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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오피니언

방향전환 (중)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Sep 18 2025 08:32 AM


  노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아내에게 나비와 비교되어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나도 눈치로 꿰뚫어 알고 있었다. 나는 평소 직접 적인 표현보다 빙 둘러 변죽을 울리는 듯한 아내의 이러한 말의 습관을 참 싫어했다.  마땅찮으면 차라리 어머니처럼 화투판에다 부엌칼이라도 내리꽂으며 손등이라도 내밀던가, 어떻게 하나 두고보자는 듯 잠자코 있다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독한 말로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아내의 방법, 나는 그것을 아주 싫어했다. 비록 좋지 않은 운 때문에 지금까지 재미를 본 것 이상으로 많은 금액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긴 했지만, 내게 있어 그 일은 어디까지나 신성한 노동 , 그것도 정신과 육체의 노동이었다. 아내의 말처럼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결과는 과정의 산물이 아닌가? 
  사실 내 손끝의 감각과 직감의 발달도 오랫동안 갈고 닦은 내 정신과 육체 적 노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쩌다 운이 따르지 않아 큰돈의 손실을 안긴 했지만 운명의 여신도 가끔 한눈을 팔기도 하는 법, 이제 한창 무르익어 가는 내 솜씨가 아내의 짧은 경고 성 발언으로 지레 주눅들 필요는 없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실전에서 쌓은 경험이 얼마이며 투자한 시간과 돈이  얼만데 가장 중요한 때에 손을 떼라니 그것은 내 손가락을 자르라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평소 말을 아끼던 아내가 던진 이 번의 짧은 말을 결코 만만하게 들어 넘길 수가 없는 나는 아이에게 쫓기는 눈앞의 나비 한 마리로도 가슴은 이렇게 벌렁대고 마음은 안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손길을 피해 흐드러지게 핀 꽃 위로 날았다 앉았다 하는 호랑나비를 바라보며  초조해 한 건 어쩌면 아내의 비아냥이 섞인 그 말과 화면 속의 처참하던 그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돈이 있으면 투기와 도박성이 있는 놀이에다 쓰기를 즐겨하고,  여자를 곁눈질하기를 좋아하는 나를 두고 입버릇처럼 하던 아내의 경고가 말의 씨앗이 되어 그야말로 사마귀에 의해 찢겨지던 호랑나비의 말로처럼 나 또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처참한 끝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열심히 일을 해서 일한 만큼 보수를 받고 가진 것만큼 먹고살기를 원하는, 지극히 성실하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아내와는 달리 나는 언제나 조급했다. 지닌 것을 투자해 단시일에 결과를 보고, 번만큼 쓰기를 즐겨했다. 꾸준히 일을 해 받은 것으로 사는 지루한 방법은 내게 맞지 않았다. 더구나 적금을 넣듯 오랜 기간을 두고 돈을 모으는 방법은 내가 가장 꺼려하는 방법이었다. 내 조급한 성격은 그래서 즉석에서 긁어 금방 결과를 얻는 복권을 사게 하고 경마장 주변을 배회하게 하는가 하면, 단기 차액을 노리는 주식에 연연해하도록 했다.

  몇 번 긴장의 침을 삼키는 짧은 순간에 승패가 판가름 나는 게임, 내가 딜러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지던 금액의 돈을 걸고 불랙 잭을 시도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쥐는 것에 재미를 들인 나는 그 돈을 말초신경이 즐거운 쾌락에 쓰기를 또한 주저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번 돈은 짧은 시간에 미련 없이 써야했다. 물이 고이면 썩듯 돈도 모았을 때 소비를 하지 않으면 돈이 썩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그것에 사로잡혀 물처럼 썩게 된다는 것이 나의 경제관념 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나를 믿지 못했다. 
  ‘당신이 불안해.’
  놀음판에서 밤새우느라 핏발 선 눈을 하고 개기름 흐르는 얼굴로 아내 앞에다 돈 다발을 던지면서 그것으로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흐뭇하게 잠 속으로 빠져드는 내게 아내는 수시로 찬물을 끼얹곤 했다. 아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는 내가 즐기는 방법 즉 손끝에 감지되는 짜릿한 찰나의 쾌락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인생은 어차피 도박이 아닌가? 도박이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란 것이 도박에 대해 내가 내린 정의였다. 구태여 좀 더 의미를 부여한다면 짧은 순간에 고도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정신적인 노동이라고나 할까? 아내는 땀 흘려 성실하게 벌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내 방법 역시 노력 없이 되는 일이 아니란 사실을 들며 나는 아내의 잔소리 같은 충고가 있을 때마다 반박하곤 했다. 더구나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눈앞에서 빠르게 해결되는  디지털 시대에 굳이 돈을 벌고 쓰는 방법에 있어서만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돈이 쏟아져 나오는 슬럿머쉰, 눈앞에서 확인되는 즉석 복권, 경마와 잘 쥔 몇 장의 화투장은 구태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 끝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마이다스 왕의 손이듯 내 손이 닿는 것은 모두 돈으로 변했다. 시간은 금이라는 황금률을 내가 중요하게 여긴다면, 방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내와 나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방법에 치우쳐 시간 귀한 줄은 잊고 있는 것 같은 아내가 나는 언제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아내대로 순간적인 결과에 탐닉한다며 항상 나를 불안해했다.

  ‘당신이 이거 알아, 단 것만 찾아다니는 나비 같다는 거?’
  그 날 TV 프로를 본 후 아내는 툭하면 나비와 꿀을 들먹이며 내게 잔소리를 했고, 나는 내심 사마귀에 의해 무참히 잡아 막히던 호랑나비를 떠올리며 섬뜩해 하면서도 아내의 그 말을 귓전으로 흘릴 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끝을 보고 싶은 거야?’
  아내는 내 속의 조급증도 알고 있었다. 하긴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아내는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떤 끝’이란 아내의 말은 자주 내 명치끝에 걸리며  신경이 쓰이게 했다. 남자가 하는 사업에 초를 쳐도 분수가 있지 아무리 못마땅하기로 잘못 되라고 고사라도 지내고 있듯이  ‘어떤 끝’이라니? 어떤 끝이란 아내 말의 뉘앙스는 평소 내가 즐겨 쓰는 ‘끗 발’ 이란 말의 의미와 분명 달랐다. 
  ‘나 혼자 잘 살자고 하는 일이야? 잘 하라고 고사는 못 지낼망정 여편네가.....’
  마치 듣지 않아야 할 저주의 말이라도 들은 듯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소리라도 지르면 어이없다는 듯 아내는 날 쳐다보곤 했다.  아내의 잔소리 같은 충고에 느긋하던 내가  발끈하여 삼킬 듯 아내를 째려보며 소리치는 건 어쩌면 두려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치 내 단짝인양 지금까지 잘 따라주던 행운의 여신이 아내의 그 한마디에 그대로 날 외면해 버릴 것 같은 내 속의 두려움. 그것은 아내의 말처럼 온 몸으로 땀 흘리며  흘린 땀의 무게만큼 얻는 수확이 아닌,  손 끝의 감각, 순간적인 운에다 모든 것을 거는 환상을 좇는 도박꾼만이 가질 수 있는 심리인지도 몰랐다. 


  쌔근대며 나비 꽁무니만 좇아 다니던 아이가 약이 올랐던지 걸음을 멈추고 붉은 철쭉꽃 한 움큼을 훑듯이 땄다. 아이는 딴 꽃을 나 어렸을 때처럼 먹지 않고 코에다 한 번 갖다대더니 이내 실같은 꽃술을 뽑고 붉은 꽃잎을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어쩌면 약이라도 올리듯 달아난 나비에 대한 화풀이를 꽃에다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붉은 철쭉 꽃잎이 피 방울처럼 뚝뚝 아이의 발등과 땅위에 떨어져 내렸다. 

  나 어렸을 때 고향 앞산에는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집 뒤 야트막한 야산은 꽃으로 온통 붉었다. 한창 먹성이 좋던 나는 허기가 질 때마다  물오른 연한 소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속살을 긁어먹고 지천으로 핀 진달래를  한 움큼  입에 따 넣어 입안이 온통 시퍼렇게 물이 들도록 먹곤 했다. 그러다 느긋해지면 진달래 꽃술을 뽑아 친구와 꽃 싸움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끈끈한 점액이 있는 철쭉꽃을 진달래로 알고 먹은 뒤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진달래보다 꽃잎이 탐스럽고 색깔이 고운 철쭉꽃은 독성이 있는 꽃이었다.  한 움큼 따먹은 나는 금방 거품을 물고 복통으로 배를 움켜쥐며 나뒹굴었는데, 놀라신 어머니가 급히 만든 비누를 푼 물을 마시고 속엣 것을 다 토해내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 뒤부터 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진달래든 철쭉이든 결코 꽃은 따먹지 않았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진달래와 철쭉꽃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불붙은 듯한 붉은 색깔의 봄이 오면 어쩐지 속부터 울렁거리는 증세를 습관처럼 느끼며 행여 거품이라도 물며 뒹굴게 될까 나는 정신을 가다듬곤 했다. 
  진달래는 내게 어린 시절의 가난과 허기, 그리고 속의 것을 다 게워낼 것 같은 멀미와 복통을 의미했고, 내가 겪은 가난을 아내와 자식이 답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선호하는 돈을 버는 방법은  아내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방법이었다. 
  어쨌든 나는, 모두에게 유익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서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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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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