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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오피니언

우리의 만찬 (하)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Sep 26 2025 08:21 AM


  비계가 잘려 나간 고깃덩어리는 특유의 방법의 소스와 향을 가미해 적당한 온도로 구워진 스테이크로 식탁 위에 올랐다. 이미 예상한 대로 큰 접시 한쪽에는 갖가지의 익힌 푸르고 붉은 야채와 정원에서 막 핀 노란 소국 한 송이가 곁들여져 있고 복숭아 모양의 앙증맞은 분홍 초는 식탁 위를 밝히고 있었다.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식탁이 스스로 보아도 흡족하다는 듯, 붉은 와인이 채워진 잔을 들어 그가 채근했다. 내가 잔을 들어 그의 잔과 부딪으므로 우리의 식사는 시작되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고기를 자르고 와인을 마셨다. 그의 양손에 쥐어진 나이프와 포크는 접시 위에서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내는 일이 없다. 내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쓸 때보다 그의 나이프와 포크는 더 조용하게 움직이고 그것을 쥔 사람의 품위까지 더하게 한다. 
  “어때, 부드럽지?” 
  낮에, 기름을 다 제거한다며 한 내 불평을 기억했던지 우아하게 썰어 한 입을 물은 스테이크를 입 속이 보이지 않도록 소리 없이 씹으며 그가 물었다. 그 돌덩이 같던 언 고깃덩어리는 정말 놀랍게도 입 속에서 부드러웠다. 무슨 소스를 썼기에 그 팍팍할 것 같던 기름기 없앤 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워진 것일까? 그가 만든 특유의 향이 부드러운 고기의 육질과 입 속에서 어우러졌다. 하긴 너무 기름기가 없어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았던 닭가슴살도 그가 만든 소스에 몇 시간 저려두었다 요리하면 부드러운 육질의 닭가슴살 요리가 되어 식탁 위에 올라 나는 감탄하곤 했다. 전문 요리사도 아닌 그가 나름의 비법을 쓰며 요리할 때면 나는 실은 배울 생각보다는 어차피 요리하는 일을 즐기므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때, 부드럽지? 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며 날 바라보는 그에게 나는 대답 대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기를 부드럽게 하듯 사람 관계도 부드럽게 좀 하지’ 하는 생각을. 
  사람 관계래야 그와 나의 관계, 그것도 그는 알지도 못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기름기 없는 고기를 씹어야 하는 일보다 실은 괴롭다. 
  내 속의 가득한 낯섦에 대한 고통을 그는 왜 모르는 것일까? 만일 그가 정말 모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결국 팍팍한 고기가 질길 수 있다는 것과 그 질긴 것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에는 정성을 쏟으면서 아내인 내가 낯선 생활 속에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이 삶을 포기하고 싶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내가 그에게는 식탁 위에 오르는 고기만큼의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함을 의미했다. 
  대답을 위해 내가 와인 한 모금의 힘을 빌었다. 와인의 알큰한 맛은 술에 약한 내 어깻죽지를 금방 나른하게 했다. 복숭아 모양의 분홍 양초가 얌전히 식탁 가운데서 불을 밝히고 있는 이 저녁, 이런 기분만 아니면 얼마든지 로맨틱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물을 들이키듯 와인 잔을 비워버렸다. 그가 스테이크를 자르던 손길을 멈추고 잠시 날 바라보았다. 내가 빈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다시 따르기를 서너 번째, 그리고 내가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 알아요, 당신의 그 맺고 자르는 것 같은 언어들이 내게 나이프 자국이 된다는 거?” 
  자꾸만 느슨해지려는 혀끝에다 힘을 주었다. 그가 부지런히 움직이던 나이프와 포크를 든 채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 날 바라보았다. 
 “너무 낯설어 마음 붙일 수가 없다는 거, 당신 알기나 해요?”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내가 다시 말했다. 두 푸른 눈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은 없다는 듯 확대되었다. 
  ‘오, 맑은 날의 온타리오 호수 같던 저 푸른 눈.’
 그는 그때 말했었다, ‘이번에도 ‘노’라고 말하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점프할 거야.’라고. 이미 첫 번째의 거절을 경험한 그때의 푸른 눈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었다. 점프하겠다던 그 대신 그의 눈동자 속으로 나를 점프하게 하여 결국 이 저녁을 맞게 하는 저 투명한 푸른 눈, 그의 눈은 비곗덩어리에다 전기 나이프를 들이대던 그 눈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의 푸른 눈동자의 소용돌이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아야 했다. 푸른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내 속을 드러내 놓는 일에는 와인의 도움이 좀 더 필요했다. 나는 남은 와인을 목으로 부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던 푸른 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왜 그래, 당신?”
  그의 푸른 눈이 갑자기 의혹의 잿빛으로 바뀌는가 했더니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식탁 위에다 놓았다. 
  ‘왜 그러느냐고? 질긴 고기는 부드럽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날마다 낯섦에 쓰라려하는 사람 마음을 모른다고?’
 서러웠다. 함께 살면서도 내가 그에게 이토록 모르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낯설어, 너무 낯설어 내가 죽을 것 같아.” 
  그가 미처 삼키지 못한 입 속의 고기를 삼키는지 목젖이 움찔 움직였다. 그가 뭔가를 말하려다 입 속에다 가두며 대신 와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당신 이거 알아, 이러는 당신이 나도 낯설다는 거?” 
  ‘내가 낯설다고?’ 
  그것은 뜻밖이었다. 낯설다는 것은 당연히 근거지를 옮겨온 내 몫인 줄 알았다. 내가 무겁게 내려앉으려는 눈까풀에다 준 힘으로 그를 겨냥했다.
  “당신은 말하지 않았잖아, 내가 낯설다고.” 
  찬물을 쓴 기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당신 말처럼 나는 말에 심플한 사람이잖아, 자르고 자르다 보니 할 말이 없어진 거지.” 
  그가 씨익 웃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조크와 웃음을? 그가 이런 사람이었나? 내가 잠시 혼란스러워 머리를 흔들었다. 
  “난, 지금 심각해.” 
  내가 심호흡으로 가다듬으며 다시 대들었다. 
  “당신이 나까지 심각하게 해.” 
  그가 정색했다. 그래, 한 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였다. 와인과 촛불이 있는 고상한 식탁이 최후의 만찬이 된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 돌아갈 거야.” 
  그가 미간에다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그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오히려 낯섦보다 편하다. 
 ‘그래, 가는 거야, 내게 익숙한 그곳으로.’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대답 대신 식탁 위에 놓았던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먹다 만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 경황에도 스테이크가 중하구나.’ 
  내가 속으로 실소하며 쓸쓸히 와인 잔을 들었다.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당신, 이거 알아, 나이프와 포크의 관계?” 
  그가 눈길과 나이프와 포크를 한 묶음으로 하여 접시 위 스테이크에다 두고 있었다. 내가 잔을 든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알맞게 자른 스테이크를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계속 자르고 있었다. 언제 봐도 나이프와 포크를 쥔 그의 모습은 위엄있고 우아하다. 
  “서로 생김새대로 하면 싸울 일밖에 없을 거야. 둘 다 너무 낯설게 생겼거든.”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고 내가 여전히 바라본다. 그는 여전히 자른 스테이크를 입으로 가져가지 않은 채 자르고만 있었다. 
  “이렇게 잡아주고 자르고 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 
  하긴 식사 때마다 당연한 듯 식탁에 오르는, 내가 다룰 때는 늘 어둔하고 손끝이 예민해지던 나이프와 포크가 그의 접시 위 음식 앞에서 움직일 때는 왈츠를 추듯 경쾌해 보였었다. 붙잡아주고 써는 모습이 오히려 다정하고 순하여 그 관계가 아름답기조차 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끼리의 조화로운 움직임은 음식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의 품위까지 돋보이게 하는 것 같지 않던가. 
   “우리는 나이프와 포크 같은 관계야, 잘 못 다루면 흉기가 될 수 있는.”
  그가 자르기를 멈춘 채 날 바라보았다. 와인 기운으로 몽롱해지려는 의식 속의 그의 푸른 두 눈동자가 다시 갠 날의 온타리오 호수로 와 닿았다.
  ‘나이프와 포크 같은 관계? 알긴 아는구나.’
  자꾸 쳐지려는 눈두덩을 내가 애써 밀어 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스테이크를 자르도록 잡아주고 자른 것을 입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또 이들의 관계이지.” 
  참 이상했다, 그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이. 그는 늘 심플한 언어만을 고집하지 않던가. 미처 아물 사이도 없이 더께 앉던 내 가슴의 생채기는 바로 그 칼날 같은 그의 언어 때문이 아니던가? 
  “무슨 일에든 익숙해지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해. 내가 당신을 더 아는 일에, 당신이 나를 더 아는 일에. 무엇보다도 나이프와 포크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 말이야.” 
  “그 시간에 내가 죽을 것 같아. 이건 최후의 만찬이 될 거야.” 
  내가 어눌하게 그러나, 작정한 듯 퍼부었다. 마치 내 속의 쌓였던 생채기들을 밖으로 쏟아놓기라도 하는 듯 속이 후련했다. 배설의 쾌감이 몇 마디의 말로써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떠나리라, 정겨운 곳으로. 낯가림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신을 놓듯 술기운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식탁 위에다 놓으려는데 단호한, 그리고 또다시 곁가지는 다 잘라낸 것 같은 그의 날렵한 언어가 내 몽롱한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이건 우리 최초의 만찬이야!” 
  군더더기라고 없는, 그의 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마치 나이프가 스치듯 날렵한 그의 언어가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나는 식탁 위에다 내 몽롱한 의식을 뉜 채 잠이 들어 버렸다. 그것은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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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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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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