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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수필이 있는 뜨락(7)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16 2025 08:20 AM


 

영화 배경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차는 한적한 길로 접어든다. 희붐하던 안개가 걷히니 풍경이 또렷해지고 색상이 살아난다. 정오를 지나자 태양의 열기가 찌를 듯 따갑다. 차창 밖으로 녹음 짙은 나무들과 뭉게구름을 품에 안은 파란 하늘이 지나간다. 마치 아프리카의 하늘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 십 년도 더 전에 본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떠올린 건, 아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 때문일 것이다.

 

화면 캡처 2025-10-14 172049_.jpg

ⓒ1985 - Universal Pictures

 

조금만 더 달리면 길 끝에 여주인공 카렌의 집이 있을 것만 같다. 손꼽아 기다리던 연인 데니스가 오는 날. 사랑하는 데니스를 만날 생각에 카렌은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와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으리라. 나는 꿈을 꾸듯 카렌과 데니스 생각에 젖어 든다. 라디오에서는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에 놓인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모차르트 음악이 계속된다.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를 정성껏 감겨줄 때 그의 얼굴에 스미던 감미로운 표정과 섬세한 손길. 잊히지 않는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쯤 음악이 끝났다. 나의 상상도 거기에서 멈췄다.

연인들의 사랑과 대자연의 풍광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름다웠다. 광활한 초원과 붉게 타는 석양, 하늘을 나는 노란 경비행기 아래 무리 지어 달리는 홍학 떼 등 어느 하나 예술 사진 아닌 게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남자와 과감한 모험을 꿈꾸던 한 여자의 운명적인 사랑. 그들의 인연은 아프리카 케냐의 대초원을 달리는 기차에서 시작된다.

데니스를 만나기 전에 아프리카에 정착한 카렌은, 결혼하여 커피농장을 운영하려던 꿈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는 가치관이 달라서 같이 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꿈은 흩어지고, 황량한 아프리카에 홀로 버려진 듯한 그녀에게는 외로움이 그 어떤 역경보다 힘들다.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는 잦은 사냥과 무분별한 여자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남편은 결국 카렌과의 이혼을 택한다. 사랑이란 함께하는 것인가, 함께 견디는 것인가. 정신적 고통을 잊으려고 고단한 농장일에 몰두하던 그녀는, 우연히 그곳에 들른 데니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데니스는 카렌의 문학적 잠재력을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때로 사랑은 글을 쓰도록 만든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문장이 되고, 두 사람은 문학으로 유대감을 키워간다.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모차르트와 문학을 사랑하는 그는, 그녀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남자다. 결국 사랑에 빠진 그들. 그러나 결혼에 구속되는 걸 원치 않는 남자와,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하고 싶은 여자는 사랑의 평행선을 걸으며 갈등한다.

게다가 유일한 일터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커피농장 마저 화마가 집어삼킨다. 외로움이 두렵던 카렌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데니스가 그녀를 경비행기로 공항에 데려다주기로 한 날, 마지막 만남을 기대하며 가슴 설레던 그녀에게 데니스의 비행기 사고 소식이 날아든다. 이제 그녀 마음에 남은 아프리카란 어떤 의미일까. 사랑은 떠났지만 함께한 기억은 살아 있다. 실존 인물인 그녀는 아프리카에 살던 17년 동안의 이야기를 소설로 발표한다.

 

 

화면 캡처 2025-10-14 170335_.jpg

ⓒ1985 - Universal Pictures

 

영화가 인간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면, 소설은 자연의 숨결로 풀어간다. 소설에서는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다. 자연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소설은 무자비한 자연을 상대로 필사적 사투를 벌이는 동물과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초원은 하루아침에 황폐해지고, 삶의 부스러기만 허공에 떠돈다. 오만하던 문명이 자연 앞에 얼마나 작고 무력한지 보여주려는 듯 가뭄이 몇 달씩 이어진다. 강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타들어간 농작물은 쓰레기더미가 된다. 물을 찾아 헤매는 동물들의 메마른 울부짖음이 광야를 흔든다.

책은 독자를 흡입력 있게 몰입시킨다. 장엄한 아프리카의 자연에서는 기후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화와 소설이 보여준 서로 다른 자연의 두 얼굴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누가 자연을 영화처럼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했을까. 자연은 매정하고 때로 잔인하다. 성난 자연 앞에 인간은 한 점 바람에도 흩어지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진정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작가는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서는 인류애적인 사랑을 깊이 있게 그린다. 그렇게 회복한 존엄 속에서 정신과 문화가 되살아난다는 점을 소수 부족의 삶을 통해 이야기한다. 행간에 부린 은유는 쉽게 해독할 수 없는 비밀 부호처럼 은밀하다. 작가 특유의 문학적 비유 앞에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책에서는 문학적 장치로 독자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정신적 쉼터와 위로가 필요할 때 영화와 문학에 기대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저무는 해가 몸을 낮추고 있다. 빛을 거둬들이는 시간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지금쯤 곤충과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겠구나. 주홍빛 노을로 만물을 감싸 안은 태양은 어머니 대지의 품에 안길 것이다. 머지않아 그림자를 지우며 초원은 어둠과 적요에 잠기고, 동물은 휴식으로 이완하며 잠을 청하리라. 자연의 품에 안겨 하루를 닫는 시간이 조용히 지나고 있다.

 

문인협회-김영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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