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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직전 마지막 숨소리에 평생 갈망해온 ‘사랑해’ 담아”
드라마 ‘은중과 상연’ 박지현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13 2025 11:05 PM
‘조력 사망’ 선택하는 40대 암 환자 역할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호평’
“아낌없이 줄 줄도 받을 줄도 몰라서, 은중을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나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파괴했다. 너를 파괴하고 싶어서. 나를 파괴하고 싶어서.”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40대 말기 암 환자로 조력 사망을 택하는 천상연(박지현)은 유일한 친구 류은중(김고은)과 함께한 자기 생애를 이렇게 돌아본다. 10대 때 오빠의 비극적인 죽음과 가족의 해체, 갑작스러운 가난을 겪으면서 상연의 삶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 속으로 떨어진다. 은중은 매번 손을 내밀지만, 마음이 뾰족해진 상연은 도망치거나 모진 행동으로 관계를 부서뜨린다.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일렁이는 눈빛을 하고서.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지현(31)은 여전히 상연의 눈을 하고 있었다. 역할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듯 울컥해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다.
“이해 못 할 인물 없다는 생각으로 연기해”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배우 박지현이 연기한 상연이 죽음을 앞두고 친구 은중(김고은)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극중 상연은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은중의 기획을 가로채 영화 제작자로 큰 성공을 거두고는 10년 뒤 불쑥 나타나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달라는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미운 악역’으로 남지 않은 건 박지현이 섬세한 연기로 인물의 감정을 납득시켜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박지현은 “이해하지 못할 인물은 없다는 게 내 주관”이라며 “이유와 정당성이 무조건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상연은 유년 시절부터 죽음까지 모든 시간이 대본에 담겨 있어 전후 서사를 상상으로 구축할 필요가 없었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수월했다”고 덧붙였다.
‘은중과 상연’으로 박지현은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다. 2017년 데뷔 이래 공포영화 ‘곤지암(2018)’, 드라마 ‘유미와 세포들(2021)’, ‘재벌집 막내아들(2022)’ 등에서도 강렬한 눈도장을 찍었으나, 난도 높은 상연 역을 입체적으로 소화해내면서 실력파 주연 배우로 발돋움했다. 시한부 설정에 몰입하기 위해 촬영 전 3주간 커피와 물만 마시는 단식을 감행하는 등 숨은 노력과 고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연기적 호평은 모두 김고은에게 가야 한다”면서 몸을 낮췄다. 그는 “김고은 배우가 큰 바위처럼 단단히 인내해준 덕에 경험 적은 제가 날것의 표현을 다 던져볼 수 있었다”며 “그가 없었다면 상연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상연아 사랑해” 은중의 대사, 본편에선 편집

‘은중과 상연’에서 40대 말기 암 환자로 조력 사망을 택한 상연과 스위스에 동행한 은중이 마지막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상연이 스위스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도 김고은의 말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크게 건드렸다. 박지현은 “스스로 밸브를 열고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눈이 감기고 목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데 귀는 열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며 “본편에서 편집됐지만 은중이가 대본에 없던 ‘상연아 사랑해’라는 말을 했는데, 그건 상연이 살면서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던말이었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너무북받쳐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마음이 마지막 숨소리에 담기지 않았나 싶다” 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을 연기하는 건 배우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일이기도 했다. 박지현은 “이전에는 죽음을 무서워했다면 지금은 모든 인간의 과제이고, 잘 죽으려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국내에서 불법인 조력 존엄사에 대해서도 “아직 상연 캐릭터에서 온전하게 배제되지 않았다”는 전제를 달고 조심스레 견해를 밝혔다. “태어나는 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잖아요. 죽음의 문턱에 있고 고통의 끝에 있는 분들께 적어도 죽음을 선택할 기회 정도는 주어지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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