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탈장 수술의 날벼락
거세로 ‘카스트라토’가 된 중세 청년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26 2025 04:45 PM
50대 중년 20%는 서혜부 탈장 ‘고환절제’서 ‘인공막 수술’로 발전 바시니 기법 이후 극적 계기 마련
탈장, 특히 전체 탈장 증상의 80%를 차지하는 서혜부(사타구니) 탈장은 인류와 오랜 시간 함께한 질환이다. 복벽이 약해지는 50대 이상 성인에게 흔하며, 평생 유병률이 20%를 넘을 정도로 흔하다.

탈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서 발견된다. 이 문헌에는 서혜부 탈장에 대한 묘사와 ‘기침할 때 돌출이 심해진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열을 가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온도가 화상을 입힐 수준인지, 아니면 단순한 온열 요법 수준이었지는 적혀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치료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스 시대에 들어 히포크라테스는 사체액설(四體液說·인간 몸은 네 가지 체액으로 구성되며, 이들 체액 간 균형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이론)에 근거해, 탈장을 ‘물이 많은 상태’로 오인했다. 그래서 체액을 빼내는 배액(Drainage)을 시도했지만, 근본적 치료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장 손상의 위험만 키웠다. 그나마 서혜부 탈장이 남성에게 더 흔하다는 사실은 알게 됐다. 오늘날 현대 의학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고환은 복강에서 생성된 뒤 음낭으로 내려오는데, 그 내려오는 길이 넓어진 채로 남으면 이 길을 따라 장이 탈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로마의 의사 갈렌은 그리스 의사들의 소극적 치료가 효과가 없다고 보고, 더 과감한 방법을 제안했다. 해부학적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탈장낭뿐 아니라 고환까지 함께 잘라내고 주머니를 묶는 수술법을 시도했다. 이는 재발률을 낮추는 효과는 있었으나, 무마취 수술에 따른 출혈과 감염으로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여기에 원치 않았던 거세는 ‘덤’이었다.
중세에는 병을 ‘신의 벌’로 여기는 인식과 함께, 갈렌의 고환 절제 방식이 절대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수술 중 좌우를 혼동하거나, 감염으로 남은 고환마저 괴사해 양쪽 고환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극단적 사례도 자주 발생했다. 아랍권 의사들은 고환을 살리려 노력했지만, 불로 태워 봉합을 대신하는 등의 방법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 시기 외과 기술은 로마 때보다도 위생 개념이 퇴보해 사망률은 전혀 줄지 않았다. 심지어 탈장 수술 중 거세된 청년들이 ‘카스트라토(Castrato)’라는 변성기 전 거세 가수가 되기도 하는 비극의 시대였다.
탈장 치료의 돌파구는 르네상스 시대 해부학의 발전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16세기 카스파르 스트로마이어는 탈장을 ‘근육 약화로 인한 직접 탈출’과 ‘고환 경로를 따른 간접 탈출’로 구분하며 해부학적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 이어 페이르 프랑코는 최초로 탈장 수술 전문 서적을 출판하고 반창고나 복대를 이용한 비수술적 치료도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거세가 대세였다. 무마취 상태에서의 정밀 수술이 불가능한 데다 위생 상태도 열악해 사망률을 낮추는 데는 실패했다.
탈장 수술의 진정한 발전은 19세기 마취와 소독(위생) 개념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감염을 통제하면서, 비로소 해부학적 지식을 활용한 정밀한 수술이 가능해졌다.
이 변혁의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 외과의사 에두아르도 바시니(1844~1924)다. 그는 인류 최초로 고환 절제 없이 서혜부 탈장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시니 기법은 서혜부 관의 뒷벽을 주변 인대나 근육으로 보강하고, 고환으로 향하는 정삭을 위쪽으로 치우는 방식으로 약해진 벽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1887년 그는 환자 38명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결과를 발표하며 ‘바시니 시대’ 의 서막을 열었다.
물론 바시니 기법은 큰 진보였지만, 근육과 인대만으로 벌어진 부위의 장력을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워 약 10%의 재발률을 보였다. 이 문제는 20세기에 들어서 해결된다. 어빙 리히텐슈타인(미국)이 인공 보철물(Mesh)을 이용한 ‘무장력 탈장 수술’을 개발하면서 극복됐다. 인공막으로 약해진 복벽을 장력 없이 효과적으로 보강하는 이 방법은 오늘날까지도 성인 서혜부 탈장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복강경 수술까지 도입돼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 선택지가 제공된다. 과거 고환을 자르거나 수술 중 높은 사망률을 감수했던 시대에서 당일 퇴원이 가능해진 오늘날까지, 탈장을 둘러싼 의학의 역사는 엄청난 진보를 이룬 셈이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