에다 자식과 남편을 두고 온 것일까. 아무리 집안을 훑어보아도 지금은 장거리 여행으로 깊은 잠에 빠진 다른 방의 배낭 객 한 사람 외에는 가족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잘 있을까? 보고 싶다며 애처럼 울던 아내에게 가지 않고 엉뚱한 곳에 와 테레미니 역에 나간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이 어이없었다.
그런데 왜 인지 이번 방학엔 자식들이 있고 아내가 있는 곳이지만 나는, 캐나다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어쩐지 가면 오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다시 나 혼자 사는 서울의 원룸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아내와 자식을 그곳에다 두고 나는 이렇게 다녀도 되는가. 하던 일도, 식구들 염려도 잠시 접고 방학 동안만이라도 자유롭겠다며 로마에 와 있지만 실은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푹 잤어요? 늦었지만 저녁 좀 드세요.”
단잠에서 깨어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언제 들어 왔는지 바깥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베네치아에서 왔다던 그래서 잠이 들었다던 손님도 깼나 보았다. 나는 로마나 다른 곳을 여행하고 온 건넌 방 사람에게 정보도 들을 겸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어머, 깨셨어요?”
손님이 없었던지 여자는 금방 잠자리에서 빠져나온 듯한 20대로 보이는 남자와 얘기하다 날 향해 웃었다.
“손님이 없었나 보죠?.”
내가 싱긋 웃으며 여자를 향해 말하자 ‘없을 때가 더 많은걸요’ 하며 날 향해 다시 미소 지었다. 조금 가까이서 보니 작은 흰 얼굴이 캐나다에 있는 아내보다는 좀 더 어려 보이는 것 같았다.
“베네치아에서 오셨다구요? 어떠습디까 그곳은?”
헛걸음하고 역에서 돌아와 쓸쓸히 웃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뭔가 말을 더하는 것이 오히려 여자를 난처하게 할 것 같아 나는 소파에 앉으며 식사하는 베네치아에서 왔다는 청년을 향해 말했다.
“온통 물이던걸요. 도로도 골목도 시퍼런 물, 물 택시, 물 버스, 곤돌라... 그냥 물 천진데, 심란했어요. 출렁이는 시퍼런 물만 보이니까, 좀 더 있다가는 물속에 뛰어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은 볼만했어요.”
“심란했다..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온통 물이었다면.”
하다 보니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어서 나는 역에서 혼자 돌아온 여자를 의식하며 말을 줄였다. 웃고는 있어도 손님 없이 헛걸음한 심정을 의식했다.
“차 한 잔 드시겠어요? 커피가 있어요.”
이런저런 정보나 듣자며 나온 날 향해 여자가 말하자 ‘좋습니다.’라며 청년이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여자는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자신의 몫까지 커피잔을 들고 왔다. 청년이 커피잔을 들고 건너편 소파에 앉자 여자는 식탁의 의자를 돌려 앉았다.
“사촌과 심양에서 왔어요. 딸하고 남편은 그곳에 있죠.”
‘혼자 일하시나 보죠?’란 내 말에 처음엔 로마의 중국 집에서 아기를 보는 일을 하다 모은 돈으로 사촌과 함께 민박집을 운영하다가 서로 독립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딸이 보고 싶지만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못 오니까 돈 벌 때까지 참아야 해요. 사실은 로마보다 서울엘 가고 싶었는데, 덜 낯설 것 같아서요.”
여자는 얘기하는 도중 내내 시선을 커피잔 속에다 빠뜨리고 있었다.
‘서울이 싫어 자식들 데리고 캐나다로 떠난 사람도 있는데 서울에 가고 싶다니...’
나는 여자의 말을 들으며 나 혼자 살도록 원룸에 들어갈 수 있는 짐만 남겨두고 떠난 아내를 또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간 저축한 돈과 집을 판 돈을 모아 원룸 하나를 얻어놓고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는 떠났다. 그 돈에다 꼬박꼬박 내 월급까지 송금해도 아내는 언제나 생활이 빠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돈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내는 언제나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뭐.’라며 얼버무리곤 했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이해는 하면서도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모두 아내가 아이들 교육을 이유로 고집한 아내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식구들이 떠나고 책과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내가 남겨졌을 때 나는, 어쩐지 돈 벌 의무만 짊어진 채 혼자 버림받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뭐하나 싶은 자괴감이 나를 견딜 수 없도록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래도 그들을 위해 아직은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에 위안받곤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감당하기 위한 나 자신을 향한 최면이었는지도 몰랐다.
“아이 아버지를 두고 왜 아주머니께서...”
나는 가족을 두고 여자 혼자 몸으로 낯선 곳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내 놓았다. 여자가 잠시 날 바라보았다.
“중국에서는 돈 버는 일에 남녀 구분을 두지 않아요. 힘들긴 해도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돈을 좀 벌 수 있고요.”
여자가 날 바라보던 눈길에 힘을 주며 단호히 말했다. 작은 체구 어디에 그런 당찬 용기가 들어있었던 것일까? 나는 여자의 얼굴 위로 날 두고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나던 아내의 얼굴을 그려보고 있었다.
“스위스에 갔다가 오스트리아까지 들렀다 올까 해요. 어차피 로마에서 아웃 하려면 다시 와야 하니까 무거운 건 두고 갈게요.”
간밤에 좀 늦도록 얘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 로마 시내 관광을 위해 지도를 챙기고 있는데, 청년이 벌써 현관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스위스며 오스트리아를 이웃 동네에 가듯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청년을 나는 이곳이 유럽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저 없는 동안에 손님이 좀 많아야 할 텐데, 다녀올게요, 아주머니.”
마치 정든 하숙집을 떠나듯 여자를 염려하며 떠나는 청년을 여자가 조용히 웃으며 배웅하고, 나도 여자를 혼자 남겨두고 집을 나서려 했다. 약속한 곳도, 시간의 제약도 없기에 나는 서두를 것 없다는 듯 목에다 작은 가방만 지닌 채 신발 끈을 매고 있었다.
“가족은 어떡하고 혼자 오셨어요?”
내가 하는 모습을 등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며 여자가 한 말이었다. 신발 끈 매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자의 표정이 어쩐지 나까지 나가버리면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느껴졌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미 다잡아 맨 한쪽 신발 끈을 도로 풀고는 소파로 와 앉았다. 여자 혼자 몸으로 로마까지 와 민박집을 운영하는 것이 내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는데, 학생도 아닌 중년의 남자가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는 것도 그녀를 적잖게 궁금하게 했나 보았다.
“거짓말하고 왔죠. 학회에 참석한다고 하고...”
내가 짐짓 웃어 보이며 말했다.
“거짓말이요? 거짓말하고 이 먼 곳으로 오셨다고요?”
여자의 눈이 동전 같았다. 조그마한 여자의 얼굴이 온통 눈으로만 채워진 것 같았다.
“예, 거짓말이요. 아이들과 아내는 지금도 내가 학회에 참석하고 있는 줄 알아요.”
나는 농담처럼 여전히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여자가 건너편 소파를 두고 식탁으로 가더니 의자를 돌려 날 향해 앉았다.
“차라리 여행하신다고 말을 하고 오시지 왜 거짓말을?”
여자가 실망과 호기심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실은 캐나다에 가 있어요, 아이들 공부 때문에. 이번엔 내키지 않았어요. 가면 못 올 것 같은, 그러니까 처자식 두고 혼자 서울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죠. 몇 년 되었거든요.“
내가 좀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도 헤어져 사시는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거짓말 한 건 사실이니까요.”
내가 다시 장난스레 말했다. 청년도 스위스로 떠났고 집안에 여자와 둘 뿐인 분위기에서 나는 더 이상 심각한 분위기로 얘기를 끌고 갈 수 없었다.
“한국에 돈 벌러 갔다가 부자는 됐지만, 파탄된 가정이 더러 있어요. 돈 때문에 와 있지만 가끔 두려워요.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여자는 내게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겠다고 아내가 말했을 때, 나는 아내를 향해 그렇게 말했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낯선 땅에 아내와 아이들만 달랑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함께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말 없음이 내심 섭섭했지만, 나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 또한 아무 문제가 없는 내 직장을 아이들 때문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떨어져 살면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두려워한 것은 가족 관계였다. 아이들 장래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 땅에서 돈을 벌어야 했고, 외로움도 불편도, 그리고 두려움도 참아야 했다. 나는 주어진 현실을 함구한 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 공부 때문에, 돈 때문에 캐나다로 로마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 여자는 내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