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매직 (7)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10 2025 09:50 AM
색소폰 음률 속에서도 인기척을 감지했던지 이상무가 형수의 목에 두른 팔부터 얼른 뽑아냈다. 순간적으로 반응한 그의 눈빛이 깨 포대를 갉다가 진돗개를 발견한 생쥐의 그것 같았다. 그의 본능의 촉이 쥐구멍이라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상무가 급히 팔을 뽑아도 형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기어코!’
뜻밖의 전경에 어리둥절해하는 형보다 오히려 내 눈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기어코 일을 만들고 마는 형수 때문에 가슴은 벌렁대고 머릿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쥐새끼 같은 자식!’
내가 이상무에게 두었던 시선을 끌어당겨 옆의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입을 벌린 채 눈만 멍하니 뜨고 있었다. 혼이 나간 사람의 얼굴이었다. 눈치 없이 겅중대는 티미처럼 그 경황에도 색소폰 음률은 애간장이라도 녹일 듯 저 혼자 흐느끼며 멈출 줄을 몰랐다.
‘뭐야?’
예상치 못했던 장면에 넋이 나간 것 같던 형이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며 소리친 건 그때였다. 내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위기에서 놓여날 수 없더니 급기야 그 얼음장은 형의 손에서 떨어진 가방에 의해 갈라지고 만 것 같았다.
‘이, 이상무 니가...?
형이 말을 잇지 못했다. 형이 말문을 닫은 채 어금니에다 힘을 주자 창백한 뺨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어둑한 실내임에도 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모른 내 형이 두 사람에게 놀림감이 된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속에서 비집고 치받쳐 올랐다. 그렇게 기득권을 장악한 듯 큰소리를 치던 이상무도 이 난감한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허둥댔다.
‘비루한 자식!’
이미 얼굴색은 바뀌었음에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서 있는 형보다 먼저 내가 앞으로 나섰다. 온 식구를 한 때의 술 상무 기질로 갖고 놀고 있는, 그러나 자신이 친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이미 파악하고 허둥대는 이상무의 면상을 내가 냅다 후려쳤다.
‘윽!’
이상무가 휘청거리더니 목을 뒤로 젖힌 채 여전히 눈을 감은 채인 형수의 무릎으로 가 나자빠지자, 그때 서야 형수가 눈을 떴다. 잔뜩 취한 눈이었다. 형수는 이러한 결과를 이미 예측했던 것일까? 혹 이 모든 것이 언젠가 형수가 말한 적이 있는 이혼을 위한 수 순일까? 아니 이상무의 계교일지도 몰랐다, 형수에 대한 기득권을 가진 후, 형의 돈을 불법체류자의 불안한 나날에다 징검다리 삼으려는 약삭빠른 수작.
‘뭐야?’
여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 형수의 어눌한 발음이 흡사 잠꼬대 같았다.
‘잘 논다, 언제부터야?’
감았던 눈을 억지로 뜨고 형과 나를 번갈아 보며 시선의 초점을 맞추려는 형수 앞에서, 그때 서야 형이 낮게 소리쳤다. 형의 눈과 입에서 불꽃과 얼음 알이 동시에 와르르 쏟아지고 있는 듯했다.
형수의 무릎 위로 쓰러진 이상무가 자신의 취하지 않은 말짱한 얼굴로도 더 이상,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겼던지 비실비실 일어나더니 형을 향해 바닥에 꿇어앉았다.
‘잘못했습니다, 사장님, 저는 그냥 사모님이...’
끝까지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있는 이상무의 면상에다 내가 참지 못하고 다시 주먹을 날리려는데 이번에는 형이 윗옷을 벗어 던지더니 주먹을 날렸다.
‘니, 니가 어떻게?’
‘왜 그래 당신, 우리가 뭘 어쨌게?’
화가 치받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형과는 달리 형수의 발음은 술에 휘둘려 어눌했다.
‘뭐, 우리? 넌 알고 있었냐, 이 년, 놈 짓거리를?’
급기야 분을 참지 못한 형이 비실거리는 형수의 면상에다 역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과 동시에 내가 형의 팔에 매달렸다. 치받치는 분노대로 휘둘러 그 손으로 형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형수는 무슨 영문인지 까르르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색소폰 여전히 저 혼자 흐느끼고 있었다.
‘질투하는 거야 당신? 근데 질투할 자격이나 있어?’
술기운에 휘둘려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던 형수가 게슴츠레하니 치뜬 눈길을 형에게 조준하며 할 말을 쏟았다.
‘입 다물어, 죽여 버리기 전에!’
형이 부르르 주먹을 떨더니 돌아서서 한쪽에 세우진 골프클럽 하나를 뽑았다. 형이 거실의 집기를 향해 골프클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에잇!’
성난 짐승처럼 포효하며 휘두르는 클럽에 장식장 위의 가족사진이, 벽에 걸린 액자의 유리가 박살이 나며 바닥에 쏟아지고 그때까지 눈치 없이 혼자 흐느끼던 색소폰 음률이 정수리를 맞고 기함이라도 한 듯 뚝 소리를 멈췄다.
‘아악!’
취하여 몽롱한 눈빛이던 형수가 얼굴을 가린 채 악을 썼다. 제 성질에 못 이겨 미친 듯이 클럽을 휘두르며 몸부림하는 형의 어깨를 내가 잡아 부둥켜안았다.
‘으흐흐....’
내 팔 안에서 몇 번 몸부림을 치던 형이 클럽을 던지고 유리 조각이 흩어진 바닥에 주저앉아 괴성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쓰러져 짐승처럼 우는 형을 부둥켜안은 채 나도 울고 있었다. 울면서, 어쩌면 형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만 같던 형 집의 분위기는 그것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아직은 일을 더 해야 한다던 형은 일에서 손을 떼어버렸다. 모든 일이 자신의 바쁜 비즈니스, 그것으로 인해 집을 비운 탓이라 여기는지 아니면, 일 자체에 흥미를 잃고 삶에도 염증을 느끼는지 손에서 일을 놓고 티미와 놀다 벤츠를 타고 골프를 치러 가거나 카지노를 찾거나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형은 일에서 손을 떼는 것과 동시에 형수에게서도 관심을 끊고 집안에서는 일체의 대화와 사업상의 의논은 하지 않았다.
말을 잃은 형처럼 맑은 정신을 찾은 형수 또한 말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형수는 화가 난 형에게 어떠한 변명도, 그리고 형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형이 일에서 손을 떼어도 형수는 말없이 일만 했고 형이 있든 없든 밤엔 술을 마셨다. 형과 형수는 함께 있는 날도 각자의 거처에서 각자의 일만 할 뿐이었다. 내 눈에 집안의 평화는 그것으로 끝인 것 같았다.
공장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멕시칸들과 진돗개뿐이었다. 멕시칸들은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라틴 음악의 볼륨을 높인 채 일했고, 진돗개들의 눈빛은 쥐 때문에 살아 있었다. 며칠 동안 말이 없던 형이 형수와 이상무를 부른 건 그 일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넘어가나 보다 싶던 어느 날이었다. 출근은 하되 책상에 앉지 않고 티미와 장난치며 놀기만 하던 형은 자신의 방이 아닌 티미와 놀고 있던 공장 한쪽의 뜰로 두 사람을 불렀다.
불려 간 형수와 이상무가 엉거주춤 서 있어도 형은 티미와 장난질만 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티미는 형이 쓰다듬자 배를 드러낸 채 벌렁 뒤집고 누워 마냥 흡족한 표정으로 침을 흘리며 버둥거리고, 형은 두 사람이 서 있음에도 눈길도 주지 않은 채였다. 형수는, 사람이 옆에 서 있어도 철저하게 무시하고 티미와 장난질만 하는 형을 향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이상무 역시 엉거주춤하니 서 있었다.
두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형이 입을 뗐다.
‘내 공장이 은신처로 그렇게 허술해 보이던가?’
티미 배를 간질이던 손길을 멈추며 눈길은 여전히 티미에게 준 채 형이 낮은 목소리로 질타했다. 은신처란 형의 말은 이상무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형도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형의 낮은 질타가 송곳이 되어 양심에 가 박혔던지 이상무가 두 입술을 말아 물며 질끈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내 공장, 이제 자네 같은 사람 필요 없네. 지금 당장 나가.’
‘여보!’
형수의 말과 함께, 이상무가 발끈 고개를 들었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