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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에 짓밟힌 광부들...
‘또 다른 광주’ 사북을 기록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31 2025 10:59 AM
다큐 영화 ‘1980 사북’ 개봉 1980년 4월 발생 사북사태 다뤄 “폭력에 맞선 보복 정당했나”질문 본보 문창재 기자 등 100여명 인터뷰
사북사태 또는 사북항쟁으로 불리는 사건이 있다. 신군부의 계엄령 치하였던 1980년 4월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이었던 강원 정선군 사북읍 소재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에서 광부와 가족 6,000여 명이 경찰과 대치하며 충돌했다. 회사의 비인간적인 착취와 어용노조의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며 일어난 시위였지만 광부들은 폭도, 빨갱이로 몰려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노동운동의 의의를 가린 광부들의 폭력 행위 탓에 사북사건은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에 쓰인 사진. 1980년 4월 사북 탄광 농성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탄광 작업장 인근에 모여 있는 모습. 엣나인필름 제공
2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은 사북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북 출신으로 오랫동안 해당 사건을 연구해 온 황인욱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의 제안으로 대학 후배인 박봉남 감독이 연출했다. 27일 전화로 만난 박 감독은 “2019년 사북사건 40주년을 앞두고 객관적인 기록 차원에서 영화를 만들자고 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애초 계획인 3년을 훌쩍 넘겨 6년이 지나 개봉하게 됐다” 고 말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한국경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사북사건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핵심은 정부·기업이라는 권력의 착취에 맞서는 노동자의 저항이지만, 실제로는 광부와 노조, 그들의 가족, 경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면서 오랜 기간 반목이 이어진 상태였다. 박 감독은 “항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기에 ‘항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보다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려했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탄광의 노동 환경은 처참할 정도로 열악했다. 매년 전국적으로 200명 안팎의 광부가 근무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북 탄광은 특히나 사측의 착취가 심한 곳이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를 무시했고, 부정선거로 조직된 어용노조는 노골적으로 회사 편을 들었다. 1980년 4월 집회를 염탐하던 형사가 차로 광부를 치고 도망간 사건이 발생하자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광부들이 탄광을 점거한 채 경찰 진압을 막는 과정에서 순경 한 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도망간 노조위원장에 대한 분풀이로 그의 아내를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영화는 200여 명의 광부와 아내들에게 잔혹하고 치욕스러운 고문을 가한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노동자들의 폭력이 정당했는지 함께 묻는다. 박 감독은 “노조위원장의 아내를 집단 폭행한 건 우발적이었다 해도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제대로 사과한 주체가 없다는 건 한 번쯤 짚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창재(오른쪽 두 번째) 당시 한국일보 기자가 1980년 4월 강원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현장에서 광부들의 노동환경을 취재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는 160여 회의 촬영과 10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완성됐다. 한국일보 등 언론 보도의 도움도 받았다. 박 감독은 “안경다리 투석전 촬영을 비롯해 당시 사건을 제대로 취재한 매체는 한국일보가 유일하다”면서 “한국일보의 사진 취재와 사건 보도가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2년 전 별세한 문창재 전 한국일보 기자는 생전 인터뷰로 영화에 출연했다.
박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광주’ 와 ‘사북’이 연결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주기를 주문했다. 광부들과 협상이 타결되며 계엄군이 물러서긴 했지만 공수부대는 한 달 뒤 광주에서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눴다. “사북사건은 불길했던 시대의 전조로서 비상계엄령하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히는지 보여줍니다. 민주주의의 총량은 점차 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1980년 계엄령의 시대를 온전히 건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북사건과 관련해 누가 책임져야 할지, 누가 사과해야 할지, 이런비극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 질문을던지고 싶었습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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