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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로 볼 것인가, 예술로 볼 것인가

비앙카 보스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26 2025 04:32 PM

뉴욕 현대 미술계 잠입 저널리스트 갤러리 직원·미술가 조수 등 일하며 미술의 가치 이해하려 수년간 분투 부조리하고 폐쇄적인 면모 있지만 아름다움 깨닫게 하는 세계의 기록 ‘유난히 비싼 작품’ 답 찾기는 난망


이탈리아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이라는 작품이 있다. 지난해 11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620만 달러(약 86억3,500만 원)에 팔렸다. 이 작품이 2023년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됐는데, 관람객이 먹어 치우는 일이 벌어졌다. 작품이 바나나 한 개를 은색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인 것이라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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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설치미술 작품 '코미디언'. 소더비 경매 공식 웹사이트 캡처

 

미술관 측은 즉시 신선한 바나나로 교체하고, 해당 관람객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전시를 계속했다. 카텔란은 이 소식을 듣고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바나나 자체가 아니라,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인 아이디어라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아이디어가 ‘왜’ 무려 86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신간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바로 그 ‘왜’를 이해하려는 수년간 분투의 기록이다. 저자 비앙카 보스커는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다. 보스커는 자기 장기를 살려 천문학적 돈이 오가지만, 불투명하고 극히 폐쇄적인 뉴욕 현대 미술계에 침투(?)한다. 브루클린 작은 갤러리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작품 판매, 전시회 큐레이터, 미술가 조수, 구겐하임 미술관 경비원 등으로 일하며 업계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 행위 예술가를 이해하기 위해 본인 얼굴을 예술가의 엉덩이 방석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예상 못 할 모험들이 이어져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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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미국 작가 리처드 프린스의 '허리케인 간호사'. 해당 작품은 최고 721만3,000달러(약 100억 원)로 추정됐다. 런던=AFP 연합뉴스

 

 

보스커는 초기 취재원을 구하려던 시기에 대해 “마치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마피아 면접을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업계 관계자들 태도가 적대적이었다는 점에서 한글 번역판 제목에 쓰인 ‘스파이’라는 표현이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왜 그렇게 적대적이었을까.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폐쇄적이고 부조리투성이지만, 그래도 고상한 소명을 추구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미술계를 ‘사기’로 결론 낼 것이라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그가 경험한 뉴욕 현대 미술계는 소문과 사소한 질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등학교’와 다름없었다. 또 미술 작품 판매를 ‘팔리다(buy)’가 아니라 ‘놓이다(place)’라고 표현하는 등 수많은 은어와 괴상한 단어 사용 등을 통한 집단 폐쇄성 강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예술 자체에 별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 예술품 구매자는 작품 자체가 아닌 작가의 경력과 인맥에 더 관심을 쏟는다. 갤러리 직원은 작품을 설명하면서 “그 작가가 훨씬 더 유명한 예술가와 사귀고 있다”고 강조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의도가 현대 미술계의 위선 폭로라고 판단한다면 성급하다. 보스커는 업계에서 뒹굴며 현대 미술에 매료된다. 붓에 미친 너드들, 색깔 광인들, 안목을 보유한 자들, 머리통(무명의 작품을 발굴하는 결정권자)들, 예술가의 광팬들과 함께 어울리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뇌가 포식자의 위험을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해 현실을 작은 방울로 압축하는 엔진으로 진화했지만, 예술적 본능은 쓰레기 분쇄 압축기 같은 뇌 작용을 거꾸로 돌려 현미경을 통해 현실에서 더 많은 것을 알아채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뇌를 압축기에서 현미경으로 되돌리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그냥 작품에 다가가서 작품이 보여 주는 적어도 다섯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보스커는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이제 나는 그것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보스커가 답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 하나가 도출된다. 아름다움은 감상자가 스스로(또는 제멋대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면, 이는 특정 작품이 다른 작품에 비해 더 아름답거나 깊은 의미를 지녔다는 객관적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 작품이 다른 작품에 비해 그렇게 비쌀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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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비앙카 보스커 지음·오윤성 옮김·알에이치코리아 발행·480쪽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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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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