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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상)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Oct 06 2025 08:34 AM
화장로 속의 불은 섭씨 1,000도로 타오르고 있다. 화장로가 작동하는 100여 분 동안 선배와 나는 점검구를 통해 화장의 진행 상태를 점검한다. 센 화력에 견디지 못하고 행여 시신이 밀려나면 쇠막대기로 화구 가까이에 끌어다 놓아야 한다.
화장이 끝나면 나와 선배는 습골 도구로 유골을 골라낸다. 늘 없는 듯 바깥으로 존재를 드러내지는 않았어도 육신의 중심이었던 유골을 분골 기로 옮겨 담을 때마다 나는 중심을 생각하게 된다. 몸의 중심, 인생의 중심, 마음의 중심. 중심, 중심...
사람이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내가 중심에서 벗어난, 언제나 어느 한 감정에 치우쳐 산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치우쳐진 감정 속에는 울분이란 것이 마치 중심이듯 도사리고 있다고나 할까?
이 곱디고운 나이에 울분이라니, 한참 엇나간 중심을 도로 찾기 위해 나는 매일 1,000도가 넘는 불길 앞에서 시신과 함께 불필요한 감정도 태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운 불길을 거친 유골 앞에서만큼은 일부러 그러려 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이탈한 중심을 곧추세우고 옷깃부터 여민다, 마치 수도승이 남긴 사리 앞인 듯.
수도를 한 승려가 열반 후 남기는 것을 사리라 부른다면, 유골은 중생이 남기는 사리 같은 것이리라. 사람들이 평생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또 저지른 죗값을 다하지 못해 누추한 몸으로 죽었다고 해도 1,000도의 화장로를 거치면서 그 죄는 사라지고 이윽고 깨끗해질 것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유골을 다루면서 생각한다.
선배는 말없이 점검구를 바라보고 있다. 속의 타오르는 불길에다 눈길은 두고 있지만 울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화로의 열기에 눈물은 흐르기도 전에 말라버리므로 나는 이미 충혈된 선배의 눈동자로 알 수 있다. 선배가 오늘 유독 평정심을 잃은 채 자꾸만 우는 이유도 나는 안다.
‘상주가 왜 저렇게 어려, 선배?’
운구차에 실려 오던 관을 잡고 주저앉을 듯이 따라오던 흰 상복의 여자를 보며 내가 가만히 속삭였을 때부터 흔들리던 선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감지했었다. 다른 유족도 없이 혼자 운구차를 따르던 상복의 여자는 마치 이제 겨우 첫 생리를 시작했을 소녀 같았었다. 선배는 죽은 자에 대한 정중한 예를 차리는 일까지 잊은 채 어린 상주보다 오히려 자신이 상주인 듯 그 자리에서 허물어질 만 같아 내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스물셋에 남자 눈을 감기고 나니 무서운 것이 없더라.’
일을 시작한 첫날, 일과를 마친 후 소줏집으로 날 데려간 선배가 한 말이었다. 속에서 야릇하니 일어나던 호기심대로 라면, 왜 그래야 했는데요?’라고 물었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약간 소주 기운에 휘둘리고 있었음에도 그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호기심 자체가 어쩐지 그 누구도 넘보아서는 안 되는 지극히 사적인 선배의 영역에 대한 경박한 침범 같았기 때문이다.
무서운 것이 없더라, 고 한 선배가 지금 화로를 응시하며 자신을 그 젊은 상주와 동일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스물셋에 남자의 눈을 감긴 자신, 그리고 저 속에서 타는 시신으로 떠난 그 남자를 추억하고 있으리라. 나도 험한 일을 골라 하면서 곱디고운 선배가 어쩌다가 이 험한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고 나 자신은 잊은 채 예사롭지 않을 선배의 과거를 그러함에도 상상하거나 힐끗거렸었다. 그 선배가 지금도 우는 것은 분명한데 눈물은 보이지 않은 채 충혈된 눈으로 화로만 응시하고 있다.
이윽고 내가, 센 화력에 밀려 시신이 뒤로 밀려나고 있어도 넋을 잃은 채 바라보기만 하는 선배의 옆구리를 찔렀다. 화들짝 놀란 선배가 그때야 밀려난 시신을 집게로 화구 가까이 끌어당겼다.
‘이곳과 저곳이 멀잖다. 주 예수 건너오셔서 내 손을 잡고 가는 것 내 평생소원이로다.’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유족 대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리라.
화장로의 불길은 아직도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한평생 혼을 담았던 육신의 집을 소멸시키는 시간이 겨우 일백 분이므로, 그래서 불길은 더 강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강렬한 불길도 유골엔 범접하지 못한다. 타지 않는 유골들처럼 마치 중심인 듯 차지하고 있는 감정 또한 쉽사리 태워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타기는커녕 여태 희나리로 남아 내 마음에다 맵고 따가운 연기를 피우고 있지 않은가. 재 같은 흔적마저도 남기지 않도록 타 없어져 버리는 일에 정작 필요한 것은, 더운 열기가 아니라 시간일 것이다.
불길이 미친 듯이 타오르는 화로 앞에 서면 무슨 어이없는 여유인지 나는 캠프파이어부터 떠올린다. 파도 소리와 낭자하던 젊음의 소리가 타닥타닥 장작개비 타는 소리와 어우러지던 그 캠프파이어.
입시를 앞두고 있던 그 여름, 방학임에도 숨조차도 편히 쉴 수 없던 나는 친구 몇 명과 모의했었다, 꼭 하루만 신나게 놀고 와 그다음부터는 코피가 나도록 시험 준비를 하자고. 학교에 간다고 하고 부모님 몰래 떠난 캠핑이었다. 그 여름날의 캠핑, 그 밤의 캠프파이어. 갑자기 얻은 자유에 도취해 조이고 있던 몸의 나사란 나사는 모두 풀어 놓았던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마치, 다 타버리기 전에 사실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듯 이미 불쏘시개가 되었을 기억들은 불 앞에 설 때마다 매양 날 것으로 내게 덤벼든다. 불길만큼이나 맹렬하게 떠오르는 기억과 씨름하다 문득 내가 서 있는 곳이 결코 캠프파이어 앞이 아닌, 바로 시신을 태우는 화장로 앞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창자가 끊어질 듯 애통하게도, 그리고 질펀한 넋두리로도 들리는 유족들의 울음소리 때문이다.
마침내 유골을 수습할 시간이었다. 화력에 견디지 못하는 무른 부분을 불길로 다 털어낸 유골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한 인간의 육신이 남긴 최후의 흔적이다. 유골을 수습하고 분골 작업을 거쳐 유골함에다 분쇄된 가루를 담을 때마다 한 인생의 무게의 가벼움을 나는 생각한다. 좀 더 오래 살았거나 좀 더 짧게 살아도, 좀 더 누리며 살았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어도 결국 누린 몸의 흔적이 남기는 무게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줌의 무게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가볍지 않다.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그가 누구였었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한 줌의 의미는 무게 이상으로 무겁고 경건하다. 유골에 대한 예의는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누구였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내게 유골들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든, 재 속에서 찾아낸 사리다.
“성탄이라고 시끌벅적할 텐데 우린 뭐야, 선배?”
한 차례 화장을 마무리하고 다음 차례의 화장로 운전까지 두어 시간의 여유를 두고 있는 나는 휴게실에서 커피 컵을 들고 조금 느슨해진 마음으로 분위기에도 맞지 않은 성탄을 끄집어냈다. 예수가 탄생한 날 우리는 시신 태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조금은 자조적인 어리광이었다. 선배가 날 바라보았다. 선배의 눈망울은 여태 붉었다.
“알지, 아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거?”
마치 내 어리광을 자르듯이 선배가 붉은 눈망울에다 힘을 주었다. 어차피 감상에 빠져서는 선배나 나나 이 일은 감당해 낼 수 없다는 선배다운 말이었다.
아기가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전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어린 시신이었다. ‘아기’라는 선배의 말 한마디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내 가슴이 아렸다. 다 자라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부모의 가슴에다 대 못 지르고 이곳에 왔으리라.
문득 오래전 어린 동생이 폐렴을 앓다가 떠났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동생은 심하게 감기를 앓으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웠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인 듯 동생을 업고 병원엘 다니던 엄마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 기억에 남은 그때의 정경은 포대기에 싸인 동생의 주검이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는 산발이 된 머리채를 하고 동생의 시신을 안은 채 데굴데굴 마루를 굴렀었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그때 엄마도 동생을 따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나는 구르는 엄마를 붙잡고 함께 구르며 아글아글 울었다.
“나쁜 인간!”
아기란 말에 오래전 동생이 죽었을 때를 떠올리는데 갑자기 선배가 낮게 소리쳤다.
“얼마나 벌 받으려고...낳아서 버렸대.”
남의 일에 선배가 이렇게 분노를 보이는 일도 처음이었다.
“신생아였어요?”
그 아기, 자신의 엄마를 내 엄마처럼 데굴데굴 구르게 했을 것이라 여긴 어린 시신은 알고 보니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발견된 신생아였다. 선배의 그 분노가 마치 날 향한 것인 듯 갑자기 진땀이 흐른다. 마치, 화장장 천정이 내려앉아 그대로 내 가슴에 얹히는 것 같다.
“넌 왜 그래?”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는 날 향해 선배가 놀라 물었지만, 아무 일 아니라는 뜻으로 내가 한 손을 저었다.
“한두 번 하는 일 아니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다.”
선배가 커피로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선배의 말처럼 이미 한두 번의 경험이 아니므로 이제는 담담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둘 다 어떤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여전히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낳지나 말지.”
선배가 원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마치 준비해둔 대답인 듯 조여드는 가슴을 부여안은 채 내가 말했다. 선배가 ‘무슨 반응이 그래? 하는 눈치를 내게 주었다. 선배가 무슨 말을 하든 내 머릿속으로는 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던 그 밤, 파도 소리와 타닥타닥 장작개비 타던 캠프파이어 앞에서 공부로 조여진 몸과 마음의 긴장을 느긋이 풀어 두었던 그 소녀들, 해변의 텐트에서 잠든 날 덮치던 그 무게, 결박을 당한 듯 꼼짝할 수 없도록 억누르던 무게가 가하던 통증과 그 이후의 무기력, 그 일로 반응한 내 몸의 증세, 엄마 손에 끌려간 시골 병원의 늙은 의사와 서늘하고 기괴스럽던 기구들이 빠르게 돌리는 영상처럼 지나갔다. 입시를 코앞에 둔 어느 날의 일이었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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