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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두려움이 만든 함정
‘혈당 스파이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13 2025 11:04 PM
요즘 온라인과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건강 키워드 중 하나가 ‘혈당 스파이크’다. 식후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 측정하는 연속혈당측정기 후기부터,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 음식을 소개하는 콘텐츠까지 쏟아진다. 숫자가 눈에 보이는 시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식사 후 혈당의 오르내림을 이전보다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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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 스파이크란 식사 후 혈당이 급격히 치솟는 현상을 말한다. 아직 공식적이고 단일한 정의는 없으나 △보통 식후 1~2시간 이내 혈당이 180 mg/dL 이상으로 오르거나 △공복 대비 혈당이 70~100mg/dL 이상 급격히 상승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여러 연구에서 과도한 상승과 큰 변동성은 심혈관계 질환, 망막과 신장 손상, 인지 저하와 연관 있다고 보고됐다. 다만 개인차가 크고, 혈당 스파이크를 낮추는 것만으로 장기 예후가 직접 개선된다는 증거는 아직 제한적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 한 번'이 아니라 전반적인 혈당 패턴과 안전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혈당 스파이크가 왜 생길까. 매우 복합적인 문제다. 한 끼의 혈당 곡선은 △식사의 구성(탄수화물·섬유질·단백질 비율) △위 배출 속도 △소장의 포도당 흡수 속도 △인슐린과 인크레틴 호르몬 분비 △간과 말초 조직에서의 포도당 이용이 함께 결정한다. 이 네 가지에 뚜렷한 이상이 없는 비(非)당뇨병 노인에게서 관찰되는 혈당 스파이크는 대개 식사 구성이나 속도의 문제이며, 일회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가 아닌데 혈당 수치가 한두 번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진료실에서는 혈당 스파이크 자체보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경우를 자주 본다. 밥을 아예 절반만 먹거나, 반찬에서 탄수화물을 철저히 배제하고, 심지어 끼니 자체를 거르는 분도 있다. 이런 방식은 혈당 수치에는 일시적 안정감을 줄지 몰라도, 결국 체중이 빠지고 근육량이 감소한다. 노년기에는 젊을 때보다 단백질을 근육으로 합성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열량과 탄수화물이 받쳐주지 않으면 단백질을 아무리 먹어도 근육이 잘 합성되지 않는다. 탄수화물은 단순한 에너지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몸의 주요한 연료이자, 인슐린 신호를 통해 단백질을 근육 안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조력자다.
극단적인 탄수화물 제한은 뇌에도 좋지 않다. 포도당은 뇌의 가장 중요한 연료인데, 이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쉽게 피로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일부 연구는 노년기에 과도한 저탄수화물 식사가 인지기능 저하와도 연관될 수 있다고 보고한다. 실제 외래에서 만나는 환자 중 일부는 혈당 관리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예전보다 기억력이 떨어졌다”거나 “늘 피곤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는 혈당 스파이크 자체보다 식사의 불균형과 에너지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노년기에 체중과 근육이 빠지는 것은 단순히 외형의 변화가 아니다. 체중이 줄면 낙상 위험이 높아지고, 작은 감염에도 쉽게 입원하게 되며, 회복 속도도 늦어진다. 체중과 근육은 노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이다. 따라서 혈당 스파이크라는 한 가지 현상에 매달리기보다 몸 전체의 균형과 에너지 대사를 함께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루 필요한 열량을 충분히 채우고, 채소·단백질·탄수화물·지방이 고르게 담긴 식단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혈당 스파이크가 걱정된다면 식사량을 줄이는 대신 작은 요령을 활용하면 된다. 섬유질이나 단백질, 지방을 먼저 먹고 탄수화물을 나중에 섭취하거나, 식사 속도를 늦추고, 식후 10~15분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혈당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 수 있다. 액상 당류나 급한 폭식만 피해도 효과가 크다. 중요한 것은 혈당 수치가 아니라, 체중과 근력을 지켜내는 일이다.
필자가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혈당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야 할 고마운 에너지입니다.” 식후 혈당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혈당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보다, 잘 다스리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노년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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